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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속는 줄도 몰랐다” 창업초보 ‘컨설팅 사기’소송도 못 걸고 눈물만

등록 2019-03-22 04:59수정 2019-03-22 14:36

[자영업 약탈자들③‘무법지대’창업컨설팅]
권리금이 컨설팅업 존재 기반
산정방식 규정 없어 ‘농간’ 가능
고액수수료 불가능하게 법으로 규정하고
수수료 외 돈 받는 행위 금지하는 등
정부가 ‘컨설팅업 불법’ 단속 나서야

편집자주>한국은 사실상 세계 1위 자영업 국가다. 대략 한해 100만여명이 새로 창업하고, 80만여명이 폐업한다. 고용 규모로 보면 대기업 몇곳이 매년 생겼다 사라지는 셈이다. 이 거대한 창업 시장의 회로를 돌리는 ‘신흥 엔진’이 ‘창업컨설팅’이란 이름의 산업으로 존재한다. ‘권리금’이라는 연료를 태워 돌아가는 이 신흥 엔진은 자영업자들의 소박한 꿈과 정직한 땀마저 함께 갈아넣어 삼켜버린다. 자영업자에게 기생해 번성하는 컨설팅의 세계를 3차례에 걸쳐 깊이 들어가본다.

지난 19일 <한겨레> 탐사기획 ‘자영업 약탈자들’ 보도 이후 많은 사람이 창업컨설팅의 존재를 처음 들어본다고 말한다.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다. 한해 100만명이 창업하고 80만명이 폐업하는 큰 시장인데도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당하는 사람도 당하는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한 창업컨설팅 업체 누리집에 유명 프랜차이즈 점포 중심으로 매물이 올라와 있다. 컨설팅 업계 관계자들은 이 게시물들이 거의 모두 ‘감아오기’를 위한 허위 매물이라고 말한다. 누리집 화면 갈무리
한 창업컨설팅 업체 누리집에 유명 프랜차이즈 점포 중심으로 매물이 올라와 있다. 컨설팅 업계 관계자들은 이 게시물들이 거의 모두 ‘감아오기’를 위한 허위 매물이라고 말한다. 누리집 화면 갈무리

자영업자 부채, 전체 가계부채의 40% 차지

한국 사회의 자영업 부채 규모는 464조5천억원에 이른다. 전체 가계부채의 40%가 자영업 부채다. 자영업자 대책이 가계부채 대책의 중요한 부분인 셈이다. 자영업 부채의 대부분은 창업 때 발생한다. 자영업자들은 빚을 내 창업하고, 운영하는 기간에는 이 돈을 제대로 갚지 못한다. 가게를 팔고 나갈 때 권리금을 받아 갚는 게 보통이다. 자영업자들이 하는 흔한 자조 가운데 ‘자영업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권리금 장사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문제는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양도인과, 반대로 한푼이라도 덜 내려는 양수인 사이에서 컨설팅 업체가 농간을 부린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때 양수인이었던 자영업자는 곧 양도인이 된다. 폭탄 돌리기인 셈이다. “창업컨설팅은 자영업자를 공범으로 만든다. 양수인도 또 나갈 때는 팔아야 하니까 컨설팅 업체에 밉보이기 싫어한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그 속에서 창업컨설팅은 한 가게를 잡아서 그 가게 주인이 바뀔 때마다 수수료를 뽑아먹는 방식으로 가게의 뿌리를 뽑아먹는다.” 프랜차이즈 소송 전문 배선경 변호사(법률사무소 여름)의 말이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이다.

권리금, 컨설팅이라는 업태의 존재 기반

당해도 당하는 줄 모르는 가장 큰 이유는 창업컨설팅의 존재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권리금 산정이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얼마를 받아야 적정한 가격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창업컨설팅 업체들이 중간에서 권리금을 후려쳐 자신들의 수수료를 높이는 행위가 가능하다. 손님이 있는 것처럼 연기하며 권리금을 깎아놓은 뒤 최종 단계에서 손님을 붙이는 수법으로 애를 닳게 해놓고 나중에 1천만원이라도 챙겨주면 고마워하는 경우도 있다.

