사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이 지난 5일 전·현직 법관 10명을 기소하면서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했지만 현직 고위 법관 기소에 따른 ‘후폭풍’은 여전히 거세다. 그중 가장 주목받는 이는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법정구속한 성창호 부장판사다. 야권은 “정치적 보복”이라며 문제 삼고 나섰지만, 법조계에서는 영장판사의 수사기밀 유출은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중요 범죄”라는 평가도 나온다.
■ “성창호 수사기밀 유출, 영장 사안” 검찰 고위관계자는 10일 성 부장판사의 혐의와 관련해 “영장판사가 수사기밀을 누설하는 건 뇌물 받은 거 못지않게 판사가 저지를 수 있는 나쁜 범죄”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통신·계좌 영장은 ‘6개월 유예’를 걸기 때문에 영장이 집행되더라도 당사자가 나중에 통보를 받게 되는 핵심적인 공무상 비밀”이라며 “성창호·조의연 판사가 통신·계좌 영장을 비롯해 수사 자료를 복사해주고 보고서까지 만들어줬다는 (내용이 담긴) 법원 파일이 무더기로 나왔다. (주범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지 않았다면 구속영장 청구까지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성 부장판사의 공소장을 보면, 그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를 지내면서 2016년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빼낸 자료에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최유정·홍만표 변호사 등의 통신·계좌 영장청구서를 비롯해 김수천 부장판사에게 2억여원 뇌물을 공여했다는 진술과 최 변호사가 별도 사건 재판장에게 고급 핸드백과 시계를 선물했다는 진술 등 검찰 수사 진행 상황과 향후 계획 등이 포함돼 있다. 유출되면 피의자 도피 등 수사 장애가 우려되는 기밀들이었고, 실제 이 정보가 피의자에게 알려져 증거인멸 시도로 이어졌다고 한다. 한 판사는 “영장심사에서 수사정보가 통째로 유출됐다면, 검찰로서는 형사사법체계 자체에 균열이 난 사안으로 봤을 것”이라며 “무리한 기소가 아니다”라고 짚었다. 검찰 고위관계자도 “재판 독립을 위해 확실한 신분 보장을 받는 판사가 스스로 재판독립을 상납했다면 그에 걸맞은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 “‘성창호 피해자’ 주장은 ‘정치적 레토릭’” 검찰이 성 부장판사를 직권남용의 피해자로 봤다가 피의자로 둔갑시켰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선 ‘가짜뉴스’라는 지적이 나온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직권남용죄는 ‘국가적 법익에 관한 범죄’로 피해자는 ‘국가’다. 개인이 법적으로 피해자가 될 수 없다”며 “성 부장판사가 직권남용의 주체와 공모하거나 다른 범죄를 저질렀으면 기소될 수 있다. 그가 ‘피해자’라는 주장은 법리가 아닌 ‘정치적 레토릭(수사)’에 가깝다”고 짚었다.
일부에서 그를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근거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을 보더라도 그를 피해자로 표현한 대목은 없다. 공소장에는 ‘피고인은 (중략) 신광렬, 성창호, 조의연 등으로 하여금 수사정보를 수집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해 보고하게 하는 등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정도가 언급됐다.
김경수 지사 선고 직후 성 부장판사가 피의자 조사를 받았다는 주장과 관련해 검찰은 “성 판사는 (김 지사 선고 전인) 지난해 9월에 이미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피의자로 입건됐다. 당시 변호인 선임 등을 고지하는 등 피의자 조서도 받았다. 올해 2월 조사에는 성 판사뿐 아니라 이번에 기소된 10명을 모두 한차례씩 불러 전산입력을 위한 지문만 땄다”고 설명했다.
김양진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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