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한일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던 ‘진주 아파트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모습.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진주 참사는) 내가 일으킨 사건도 아닌데 해명을 해야 하니 굉장히 괴롭다. 정신질환 앓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은 처참하다 못해 비참하다. 그 정도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질 않다. 언론에서 너무 치안 문제로 몰아가고 있다. 과거엔 범죄자 취급을 하더니 요즘엔 살인자 취급을 한다. 2000년엔 (정신장애인) 강제입원율이 93%였다. 격리가 횡횡하던 그 땐 사건이 없었나. 응급시 위기 대응이 문제 해결의 핵심인데 이러한 체계가 한국엔 갖춰지지 않았다. (정신건강복지법상 마련하라고 돼 있는 응급대응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건, 관심이 없어서일 거다.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
‘진주 아파트 참사’ 를 비롯한 비극적 사건이 잇따르자,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정신건강복지센터 종사자들이 나서 정부가 제대로 된 정신건강 응급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을 고립·배제하는 방향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시급히 마련해야 또 다른 비극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평화당 김광수 의원실과 정신건강서비스 정상화 촉구 공동대책위 등 주최로 열린 ‘긴급 좌담회: 진주 사건은 막을 수 없었는가’에서 제철웅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발제문을 통해 “경찰이 진주 참사 피의자에 대한 병력을 알았건 몰랐건 응급입원(경찰이 환자를 데려가 의사 진단을 받은 뒤 3일간 입원시키는 제도)을 시킬 수 있었다. 막을 수 있는 피해를 막지 못했다.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광역자치단체장은 응급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에 대한 총괄 지원을 해야하지만 정부도 지자체도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짚었다.
제철웅 교수는 “아파트나 집합건물 등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자·타해 위험이 있어 보이는 사람에 대해 신고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이러한 신고를 24시간 받은 뒤 적절한 위기개입을 할 수 있도록 전문가로 구성된 응급대응팀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응급대응팀이 상황을 판단해 필요한 경우 경찰과 119구급대를 불러 응급입원을 시키되, 악화된 증상을 완화·진정시키는 위기 쉼터 마련 등 입원 외에 위기상황 대처 선택지가 다양해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응급입원을 비롯해 비자의입원(강제입원)을 지속해야 할 경우 환자 이야기를 들어주고 적절한 조력을 통해 치료에 대한 자발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절차보조 당사자 옹호 서비스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각 지역에 설치된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대한 예산·인력 등 지원 강화가 절실하다는 지적도 거듭 나왔다. 전준희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 회장은 “참사가 일어난 진주의 경우 인구 35만명인데 센터 인력이 6명이었다. 센터에선 (정신건강 증진) 캠페인을 비롯해 다양한 업무를 한다. 제대로 된 업무수행이 애초 불가능하다”며 “지난 20년 동안 정부나 지자체, 정치인들에 (지역사회 정신건강 인프라) 개선을 촉구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한 결과로 진주 참사가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2018년 정부가 지자체에 5:5 매칭펀드 방식으로 위기대응팀 등 정신건강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게 하는 사업을 진행했지만 전국 2개 지자체만 이를 받아들였다. 만약 지자체에서 그런 정책을 하겠다고 하면 지역 의회에서 난리가 났을 것이다. 왜 그런데 돈을 쓰냐고….”고 지적했다.
전준회 회장은 현재 치료 환경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어떤 이들에겐 입원이 치료 기회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낙인 찍히고 자아를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강제입원 과정에서 되레 트라우마나 병을 얻으면서 많은 환자들이 다시 입원하는 걸 거부하고, 입원 권유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긴급 좌담회: 진주 사건은 막을 수 없었는가’에 참여한 토론자들 모습. 박현정 기자
장창현 원진녹색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탈원화'는 정신질환 치료 방법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며, 탈원화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시각”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그는 “정신장애인 탈원화를 진행한 유럽·미국 등 선진국 사례를 참조해 시민들의 정신건강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정신장애인들의 처절한 삶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정신병력이 있는 사람을 범죄화하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했다.
“평생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은 4명 중 1명이고, 100명 중 1명은 조현병에 노출될 수 있다. 그러나 4명 가운데 1명만이 치료를 받고 있다.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의 범죄율은 1.2%,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 범죄율은 0.08%였다. 다른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타해 위험성은 환자가 자신을 자해할 위험성의 1000분의 1이다. 질환이 없는 경우에 견줘 정신장애인이 일찍 사망할 확률은 3배, 자살할 확률은 8배이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 기대수명은 82.4살이지만 정신장애인은 59.3살이다. 1970년 우리나라 평균 수명 63.2살인데 이러한 수준보다 낮다. 치료를 받으면 범죄 위험성이 94% 감소한다는 연구가 있다.”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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