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쫓겨나는 건 쉽고 권리를 지키는 건 어렵다” 임차상인 만화 출간

등록 2019-03-24 11:04수정 2019-03-24 20:30

임대차 분쟁 다룬 만화 <일리 없는 세상> 30일 출간
바뀐 건물주는 수개월 연락없다
‘월세 미납’ 이유로 계약해지 통보
건물을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공간서 쫓겨난 이야기
하일리씨 꽃집의 건물주가 갑자기 바뀌었다. 하씨는 그 소식을 전해듣지 못했고, 월세 미납 등의 이유로 집과 가게를 비워달라는 연락을 새 건물주로 부터 받았다. 만화 <일리 없는 세상>의 한 장면. 자료 공기씨 제공.
하일리씨 꽃집의 건물주가 갑자기 바뀌었다. 하씨는 그 소식을 전해듣지 못했고, 월세 미납 등의 이유로 집과 가게를 비워달라는 연락을 새 건물주로 부터 받았다. 만화 <일리 없는 세상>의 한 장면. 자료 공기씨 제공.
“3년 간 꽃집을 운영해왔던 사람으로서 너무 억울해서 이 글을 씁니다. 제가 사랑하는 공간을 지키고 싶습니다.”

3년 동안 꽃 장사를 해온 임차상인 하일리씨는 2018년 9월께 건물주로부터 임대차 계약을 종료하고 건물 1층에 있는 꽃가게와 2층에 위치한 하씨의 집을 비워주라는 통보를 받았다. 건물주는 “2018년 6월부터 하씨가 3기의 월차임을 미납했다”고 말했고 하씨는 “건물주는 건물을 매입한 뒤 어떤 문자도 없었고 계좌번호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씨는 쫓겨나지 않고 자신의 공간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언젠가 접한 것 같은 익숙한 임대차 분쟁 사례가 만화 속으로 들어갔다. ‘맘편히 장사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맘상모)의 상임활동가 공기(본명 한소영·26)씨가 펴낸 단편 만화 <일리 없는 세상>을 통해서다. <일리 없는 세상>에는 갑작스럽게 건물주가 바뀌고, 그 사실을 전해 듣지 못하고, 월세 미납 등의 이유로 계약 종료 사실이 적힌 내용증명을 받는 임차상인 ‘하일리’씨의 이야기가 담겼다. 세 들어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현실을 담은 이 만화는 오는 30일 출간을 앞두고 있다. 출간에 필요한 돈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을 통해 마련했고 지난 10일 목표 금액의 2배가량인 400여만원을 모아 모금을 마쳤다.

공기씨는 자신의 만화를 “건물을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쉽게 자신의 공간을 박탈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민단체 활동가로 지내면서 계약 종료를 통보받는 세입자들의 모습을 숱하게 봐왔다”며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건물주가 아니라면 우리는 모두 세입자이거나 세입자가 될 수 있는 처지다. 그래서 이 만화는 누구나 겪을 수 있고 전체가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 개정 등으로 보호범위가 늘어났을 뿐 여전히 ‘갑질’을 당하는 상인들도 많고 보호범위를 벗어나서 여전히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인들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언젠가 자기 공간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일리 없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두 가지 사건이 직·간접적으로 책의 출간에 여향을 미쳤다. 2009년 ‘용산참사’와 2018년 ‘서촌 궁중족발 사건’이다. 그는 “2009년 용산참사 때를 계기로 한국에서 장사를 한다는 것, 임차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다”며 “수많은 사람들이 제도의 미비함으로 터전에서 쫓겨나고 그게 곧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 된다고 처음 자각했다”고 말했다. 그런 계기로 상가 세입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된 공기씨에게 또 다른 충격을 줬던 게 서촌 궁중족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만화의 직접적인 모티브가 됐다. 2018년 6월 임차인인 궁중족발 사장이 건물주에게 망치를 휘둘러 전치 12주의 상해를 입힌 것으로 유명한 이 사건의 밑바탕에는 건물주가 보증금과 월세를 3~4배가량 올리고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세입자 내외가 퇴거명령에 불응하다 수차례 강제집행까지 이뤄진 2년여의 과정이 깔려 있다. 공기씨는 이를 두고 “궁중족발 사건은 한국 사회가 임차인을 대하는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며 “그때의 충격을 계기로 궁중족발 사건과 닮은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쫓겨나는 건 너무 쉽고 권리를 지키는 것은 어려운 세상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리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공기는 자신의 만화 제목이 왜 <일리 없는 세상>인지 설명하며 이 같이 말했다. 이는 용산참사와 궁중족발 사건, 그외 수많은 임대차 분쟁을 보고 겪으며 그가 품게 된 질문이기도 하다. 그 질문을 담은 만화 <일리 없는 세상>은 오는 30일 북콘서트를 하고, 각지의 독립서점에서 판매가 이뤄질 예정이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