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옛 서울역 앞 광장에 2천여명의 스리랑카인이 모여 지난 21일 발생한 스리랑카 연쇄 테러로 숨진 피해자들을 애도하고 테러를 저지른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를 규탄했다. 연합뉴스
28일 오후 1시께 옛 서울역 앞 광장. 평소 같으면 낮잠을 자는 노숙인들만 드문드문 보였을 광장이 이날만큼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광장을 채운 2천여명은 모두 스리랑카인들로, 이들이 든 손팻말에는 ‘그런(테러를 저지른) 스리랑카인을 용서할 수 없다’, ‘확실한 종교이면 무기가 필요 없다’, ‘스리랑카를 위해 기도를 하십시오’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최악의 연쇄 테러가 이국땅에 흩어졌던 이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지난 21일 스리랑카에서는 교회와 고급 호텔 등 8곳에서 연쇄적으로 폭발물이 터져 253명이 숨지고 500여명이 다쳤다. 기독교도와 외국인을 노린 테러였다. 스리랑카 인구 2200만명 가운데 절대다수인 70%는 불교도이고, 12.6%가 힌두교도, 9.7%가 무슬림, 7.6%가 기독교도이다. 스리랑카 정부는 이번 테러가 국내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내셔널 타우히트 자마트’ 및 이와 관련된 다른 조직이 함께 범행을 저질렀으며 이들이 ‘이슬람 국가’(IS)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범인 가운데 스리랑카 재계 거물의 아들 둘과 며느리가 포함된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날 모인 스리랑카인들이 단체로 맞춰 입은 흰색 반소매 티셔츠 뒤에 ‘이슬람 테러리즘에 반대한다’(Against muslim terrorism)는 문구가 적혀 있던 배경이다. 이들은 하얀 국화를 헌화하며 테러 피해자들을 애도했다.
28일 오후 옛 서울역 앞 광장에 2천여명의 스리랑카인이 모여 지난 21일 발생한 스리랑카 연쇄 테러로 숨진 피해자들을 애도하고 테러를 저지른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를 규탄했다. 스리랑카인들이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며 하얀 국화를 헌화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이날 집회를 주최한 이주여성 단체 ‘톡투미’의 대표 이레샤 페라라(42)는 “테러는 어느 나라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종교를 떠나서 전 세계적인 문제”라며 “테러에 반대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결혼 뒤 한국 국적을 얻고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한다는 페라라는
“한국 사람으로서도 이런 테러에 눈을 감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집회에 나온 스리랑카인들은 대부분 불교도였다. 한국에서 20년을 살았다는 프레마말(49)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독교도라도 다 같은 스리랑카 국민”이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또 “이슬람교를 믿는 스리랑카인을 규탄하는 게 아니라 테러를 저지르는 극단주의 단체를 규탄하는 것”이라며 자칫 불거질 수 있는 이슬람 혐오에 선을 긋기도 했다.
라지와(왼쪽에서 4번째)와 스리랑카인들이 스리랑카 국기와 태극기를 나란히 들고 있다. 라지와의 친구 아내는 기독교도로 지난 21일 연쇄 테러로 부상을 입었다. 이유진 기자
이번 테러로 지인이 피해를 보았다는 스리랑카인도 집회에 나왔다. 인천에서 온 라지와(33)는 “친구의 아내가 이번 테러로 다쳤다”고 밝혔다. 그는 “나와 내 친구는 불교도지만, 스리랑카에서는 불교도와 기독교도 사이에 결혼이 가능해서 친구의 아내는 기독교도”라고 덧붙였다. 라지와 역시 “기독교도이든 불교도든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 스리랑카 국민”이라며 스리랑카 국기와 한국 국기를 나란히 들고 한국인들에게 이번 테러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기도 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와 비교하면 스리랑카 연쇄 테러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었다. 페라라는 “실제로 관심이 적긴 하다”며 “어디에 있든 다 똑같은 사람인데, 한국인들이 좀 더 관심을 가져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