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처음 공개된 김용균씨 사고 현장
원청 서부발전 관계자, 고 김용균씨 사고 현장 앞에서
“여기에 고개를 넣고 점검하지 않아도 된다” 발언
3일 현장점검 나선 진상규명위 위원과 고성 오가
현장점검 때마다 작업종료 이유로 컨베이어 벨트 ‘스톱’
노동자들 괴롭히는 소음·분진 파악 방해 ‘꼼수’ 지적
원청 서부발전 관계자, 고 김용균씨 사고 현장 앞에서
“여기에 고개를 넣고 점검하지 않아도 된다” 발언
3일 현장점검 나선 진상규명위 위원과 고성 오가
현장점검 때마다 작업종료 이유로 컨베이어 벨트 ‘스톱’
노동자들 괴롭히는 소음·분진 파악 방해 ‘꼼수’ 지적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위원들이 3일 오후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태안/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 사고 책임 여전히 용균씨에게 돌린 서부발전 사고의 책임을 용균씨에게 돌리는 듯한 발언을 들은 위원은 현장에서 즉시 항의했다. ‘원청에서 청음봉을 지급했냐’는 위원의 질문에 서부발전 관계자는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서 지급해야 하는 것’이라고 맞섰다고 한다. 위원은 “나는 현장에 청음봉이 있다거나 청음봉으로 소음을 확인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며 “만약 노동자들에게 청음봉이 지급이 안 됐다면 이 역시 원청이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서부발전 관계자의 발언은 앞서 공개된 발전 노동자들의 증언과도 어긋난다. 용균씨 사고 직후 발전 노동자들은 “용균씨가 숨진 지점은 고속으로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가 방향을 전환하는 곳으로, 분진이 심하고 소음도 심해 기계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위험하더라도 시설 안쪽으로 팔과 머리를 넣어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 바 있다. _________
2. 옥내저탄장 가스감지기 실효성 논란 이날 오후 3시부터 약 3시간 동안 발전소 전반을 둘러본 현장점검에서는 이처럼 위원들과 하청 노동자들이 서부발전 관계자들과 의견 충돌을 빚거나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건물 안에 석탄을 쌓아둔 옥내저탄장에 설치된 가스감지기의 실효성을 두고도 입장차가 드러났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이상 수치에 도달하면 알람이 울리는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노동자들은 “길이가 900m에 달하는 방대한 공간에 감지기는 24개에 불과하고 내부가 워낙 시끄러워서 알람은 들리지도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 진상규명위 위원은 서부발전 관계자에게 “노동자들이 저탄장 어디서든 가스 수치를 확인할 수 있게 큰 모니터들을 설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_________
3. 현장점검 때만 돌아가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 ‘상탄(저탄장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석탄을 싣는 작업)이 끝났다’는 이유로 멈춰있는 컨베이어 벨트를 보여준 서부발전의 ‘꼼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석탄 없이 잠깐 가동되는 모습을 볼 수는 있었지만 실제 노동자들이 얼마만큼의 소음과 분진 등에 시달리는지를 알기에는 한참 모자란 상황만 공개됐다.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에서 태안화력발전소 현장방문을 했을 때도 똑같은 이유로 벨트가 돌아가지 않았다. 보여주려면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데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태안화력발전소 탈황설비 가운데 석고 이송 벨트의 모습. 고 김용균씨 사고 뒤 노란색 펜스와 계단(사진 오른쪽)이 설치됐는데 정작 계단을 올라가면 점검 지점에 접근할 수가 없다.
4. 노동자 의견 수렴 없는 설비 개선 현장점검에서는 서부발전이 노동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은 채 설비 개선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연소가스 가운데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황산화물·질소산화물를 제거하는 설비인 탈황설비에도 석고와 석회석을 옮기는 컨베이어 벨트가 있다. 석고 이송 벨트를 점검하기 위해서는 기계를 직접 밟고 사람 키보다 높은 점검 지점으로 올라가야 했는데 용균씨 사망사고 뒤 서부발전은 점검 지점을 에워싸는 노란색 펜스를 치고 한쪽에 계단을 설치했다. 그런데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펜스가 막고 있어 정작 넘어갈 수가 없게 된다는 게 현장 노동자들의 지적이다. _________
5. 여전히 1인 1조 근무 하는 석고·석회석 이송 벨트 석고·석회석 이송 벨트도 석탄 이송 벨트와 마찬가지로 협착·끼임 사고 등의 가능성이 큰데 여전히 1인 1조 근무를 하고 있는 것도 시급한 개선 과제로 꼽혔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용균씨 사고 이후 긴급안전조치에 따라 2인 1조를 시행 중인 석탄 이송 벨트 역시 인력충원이 원활하지 않아서 1인당 업무량만 늘어났다고 꼬집었다. <한겨레>에 서부발전 관계자의 발언을 공개한 해당 위원은 “문제를 드러내야만 수술이 가능하다. 자꾸 감추면 곪아 터질 수밖에 없는데 서부발전이 좀 더 전향적인 태도를 가지고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태안 서부발전 현장점검과 함께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 진상규명위는 7월31일까지 4개월 동안 전국 9개 화력발전소에 대한 현장조사, 관계자 인터뷰 등을 진행한다. 진상규명위는 석탄발전소 중대 안전사고의 근본적인 재발방지대책이 포함된 종합보고서를 작성해 정부에 대책 이행을 권고할 예정이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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