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왼쪽 사진)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5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박근혜 정부의 보수단체 불법지원(화이트리스트)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각각 출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저는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북측 대남적화노선이나 대남 비방선동에 동조하거나 부화뇌동해 우리 정부정책을 비방할 경우 종북이라 생각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수많은 정책 중에 어느 것을 비판한다는 이유만으로 종북좌파라 규정한 일은 없었습니다. 이 점 철저히 검토해 주시길 바랍니다.”
김기춘(80) 전 비서실장이 박근혜 정부 시절 보수 단체에 자금을 지원토록 한 ‘화이트리스트’ 사건 2심 재판 최후 진술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10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재수감된 김 전 실장에 대해 검찰은 징역 4년을 구형했다.
18일 서울고법 형사
4부(재판장 조용현)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전 실장과 조윤선(53)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피고인 9명의 항소심 결심 공판을 진행했다. 검찰은 “정부 비판 세력을 봉쇄하고 정부를 옹호하는 세력을 구축하려는 화이트리스트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구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조 전 장관에게는 징역 6년에 벌금 1억원, 추징금 4500만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 전 비서실장의 지시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에 수십억 자금을 지원하도록 강요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김 전 실장이 2014년 2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전경련이 총 21개 보수단체에 총 23억8900만원 가량을 지원하도록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 전 장관은 2015년부터 1년간 31개 단체에 대해 35억여원의 지원을 강요하고, 9개월간 매달 500만원씩 이병기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상납 받았다는 혐의도 있다.
이날 김 전 실장은 자필로 쓰인 최후진술문을 또렷한 목소리로 읽어나갔다. 검찰은 화이트리스트 사건을 “김 전 실장이 시민사회를 적과 아군으로 나누고, 이른바 ‘좌파배제 우파지원 시스템’을 만든 것”이라 정의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이를 정면 부인하면서 “청와대의 그 누구도 전경련 관계자를 협박, 강요했다는 사실은 없다”고 강조했다. 김 전 실장 쪽 변호인은 “피고인은 45년 공직생활 동안 자유민주주의의 질서를 수호하고자 했던 공직자”라며 “나이와 건강상태를 고려해 재판부가 관용을 베풀어 달라”고 말했다. 현재 김 전 실장은 심장질환 등으로 인한 건강 악화를 우려해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한 상태다.
김 전 실장에 이어 조 전 장관도 미리 준비해온 에이포(A4) 4장 가량의 긴 최후 진술문을 울먹이는 목소리로 읽었다. 특히 이병기 전 국정원장에게 돈을 받은 혐의에 대해 말할 땐 감정이 고조된 채 떨리는 목소리로 “(특수활동비는) 항상 모시던 분이 격려의 마음을 보내 주신 것이라 생각했다. 공직자로서 사사로운 마음을 거절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1심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의 35억 지원 강요에 대해서는 유죄로 보고, 특활비 뇌물 혐의는 무죄로 판단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함께 기소된 현기환(60)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는 징역 7년에 벌금 11억원, 추징금 3억원을 구형했다. 김재원(55) 자유한국당 의원은 징역 5년에 벌금 10억원 및 추징금 2억5000만원을, 박준우(56)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는 징역 2년형의 선고를 요청했다. 화이트리스트 사건에 가담한 정관주(55)·신동철(58)·오도성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는 각 징역 2~3년을 구형했다.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는 강요 등 혐의는 징역 3년에 자격정지 2년,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10개월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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