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저녁 고려대학교에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대학생들이 함께하는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김씨는 “돈보다 생명이 최우선인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여러분과 제가 앞으로 함께 풀어야 할 과제”라고 당부했다. 고려대 총학생회 제공.
29일 저녁 7시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3층 한 강의실. 104명 정원의 강의실이 꽉 찼다. 학생들은 말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수첩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질문 있냐”고 묻자 5명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한 학생은 자기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할 정도였다. 대학 인기 강의처럼 보이지만 이날 강의실에는 특이한 풍경이 있었다. 학생들은 필기를 하다말고 종종 훌쩍거리며 울었다. 한 학생은 질문하겠다고 마이크를 들고도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 탓이다. 겨우 눈물을 삼키고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는 학생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이런 자리’란 다름 아닌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함께 하는 토크 콘서트였다. 고려대 총학생회, 노동자연대 고려대 모임 등이 5월1일 노동자의 날을 맞아 공동 주최한 토크 콘서트의 주제는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화두’. 이진우 고려대 부총학생회장은 토크 콘서트를 연 까닭에 대해 “끊임없이 발생하는 산업재해 가운데 김용균씨 사건처럼 많은 사람의 분노를 일으킨 사건은 없었다. 또 완벽하진 않지만 법 개정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미숙씨가 대학 강단에 서서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건 이날이 처음이다.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용균씨는 지난해 12월11일 새벽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9·10호기에서 야간 순찰 업무를 하던 도중 석탄운송설비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다. 김씨의 죽음은 ‘위험의 외주화’를 상징하는 사회적 사건이 됐고 이 사건을 계기로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김미숙씨는 아프게 아들을 잃고 어느새 노동 운동의 중심에 선 투사가 됐다.
29일 저녁 고려대학교에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대학생들이 함께하는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고려대 총학생회 제공.
학생들의 열기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토크 콘서트 시작 전 주최 쪽 관계자는 “50명 이상만 와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104명 정원의 이날 강의실에서는 빈자리가 없었다. 1시간 20분 정도로 계획한 토크 콘서트는 학생들의 질문이 이어지면서 2시간을 훌쩍 넘겼다.
무엇이 학생들을 이끌었을까. 한양대학교에서 왔다는 이수진(20)씨는 “노동은 삶의 필수적인 부분인데 일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건 다른 죽음보다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대학생은 모두 ‘미래의 노동자’라는 점에서 김용균씨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학생도 있었다. 올해 대학을 입학한 새내기 이준희(19)씨는 “유가족인 어머니가 끝까지 세상을 바꿔보려고 노력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김미숙씨는 자신을 보러 온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나의 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돈보다 생명이 최우선인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여러분과 제가 앞으로 함께 풀어야 할 과제”라고 당부했다. 김미숙씨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사회 전반적으로 노동자들을 유린하고 부속품처럼 부리고 있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해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미숙씨가 학생들에게 거듭 당부한 말은 “목소리를 내라”였다. 그는 “정부와 기업은 스스로 바뀌지 않고 누구도 본인의 권리를 찾아주지 않는다”며 “여러분들은 사회에 나가면 꼭 노조에 가입하라”고 조언했다. “아무 회사나 가지 말라”는 말도 이어졌다. 일하는 환경이 위험한지 아닌지, 노조는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는지 등을 확인하고 일자리를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내내 담담하게 발언을 이어가던 김미숙씨도 아들이 숨진 당시를 이야기할 땐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 밤 (기계에) 딸려가면서 우리 아들이 얼마나 부모를 찾았을까…. 그런 걸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벌떡 일어납니다.” 강의실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왼쪽)와 김용균씨의 동료 김경훈씨(가운데),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 고려대 총학생회 제공.
이날 토크 콘서트에는 김미숙씨뿐 아니라 김용균씨의 죽음을 세상에 처음 알린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와 김씨의 동료 김경훈(24)씨도 나와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눴다. “가까이에서 일하던 용균이형이 죽고 나서 실감이 안 났다. 모두 놀라고 좌절하는 가운데 같은 파트였던 동료들은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는 김경훈씨의 말에 한 학생은 질의·응답 시간에 손을 들어 “김용균씨가 사망한 환경은 노동자들이 만든 게 아니다. 동료분들이 혹시라도 자책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위로하기도 했다.
토크 콘서트가 끝나고 김미숙씨는 “오늘 온 학생들 모두 예쁘고 사랑스러운 자식 같은 아이들”이라며 “이 아이들이 안전한 사회에서 일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29일 저녁 고려대학교에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대학생들이 함께하는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사진은 학생들이 김씨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은 메모지들. 이유진 기자.
학생들은 토크 콘서트에서 못다 한 말을 메모지에 빼곡히 채웠다.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또한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만드는 데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