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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폭언·폭행 당한 산업기능요원 사직서에… 항소심 “부당해고” 판결

등록 2019-03-31 18:54수정 2019-03-31 19:54

‘해고는 입대’ 악용해 폭행·폭언
항소심 “밀린 임금·위자료 3천여만원 지급하라”
2017년 1월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병무청 제1병역판정검사장에서 입영대상자가 검사를 받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7년 1월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병무청 제1병역판정검사장에서 입영대상자가 검사를 받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6년 4월 보충역 판정을 받은 ㄱ씨는 한 제조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근무한 지 겨우 두 달이 지난 시점, 대리급 직원은 자신의 업무지시에 제대로 대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ㄱ씨의 배를 걷어찼다. “너 XX, 똑바로 안 해?” “내가 조금만 못하면 XX 그거 꼬투리 잡아갖고 XX게 XX하고 아니꼬울 거야” 등 욕설을 포함한 폭언도 상습적이었다. 밤 11시까지 야근을 해도 야근수당은 지급되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 얘기 두 번 이상 하면 넌 앞으로 쉬는 시간 없다”는 등 근무시간을 빌미로 한 협박성 발언도 수시로 들어야 했다.

하지만 ㄱ씨는 산업기능요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제대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다. 산업기능요원 제도에 따르면, ㄱ씨와 같이 보충역에서 편입된 경우 2년 2개월 근무하면 병역의무를 마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복무 기간을 마치지 못하고 해고되거나 퇴직하면 현역병으로 입영하거나 사회복무요원으로 소집된다.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한 기간 중 4분의 1 만이 인정된다.

ㄱ씨가 병무청과 고용노동부에 도움을 요청하자 사측은 ㄱ씨에 지속적으로 전직을 강요했다. 산업기능요원을 해고하해 산업기능요원 인원배정이 줄어드는 것을 피하기 위한 ‘전직을 가장한 해고’였다. ㄱ씨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다는 이유로 난로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등 비인격적 대우를 받다가 결국 2017년 3월 자포자기 심정으로 사직서를 냈다. “고용관계에서 발생한 임금 채권에 대한 권리를 모두 포기하고 이와 관련해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합의서까지 작성했다. 우울증을 앓게 된 ㄱ씨는 다른 업체로 전직했지만 10일 만에 퇴직했다. 결국 산업기능요원 편입이 취소돼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게 됐다.

ㄱ씨는 “사측의 처분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 밀린 임금과 위자료를 배상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사측은 폭언·폭행 사실을 부인하면서 “회사의 처분에 대해 어떤 문제 제기도 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소송은 무효”라고 반박했다. 1심 재판부는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에서 발생한 폭행, 폭언은 인정하면서도 ㄱ씨가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봤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민사38부(재판장 박영재)는 ㄱ씨가 자발적으로 퇴직한 것이 아니라 정당한 사유 없이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보고 사측이 밀린 임금과 위자료 등 3천23만원을 ㄱ씨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폭언, 폭행, 야간수당 미지급 등을 비롯한 사측의 부당한 대우를 벗어나기 위해 사직을 희망한 것이었으므로 자발적으로 사직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측과 작성한 합의서의 효력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해당 합의는 ㄱ씨의 사직이 유효한 경우에 한해 적용돼야 한다. 무효이자 위법하게 사직서를 제출해 불이익을 입게 된 ㄱ씨가 사법적 구제수단까지 이용하지 못하도록 한 합의는 근로기준법에 위반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측과의 계약 기간이 이미 종료됐다는 이유에서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은 각하했다.

‘해고는 곧 입대’라는 산업기능요원의 신분상 한계 때문에 임금체불·언어폭력 등 사측의 부당대우를 감내해야 하는 피해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노동사회단체 직장갑질119는 병역 대체복무요원의 갑질 피해 사례 15건을 공개하며 정부에 이들에 대한 인권 실태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경재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부당대우를 받아도 강하게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산업기능요원의 신분상 한계를 많은 경우 사용자들이 악용하고 있다. 다수 사용자들이 이번 항소심 판결을 경고성 판결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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