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가족이 남편을, 아빠를 황망히 잃게 되었으나 그래도 남편이 그 무서운 상황에서도 간호사나 다른 사람을 살리려 한 ‘의로운 죽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12월 31일 진료 중인 정신질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유족이 최근 임 교수를 의사자로 지정해달라고 서울시에 신청했다. 고인의 부인이 “의사자로 지정되면 특히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힘이 될 듯 하다”고 말했다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12일 밝혔다.
이날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자료를 내어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동료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여 자신을 희생한 고인의 숭고한 뜻이 의사자 지정을 통해 온전히 기억되고 함께 지속적으로 추모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며 고 임세원 교수의 ‘의사자 지정’을 촉구했다. 고 임세원 교수는 진료 중인 환자가 흉기를 휘두르려고 하자, 옆문으로 진료실 밖으로 빠져나가 간호사와 다른 환자들이 피하도록 하다가 결국 변을 당했다. 고인의 친구인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려다가 세상을 떠난 고인의 뜻이 명예롭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유족이 고심 끝에 의사자 신청을 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고 임세원 교수의 유족은 “고인이 못다한 일을 해달라”며 조의금 1억원을 대한정신건강재단에 기부한 바 있다.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정한 ‘의사자’란, 직무와 관계없이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을 구하다가 부상을 입거나 숨진 사람을 말한다. 의사자로 지정되면 유족이 의료급여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유족이 시·군·구에 의사자 신청을 하면 보건복지부 산하 ‘의사상자 심사위원회’가 심사를 거쳐 60일 이내에 지정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현재까지 검찰 조사 결과, 비극의 원인은 중증 정신질환의 급성기 증상이었다는 소식을 유족이 전해주셨다”며 “퇴원한 급성기 환자가 왜 지역사회에 방치될 수밖에 없었는지, 재발을 경험했을 때 인권과 안전한 치료는 어떻게 제공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는 이른바 ‘임세원법’으로 불리는 33개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법안에는 ‘사법입원제’ 도입,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절차 폐지, 퇴원 후 사례관리와 외래치료지원제도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국회가 폭넓은 의견 수렴을 통해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강조했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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