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창업컨설팅 업체 소속 컨설턴트가 컴퓨터 본체를 들고 사무실을 나와 어딘가로 가고 있다. 장나래 기자
“재수없다고 생각하자. 어차피 팀장이 불법은 아니라고 했잖아. 시간 좀 지나면 잠잠해질 거야. 쉬어 간다고 생각하고 당분간은 그냥 좀 놀자.”
20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창업컨설팅 업체 사무실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던 이 회사 직원들이 초조한 기색으로 기사를 검색하며 대화를 나눴다. 얼마 뒤 창업컨설턴트 세명이 컴퓨터 본체를 들고나와 어딘가로 떠났다. 양도양수 계약서와 임대차 계약서 등 각종 문서는 파쇄된 상태로 뭉치째 출입문 앞에 던져졌다. 이 건물에서 일하는 청소업체 직원은 “갑자기 대청소하는 건지 사무실에서 온갖 문서들을 내다 버리고 있다”며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직원들이 어제부터 갑자기 바빠졌다”고 말했다. 사무실 앞에서 만난 한 컨설턴트는 “일단 가지고 있던 서류들을 모두 없앴다. 기사 여파가 잠잠해질 때까지는 휴가라고 생각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한겨레> 탐사기획 ‘자영업 약탈자들’이 보도된 뒤 창업컨설팅 업체들이 관련 증거를 인멸하는 장면이 잇따라 포착됐다. 첫 기사가 나간 19일에는 ㅌ사, ㅈ사 등 업계 상위 창업컨설팅 업체들이 인터넷 사이트 10여곳을 일제히 폐쇄했다. 자신들이 계약을 맺고 있는 프랜차이즈로 고객들을 유인하는 영업 방식인 이른바 ‘감아오기’가 온라인 검색과 포털 스폰서 광고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신규 영업을 중단한 셈이다. 사이트 폐쇄 이유에 대해 한 창업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서버에 오류가 생겨서 홈페이지를 열지 못하고 있다. 복구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다시 열 예정”이라고 답했다.
20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창업컨설팅 업체 사무실 문 앞에 각종 문서가 파쇄된 상태로 쓰레기봉투에 담겨 있다. 장나래 기자
이들이 서둘러 서류를 없애고 컴퓨터를 옮기는 등 증거 인멸 작업을 벌이는 것은 탈세, 공인중개사법·표시광고법 위반 등 각종 불법 행위에 따른 처벌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점포 매매 계약에서 권리금 거래는 주로 현금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세금 신고를 하지 않는 관행이 많았다. 현금으로 거래되는 권리금 가운데 상당 금액을 수수료 명목으로 컨설팅 업체가 가져간다. 공인중개사법 위반 소지도 있다. 창업컨설팅 업체들은 양도양수 업무와 더불어 임대차 계약에도 관여한다. 임대차 계약 중개수수료는 거래 금액의 0.9%로 규정돼 있어 이를 초과하는 고액 수수료는 모두 불법이다. 무자격 부동산 중개 자체도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
갑자기 누리집을 폐쇄한 이유도 증거 인멸을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프랜차이즈 소송 전문 배선경 변호사(법률사무소 여름)는 “인터넷 광고에 나와 있는 매물이 허위로 밝혀지면 매출액과 피해 규모에 따라 무거운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며 “허위 매물은 창업컨설팅 사기로 이어지는 미끼와 같은 것이어서 한번 적발되면 이후 영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증거 인멸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신속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소상공인의 피눈물을 짜서 버는 불로소득인데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아 이중 삼중의 폭리를 취하는 구조”라며 “이미 보도를 통해 알려진 만큼 경찰이나 국세청은 피해자가 고발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바로 인지 수사 및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창업 희망자와 자영업자들을 교묘히 이용해 이들을 짓밟은 행위들을 엄단하고 제대로 된 창업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나래 김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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