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모인 공무원노동조합원들이 지난해 11월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해직자 원직복직-노동3권 쟁취-정치기본권 쟁취를 촉구하는 ‘공무원노조 119연가투쟁’에 참가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정치적 표현과 정당가입 등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적 자유를 금지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와 관련한 인권위의 네 번째 판단이다.
인권위는 “공무원과 교원이 직무와 관련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국가공무원법과 관련 법률 조항, 하위 법령 등을 개정할 것을 국회의장과 정부에 권고했다”고 29일 밝혔다.
현재 국가공무원법 제65조(정치운동의 금지)는 공무원이 정당 등 정치단체 결성에 관여하거나 가입하는 행위, 투표하거나 하지 않도록 권유 운동을 하는 등 정치운동을 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4년 교육부는 이 법을 근거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요구 시국선언에 참여했던 교사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4월12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세월호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사법처리 중단 및 교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등 정치적 기본권의 보장을 위한 관련 법률 개정” 요구하며 인권위에 집단 진정을 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교육부는 지난 3월 이 고발을 취하했다.
인권위는 공무원과 교원이 공직 수행의 담당자이면서 동시에 시민의 지위를 갖기 때문에 헌법 등 기본권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봤다. 헌법 제21조(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에 기초한 ‘정치적 기본권’은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자발적으로 정당에 가입하고 활동하며,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인권위는 또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7조 제2항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서도 해석을 내놨다. 인권위는 이 조항이 공무원의 정치적 활동을 금지하거나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외부의 정치세력이 공무원을 이용해 행정의 공정성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한 것일 뿐만 아니라, 공무원이 적법하고 합리적인 행위를 하도록 조처를 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봤다.
또 인권위는 현행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 등이 교원이 개인이나 집단으로 공무원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한 것인지, 시민의 지위로 개인적·사회적 생활 영역에서 정치적 기본권을 행사한 것인지 면밀하게 구분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공무원법 제84조 제1항은 “제65조를 위반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법 제65조 제4항은 ‘제3항 외에 정치적 행위의 금지에 관한 한계는 대통령령 등으로 정한다’고 돼 있다. 범죄구성요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법률이 아닌 하위 법령에 위임해 공무원에게 금지되는 정치적 행위나 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단지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추상적 우려를 이유로 정치적 표현행위, 정당가입 및 선거운동의 자유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며 “포괄위임입법금지원칙, 명확성의 원칙, 그리고 과잉금지원칙상의 최소 침해, 수단의 적합성, 법익균형의 원리에 위배된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외국의 사례를 들어 공무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강한 명확성과 엄격한 심사가 필요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일본을 제외한 미국 등 주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또 대부분의 국가는 민주사회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갖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표현행위의 주체가 공무원이라고 하더라도 극히 신중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인권위와 유엔 등 국제기구는 이러한 문제들을 들어 공무원·교원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할 것을 한국 정부에 여러 차례 권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권위는 ‘국가 인권 정책 기본계획 권고(NAP)’가 처음 만들어진 2006년(제1기)부터 현재(3기)까지 총 3번의 권고에서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과도하게 금지하는 법을 정비해 공무원·교원의 정치활동을 일정 범위 확대할 것”을 정부에 권고해 왔다. 또 2011년 프랑크 라 뤼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공무원·교원의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권고했고,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적용위원회 (CEACR)는 2015년과 2016년 2번에 걸쳐 초·중등 교사가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는 이날 논평을 내고 “공무원·교원의 정치적 자유 보장에 대한 인권위의 권고를 환영하며, 국회와 관련 부처가 조속히 관련 법령 개정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헌법재판소도 교사의 정치기본권에 대한 헌법소원 판결을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2월 ‘교사정치기본권찾기연대’ 등은 교사들의 공직 출마와 선거운동을 제한하는 법률들(공직선거법 등)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바 있다.
권지담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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