권리금을 둘러싼 갈등은 워낙 다양하고 이해관계가 복잡해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까지 권리금 논의는 건물주가 일방적으로 임차인을 쫓아내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창업컨설팅 업체에 의한 권리금 약탈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권리금 거래를 투명화하고 정당하게 과세를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권리금 신고 의무화와 표준 계약서 작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권리금 표준 계약서는 시설 권리금, 영업 권리금, 바닥(지대) 권리금 등의 항목 구분을 하고, 권리금 산출 근거를 명시하는 방법이다. 권리금을 투명하게 양성화하는 것만으로도 교란된 창업 시장 질서를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컨설팅 고액 수수료는 무법 상태

공인중개사들은 상가 매매를 하면 0.9%의 수수료를 받는데, 창업 컨설턴트들은 3% 이상은 기본이고 계약 당사자들은 모르는 금액까지 물밑에서 수령해간다. 문제는 컨설팅 수수료에 대한 법적 규정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 고액 수수료라는 지적에 대해 한 창업컨설팅 업체 대표는 “어떤 사람은 소고기를 1만5천원 이상에 절대 먹을 수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정말 좋은 물건을 1억~2억원 싸게 사니까 본인 스스로 수수료 2천만~3천만원 더 주겠다는 사람도 있다. 누구나 기준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창업컨설팅의 고액 수수료가 위법이라는 판례조차 없는 상황이다. 배선경 변호사는 “창업컨설팅 업체들이 임대차 계약까지 하는 것은 공인중개사법 위반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액 수수료를 받는 것이 사회 통념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법적 판단은 아직 없다. 창업컨설팅 업체들은 고액 수수료 문제가 공개되고 판례가 만들어질까봐 아예 소송에 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제라도 컨설팅 수수료를 법으로 규정하고 수수료 이외의 돈을 받는 행위를 금지하는 등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여놓을 필요가 제기된다.

<한겨레> 탐사기획 ‘자영업 약탈자들’ 첫 보도 직후 폐쇄된 한 창업컨설팅 업체 누리집. 인터넷 화면 갈무리
<한겨레> 탐사기획 ‘자영업 약탈자들’ 첫 보도 직후 폐쇄된 한 창업컨설팅 업체 누리집. 인터넷 화면 갈무리

초보 창업자 속여도 처벌 쉽지 않아

포털사이트에 ‘창업’을 검색하면 ‘초보·여성·대학생·소자본’ 등이 연관검색어로 뜬다. 내부적으로는 ‘귀 얇고, 상태 좋은 구매자’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창업컨설팅 업체들은 업종 불문하고 ‘총 투자액’과 ‘월 수익’만 강조해 유인하는데 ‘1억7천만원을 투자하면 월 1100만원을 벌 수 있다’거나 ‘8500만원을 투자하면 월 595만원을 벌 수 있다’는 식이다. 문제는 나중에 장사가 잘 안 될 때 이런 현란한 숫자가 허위라는 점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자영업자는 구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는 가게에 속아서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배선경 변호사는 “말로라도 ‘순수익 1천만원’ 같은 식으로 확정적으로 말했는데 사실이 아니었다면 사기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런데 증거를 미리 녹음해두는 경우가 정말 별로 없다. 분명 귀로 들었는데 그쪽에서 아니라고 우기면 답이 없다”며 “매출 조작의 경우 증거가 있으면 소송에서 이긴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본사 “우리도 피해자” 주장

자신들이 계약을 맺고 있는 프랜차이즈로 초보 창업자를 유인하는 영업 방식인 이른바 ‘감아오기’ 때문에 많은 초보 창업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초기 창업 비용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프랜차이즈 간의 과당 경쟁도 심화한다.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할 정도다. 창업컨설팅 업체와 함께 매장을 수백개 늘린 한 프랜차이즈 음료 업체 관계자는 “처음에는 도움이 되는 듯싶었지만 결국 우리가 제일 큰 피해자가 됐다”며 “우리 매장을 확장해놓곤 또 다른 우리 매장을 돌면서 다른 매장으로 바꾸거나 팔라고 한다. 창업컨설팅 업체와 손을 잡게 되면 결국 브랜드 가치가 하락한다”고 말했다. 창업컨설팅 업체에 빨대가 꽂히게 되면 프랜차이즈 업체조차도 결국 몰락한다는 얘기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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