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전우회 광주시지부에서 관리하던 비자금 통장사본. ‘사무총장’ 등에게 지급했음을 뜻하는 메모가 보인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이하 전우회) 광주시지부에서 은밀하게 굴리던 비자금 통장이 드러났다. 급여를 떼였다는 전 직원이 사무실에서 통장 일부를 복사해 경찰에 제출한 것으로, <한겨레21>이 단독으로 사본을 입수했다. 경찰은 지난해 하반기 수사에 착수해, 횡령 등의 혐의를 이미 상당 부분 확인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성욱 전 사무총장 순회 감사하며 감사비 걷어
<한겨레21>이 입수한 통장 사본의 2016년 2월~2017년 4월 거래 내용을 보면, 소문으로 무성하던 전우회의 검은돈 거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부 수익사업 대금이 비자금 계좌로 입금되고, 중앙회 간부들한테 수시로 돈을 상납한 사실이 확인된다. 전우회에서 왕처럼 군림했던 김성욱 전 사무총장(구속 중)이 해마다 전국 200여 개 지부·지회를 순회 감사하면서 감사비를 걷은 사실도 확인됐다. 김방주 광주지부장은 “비자금이 아니라 담당 직원의 개인 통장이고, 통장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면서 “담당 직원 관리를 소홀히 한 잘못은 인정한다”고 해명했다.
전우회의 비자금 거래 실상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자. 통장 개설자는 최근까지 총무과장을 했던 ㅈ씨다. 2016년 7월7일 김아무개 명의로 100만원이 입금됐다. 같은 날 ㅈ씨 자신 명의로 100만원을 추가 입금했다. 그 옆에 강아무개란 메모를 남겼다. 김아무개와 강아무개는 광주시지부의 고속터미널 점포와 체육관 커피자판기를 각각 운영하던 사업자다. 그달의 수익사업 대금을 비자금 통장으로 받았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김 지부장은 “법인 통장으로 정상적으로 수익사업 대금을 입금받았다”고 부인했다. 수익사업 대금을 법인 통장으로 받기도 하고 비자금 통장으로 받기도 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2017년 4월엔, 전우회 명의로 야시장을 운영하던 ㄱ씨한테서 200만원이 입금됐다. 고엽제 이름을 사용한 대가로 뒷돈을 건넨 것으로 보인다. 또, 2016년 2월과 3월에는 다른 ㄱ씨로부터 400만원이 입금됐다. 2017년 2월에도 200만원이 입금됐다. ㄱ씨는 전우회원 24명의 베트남 전적지 순례를 인솔한 여행사 대표다. 여행사에서 건넨 뒷돈으로 의심된다.
경찰은 지방보조금 횡령 혐의 전반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2017년 3월 베트남 전적지 순례 여행은 광주시의 지방보조금 3600만원을 받아 진행한 사업이다. 7월 고엽제의 날(600만원), 9월 환경정화 활동(200만원)과 안보교육(300만원), 10월 호국순례(400만원) 등 광주시에서 전우회 광주시지부로 지원하는 연간 보조금만도 5100만원에 이른다.
광주시지부의 한 회원은 “식대를 남기거나 선물 금액 등을 조작하는 등 교묘한 방식으로 다섯 차례 행사 때마다 차액을 남겼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지부장은 “서류 처리상 미숙함 때문에 그런 오해를 받고 있으나, 사사롭게 돈을 챙기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고엽제전우회 적폐청산위원회 배상환 위원장과 HID비대위 박금구 대표. 박승화 기자
국고의 직원 급여 횡령 의혹도
국고보조금으로 지급되는 직원 급여를 횡령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전 직원 ㅈ씨는 경찰에 제출한 사실 확인서에서 “2016년 5월 말부터 1년1개월 근무하면서 지부장한테서 매달 25일 현금으로 50만원씩만 받았으며, 퇴직금도 떼일 뻔했다”고 진술했다. 전우회의 각 지부는 국고보조금으로 1인당 월 140여만원의 직원 급여를 지원받고 있다. 김 지부장은 “3명 급여를 보조금으로 지원받는데, 실제 일하는 직원은 그보다 많아 서로 나눠 가지도록 했던 것”이라면서 “ㅈ씨가 급여 없이 봉사하겠다고 해놓고 나중에 말을 바꿨다”고 말했다.
전우회 지부에서 검은돈을 어떻게 썼는지도, 비자금 계좌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2016년 11월11일, 계좌에서 260만원이 인출됐다. 김 전 사무총장이 광주시지부와 산하 5개 지회를 감사하던 무렵이었다. 김 전 사무총장은 해마다 11월 무렵 한 달 이상 전국을 돌며 16개 지부와 253개 지회를 감사한다. 전우회원들 사이에 “사무총장이 감사를 무기로 돈 걷으러 다닌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소문이 사실로 확인됐다. 260만원 인출 숫자 옆에 ‘감사비용’이란 메모가 적혀 있었다. 260만원 중 200만원이 감사 상납금이고, 60만원은 숙식비로 추가 지급된 것으로 파악된다. 굴비 선물값으로 16만원이 또 인출됐다. 지부당 200만원이면 16개 지회에서 한 달 동안 걷는 감사비만도 3200만원에 이른다.
광주시지부의 한 회원은 “감사 한 달 전인 2017년 10월에 일부 회원이 김성욱 당시 사무총장을 찾아가 광주시지부의 비리 사실을 낱낱이 알렸지만, 실제 감사에서 아무 지적도 없었다”면서 “돈 챙기러 내려온 사람이 제대로 감사할 리 만무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무총장한테 상납한 감사비 200만원 중 100만원은 광주시 5개 지회에서 20만원씩 걷은 코 묻은 돈”이라고 분노했다.
중앙회 상납은 감사 기간에 그치지 않았다. 2017년 2월, 3월, 4월에도 각각 100만원씩 상납 인출됐으며, 그때마다 김성욱 사무총장 이름이 적혀 있었다. 2016년 10월엔 김 사무총장 미국 출장 경비로 50만원이 또 인출됐다. 중앙회의 은밀한 돈줄을 관리하는 총무부장 ㄱ씨한테도 2016년 7월 휴가비로 10만원, 2017년 4월 20만원이 또 인출됐다.
“지부마다 지부장과 총무 2명이 관리해”
전우회의 배상환 적폐청산위원장은 “광주뿐 아니라 전국의 16개 시도 지부도 같은 수법으로 비자금을 불법 관리하고 중앙회에 상납했다”면서 “각 지부에서는 지부장과 총무 담당자 2명이 비자금 계좌를 몰래 관리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회와 전국 시도 지부의 비자금 계좌에 대해 즉각 전면적인 수사에 들어갈 것”을 촉구했다. <한겨레21> 취재로 광주시지부의 일부 비자금 실체가 확인됐지만, 광주시지부, 더 나아가 전우회 전체 비자금 규모는 수사를 통해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