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8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안에서 사복을 입은 경찰관이 정연주 사장의 해임을 반대하는 KBS 직원의 목을 누르고 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제공
2008년 8월8일 정연주 <한국방송>(KBS) 사장 해임을 위한 임시 이사회 개최에 항의하는 시민과 KBS 직원들을 해산할 당시 과도한 경찰력이 행사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경찰청 진조위)는 9일 ‘KBS 공권력 투입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KBS 본관 안에 직원들 100여명 정도가 모여 있었고 이를 해산하기 위해 이미 수십명의 청원경찰이 있었음에도, 경찰이 7개 중대 규모의 사복 경찰관기동대를 협소한 건물 복도로 투입한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연주 한국방송공사 사장의 해임 재청을 가결한 이사회가 열린 2008년 8월8일 서울 여의도동 한국방송공사 본관을 경찰차량들이 막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8월5일 감사원은 부실 경영을 빌미로 KBS에 정 사장의 해임을 요구했고, 3일 만인 같은달 8일 KBS는 임시이사회를 열어 정 사장을 해임했다. 당시 검찰은 KBS가 ‘법인세 등 2300억원을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으로 국세청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1심에서 이긴 뒤 2심에서 500억원만 환급받기로 하고 소송을 취하한 사건을 정 사장의 배임 혐의로 몰아 수사 중이었다. 이같은 공영방송 사장 ‘찍어내기’가 언론의 독립성을 크게 해치는 일이라고 판단한 시민과 KBS 직원 등은 2008년 8월7일부터 서울 여의도 KBS 사옥 앞에서 임시이사회 개최를 막기 위한 ‘공영방송사수 촛불문화제’ 등을 열었다. 경찰은 이날 집회에 참여하는 인원을 막기 위해 KBS 외곽에 20개 기동대를 배치했고, 촛불문화제를 불법집회로 규정해 성유보 방송장악저지 범국민행동 상임운영위원장, 최상재 전국언론노조위원장 등 24명을 연행했다. 또 임시이사회가 열린 다음 날에는 총 11개 중대를 추가로 투입하고 이 가운데 사복을 입은 경찰 기동대 7개 중대를 KBS 본관 3층 제1회의실 이사회장 앞으로 보내 이사회 개최를 반대하는 KBS 사원들을 강제로 해산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정보관은 이사회 전날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합숙하던 KBS 여당 추천 이사 6명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이사회장에 입장하도록 본관 안내를 맡기도 했다.
정연주 한국방송공사 사장의 해임 재청을 가결한 이사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동 한국방송공사 본관에서 2008년 8월8일 오전 경찰관들이 이사회가 끝나자 빠져나가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경찰청 진조위는 당시 유재천 KBS 이사회 이사장의 신변보호요청으로 경찰 기동대가 투입된 것은 자체는 문제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신변보호요청 전에도 KBS 본관 2층 시청자광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경찰 기동대가 투입됐고, 이들이 경찰관 표식이 없는 사복을 입은 점 등은 문제라고 봤다.
경찰청 진조위는 “KBS 공권력 투입 자체가 부적법한 것은 아니라 해도 공영방송의 문제는 자율에 맡기고 경찰의 투입은 최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경찰력의 행사 대상이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할 공영방송사일 경우, 이러한 원칙은 더욱 엄격하게 준수되어야 하지만 당시 이같은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다고 평가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청 진조위는 또 “KBS 내 경찰력 투입의 목적은 ‘회의실 내의 이사들의 신변보호’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을 위한 임시이사회의 원활한 개최’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경찰청 진조위는 이어 향후 언론기관에 경찰력 투입을 할 경우 명확하고 객관적인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하고 경찰부대는 원칙적으로 제복을 착용하되, 예외적으로 사복을 착용할 경우에는 경찰관임을 표시하는 증표를 확실히 제시할 것 등을 권고했다.
한편, 이날 경찰청 진조위는 공익 및 부패행위 신고자 보호 미흡과 관련한 4건의 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경찰청 진조위 조사 결과, 경찰은 사무장 병원을 신고한 한 공익제보자의 진술서를 실명으로 작성해 이후 재판 과정에서 신원이 공개되도록 했다. 이후 이 공익신고자는 피신고자의 살해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공익신고자의 신고를 취소하고 공을 가로챈 사례도 있었다. 경찰이 해상 면세유를 빼돌려 판 사업주를 신고한 공익신고자에게 공익신고를 취소하라고 한 뒤 인지 사건으로 수사를 진행해 자신의 공인 것처럼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경찰청 진조위는 이러한 행위가 누구든지 공익신고자에게 공익신고를 취소할 것을 강요하지 못하게 규정한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15조 2항을 어긴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밖에도 경찰청 진조위는 의료법 위반행위를 신고하기 위해 진료기록을 봤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당해 2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받은 부패신고자와 자신이 일하던 사회단체에서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1억4000만원이 부정하게 사용된 사실을 알고 신고했지만 공범으로 기소돼 벌금형을 받은 부패신고자 등을 경찰에서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경찰청 진조위는 유사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공익신고자 및 부패행위 신고자들에 관한 업무지침을 보완하고 관련 경찰관들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할 것 등을 권고했다.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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