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 재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과 경찰은 동일한 핵심 쟁점에 대해 정반대의 주장을 펴고 있다. 20일 당시 검찰과 경찰 수사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엇갈리는 주장의 내용과 향후 재수사 등을 통해 밝혀야 할 주요 내용을 짚어봤다.
①성폭행 피해자가 아닌 자발적 성매매? 2013년과 2015년 검찰은 김 전 차관을 불기소 처분하면서 “여러 증거와 참고인 진술 등에 비춰 강간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성폭행을 당했다면서도 성접대 및 성폭행 혐의로 조사받은 건설업자 윤중천씨와 계속 성적인 만남을 갖고, 함께 여행을 다니거나 용돈을 받아 쓰는 등 ‘피해자’로 보기 어렵다는 게 당시 검찰의 판단이었다. 반면 경찰은 일부 피해자는 광고모델 등으로 활동했던 연예인 지망생으로 ‘연예인이 되게 해주겠다’는 윤씨의 말에 속아 수년간 윤씨와 김 전 차관 등으로부터 성적 착취를 당한 피해자로 판단했다. 피해 여성이 가해자인 윤씨에게 ‘의존’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다른 성폭력 사건에서 종종 나타나는 ‘성범죄의 특수성’이라고 경찰은 설명한다.
②피해자 진술이 신빙성 없다? 검찰은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이 없고, 일부 피해자의 경우 진술과 반대되는 정황 증거가 많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2008년 변호사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강간이나 폭행 사실은 없고 ‘윤중천과 그간 쌓은 정과 의리가 있다’고 적었다는 것이다. 피해 여성이 ‘로비스트로 키워주겠다’는 윤씨 제안을 받아들여 재력가 등과 ‘자발적으로’ 성관계를 했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반면 경찰은 수사 착수 당시(2008년 3월) 해당 피해자가 두려움에 떨며 동생 집에서 나오지도 못하는 대인기피증을 호소했다고 설명했다. 또 경찰과 검찰 조사 때도 큰 틀에서 윤중천·김학의 등으로부터 성폭행당한 점을 진술한 점에 주목했다. 경찰은 ‘검찰이 피해자가 아니라고 미리 결론을 내린 뒤 빈틈 찾기를 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③동영상이 핵심 증거? 이 사건이 다시 국민적 공분을 사는 이유 중 하나는 김학의 전 차관의 얼굴이 선명하게 찍힌 동영상(2006년 촬영)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동영상은 김 전 차관의 특수강간 혐의를 입증하는 직접 증거가 아니다. 검찰은 물론 경찰도 동영상이 아닌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핵심이라는 데엔 동의한다.
다만 이 동영상에 대한 검경의 해석은 극명하게 갈린다. 당시 검찰 수사팀은 김 전 차관이 해당 동영상에 등장하는 건 확실하지만, 피해자가 특정이 안 된다고 봤다. 반면 경찰은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이 당시 동영상을 촬영했던 윤씨의 자세나 복장, 장소에 대한 묘사 등을 정확하게 진술한 점을 근거로 피해자라고 특정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이 동영상이 ‘성접대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김 전 차관과 윤씨의 거짓말을 입증할 핵심 증거로 봤다. 그러나 검찰은 “김 전 차관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동영상이 피해자를 폭행·강간했다는 증거가 되는 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④검찰 수사 때 외압은 없었나? 2013년 경찰은 출석 요구에 불응하는 김 전 차관의 체포영장(3차례) 및 출국금지(2차례)를 신청했지만, 검찰은 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은 당시 이 사건을 지휘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검사가 ‘영장을 청구하겠다’고 하더니, 윗선 보고 후에 ‘안 되겠다’고 번복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증거 부족으로 영장을 반려했을 뿐 외압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당시 수사팀 검사는 “처음에는 김 전 차관을 구속해야 할 사안이라고 판단했지만, 피해자들의 대화가 담긴 녹취록 등을 뜯어보니 경찰 쪽 내용과 다른 증거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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