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전업주부 김아무개씨는 이달 11일 ㅇ법무법인으로부터 ‘채무 지급절차를 이행하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법무법인’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게 다가와 덜컥 겁부터 났다. 더욱이 ㅇ법무법인은 김씨를 ‘빚쟁이’(채무자)로 지칭했다. 4년 전 인력공급업체 ㅁ사의 소개로 한 공장 제조 현장에서 석 달간 일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일용직으로 신고돼 내지 않았던 건강보험료와 그에 따른 이자 20만 120원을 내놓으라는 내용이었다.
김씨가 받은 문자메시지를 보면 ㅁ사는 2017년 4월 국민건강보험공단 금천지사로부터 건강보험료 미가입 사업장으로 적발돼 2014∼16년 미납 보험금 약 3억 6천만원이 부과받았다. 한 달 이상 고용한 근로자에 대해 건강보험 등 4대 보험에 의무 가입해야 한다는 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까지 미납금을 모두 납부한 ㅁ사는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건강보험료는 사업자와 근로자가 절반씩 부담해야 한다’는 현행 법령에 주목했다. ㅇ법무법인을 고용했고, 김씨 등을 ‘부당이득금을 가로챈 채무자’ 규정했다. 또 “돈을 갚지 않으면 법적인 조치에 착수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납부시한·계좌번호·예금주 등을 알려주며 김씨가 내야 했을 석 달 치 보험료를 지금이라도 토해내라고 했다. 확인해 보니 당시 함께 파견됐던 근로자들도 같은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한다. 김씨 쪽은 ㅁ사가 ‘벼룩의 간을 빼먹으려 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김씨 쪽 대리인은 “금액이 적어 그냥 낼까도 고민했지만 매우 부당한 처사라 대책을 의논하고 있다”며 “김씨는 당시 어떤 공지도 받지 못한 채 사업자가 정해 준 급여를 받았을 뿐인데, 마치 공범이라도 된 듯 채무이행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법률원 차승현 변호사는 “이 사례는 파견법상 금지되는 제조업에 대한 근로자 파견을 하면서 이를 숨기려고 근로자를 일용직으로 신고해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은 거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춘성 노무사는 “일용직 허위 신고해 나중에 사업자에게 미납 보험료가 한꺼번에 부과되는 일은 종종 발생하지만, 이렇게 법무법인을 써서 소액까지 받아내려 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며 “4대 보험을 납부하고 고지할 의무는 사업자에게 있다. 향후 이런 식으로 법을 악용한 피해자 발생하지 않도록 법령을 보완해 보험료 미납부에 대한 책임이 사업자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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