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서울 중구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열린 포항지진과 제천화재 참사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국내 중대재난 피해지원 실태조사 발표회에서 황전원 특조위 지원소위원장(오른쪽 둘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말만 특별재난지구지. 다른 사람들이 보면 다 집 지어주는 줄 알거든요. 피부로 와닿는 게 없어요. 우리 같은 경우 집을 지으려면 평당 400만원씩은 더 들어가요. 특별재난지역 혜택요? 특별재난지역에는 ‘너희는 특별히 더 죽으라’ 해서 특별재난지구인 거예요”
경북 포항 홍해읍 성곡3리에 사는 ㄱ씨는 포항 지진 이후 정부의 지원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ㄱ씨는 포항이 특별재난지구로 지정됐지만, 실질적으로 받은 지원은 없다고 생각했다. 포항시 홍해읍 희망보금자리마을에 사는 ㄴ씨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는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지원을 약속했으면서도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했다. “대통령이 작년에 오셔서 분명히 ‘가구까지 보상해 주겠다’고 하셨대요. 지금은 완전 ‘나 몰라라’ 예요. 어떤 분들은 여전히 보상받을 수 있으거라 생각하고 가구를 치우지 않은 분들도 있어요”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산하 지원소위원회가 29일 ‘국내 중대재난 피해지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가미래발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0월부터 2개월간 포항지진 피해자 40명과 제천화재 피해자 30명을 대상으로 △경제 상태변화 △신체적 건강변화 △심리적 피해상황 변화 △구호지원에 대한 평가 등을 설문·심층조사한 결과물이다.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의 피해지원 종합대책을 수립하는 지원소위원회가 우리 사회가 피해자를 바라보는 인식과 지원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재난 이후 피해자들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포항지진 피해자의 16.1%, 제천화재 피해자의 36.7%가 ‘자살을 생각한다’고 답했고, 실제 자살을 시도했다는 응답도 각각 10%와 6.7%였다. 이들은 위염, 위궤양, 만성 두통, 고혈압, 당뇨 등 10여 가지 질병을 앓고 있었다. 포항지진 피해자 80%와 제천화재 피해자 56.6%가 “건강이 나빠졌다”고 답했으며, 포항지진 피해자 67.5%, 제천화재 피해자 83.3%가 “새로운 질환을 겪는다”고 답했다. 포항지진 피해자들의 82.5%는 불안을 호소했고, 제천화재 피해자들은 73.3%가 불면증에 시달렸다.
29일 오전 서울 중구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열린 포항지진과 제천화재 참사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국내 중대재난 피해지원 실태조사 발표회에서 연구 책임자인 박희 서원대 사회교육과 교수가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연구진들은 재난 피해자들이 국가의 진상조사 노력에 대해 부정적이라며, 재난원인 및 대응과정 조사를 위한 상설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의 진상조사와 관련자 처벌을 위한 노력이 제대로 이뤄졌냐’는 질문에 포항지진 피해자의 80% 가량이 ‘그렇지 않다’고 부정적으로 답변했다. 재천화재 피해자들 역시 66.6%가 부정적이었다.
연구진들은 지원이 피해자들의 필요에 맞춰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포항지진 피해자의 84.6%가 ‘요구를 반영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답했고, 제천화재 피해자 역시 같은 답이 80%에 달했다. 황전원 지원소위원회 위원장은 “피해자들의 의사 반영 없는 지원은 도움이 아니라 2차 가해가 될 가능성까지 있다”며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피해자에게 내리는 수혜가 아니라 권리”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종합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발표를 통해 △재난원인 및 대응과정 조사를 위한 독립적인 상설기구 설치 △피해지원 재정 확충을 위한 기금 신설 △재난지원의 공정성과 형평성 확보 △의료 및 심리지원의 한시성 문제 개선 필요 △안전취약계층에 대한 우선 지원 필요를 제안했다. 황전원 소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면서 “정부의 깊은 관심과 각성을 촉구한다”고 당부했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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