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소득세 156억원을 탈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엘지(LG)그룹 총수 일가 등의 변호를 그룹 지주사인 ㈜엘지의 사외이사가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외부인으로 경영을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의 임무와 배치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상법은 사외이사의 이해상충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24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 심리로 열린 이 사건 공판준비절차에는 총수 일가 등을 대리하는 노영보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가 출석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차관급) 출신인 노 변호사는 지난해 9월 탈세 혐의로 기소된 고 구본무 엘지 회장의 남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장녀 구연경씨 등 엘지 총수 일가 14명과 엘지 전·현직 재무관리팀장 2명의 변론을 지난해 10월부터 맡아왔다.
문제는 노 변호사가 2013년부터 지난달 15일까지 6년 동안 ㈜엘지 사외이사를 지냈다는 점이다. 6개월가량 사외이사로 있으면서 동시에 총수 일가 변호인으로도 활동한 셈이다. 대주주의 독단과 전횡을 막기 위해 대주주와 관련없는 외부인을 이사회에 참여시키도록 한 사외이사제 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다.
앞서 구 회장 등은 2007년부터 10여년간 엘지와 엘지상사 주식 수천억원어치를 102차례에 걸쳐 장내에서 거래하면서 특수관계인 간 거래가 아닌 일반 거래인 것처럼 꾸며 양도세 156억원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주식거래 중에는 구광모 엘지 회장이 구매자로 참여한 것도 포함돼 있다.
이 사례는 ‘거수기’ 논란이 끊이지 않는 대기업 사외이사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제개혁연대의 이총희 회계사는 “사외이사가 특수관계인인 총수 일가의 변론을 맡는 것은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렇게 되면 사외이사가 회사의 의사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은 변호사는 “매우 심각한 이해상충 행위다. 이런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상법은 ‘사외이사로서의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기 곤란하거나 상장회사의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는 사외이사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 변호사는 2013년 3월 그룹 사외이사에 선임됐고 2016년 재선임됐다.
엘지는 사업보고서를 통해 “이사회는 대주주 및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사외이사 선임에 공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엄격한 심사를 거친 후 주주총회에서 선임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노 변호사의 담당업무에 대해서는 “전사 경영 전반에 대한 업무”라고 공시했다. 노 변호사는 탈세 사건 변론을 맡은 시기를 포함해 2013년부터 6년 동안의 사외이사 기간에 표결에 참여한 모든 안건에 찬성 의견을 냈다.
엘지 쪽은 “그룹 관련 사건이 아니고 개인 주주 사건을 선임한 것이다. 사외이사 역할과 충돌되지 않고 업무 연관성도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노 변호사는 “개인에 대한 변호로, 위법하지 않아 맡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국세청의 탈세 조사 때는 노 변호사가 고문으로 있는 법무법인 태평양이 엘지 총수 일가를 대리했다. 현재 이 사건 재판에는 노 변호사를 비롯해 태평양 소속 변호사 12명이 투입돼 있다.
최현준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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