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서울 종각역 앞에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주최로 열린 ‘어린 것들 해방만세’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어린이는 결코 부모의 물건이 되려고 생겨나오는 것도 아니고, 기성사회의 주문품이 되려고 나온 것도 아닙니다. 그네는 훌륭한 한 사람으로 태어나오는 것이고 저는 저대로 독특한 사람이 되어 갈 것입니다.” -방정환, 1923년 3월 <소년의 지도에 관하여>-
제97회 어린이날을 맞아 청소년·교육단체들이 청소년의 참정권 등 ‘어린 자들’의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373개 청소년·교육단체 등이 모인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4일 오후 서울 종각역 6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어린이·청소년에게 박탈된 참정권과 모든 시민적 권리를 완전히 허하고, 기존의 사회적 차별과 나이차별적으로 구성된 윤리적 억압으로부터 어린이·청소년을 완전히 해방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발표한 ‘새로 쓴 2019년 어린이날 선언문’에서 이들은 “1920년대 당시 어린이날은 사람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던 나이 어린 존재들이 스스로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며 집회와 행진을 벌이던 날이었다”며 “그러나 2019년 현재에도 나이 어린 존재 또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외침은 여전히 현실화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최근 ‘노키즈존’으로 상징되는 아동혐오 현상을 지적하며 “어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1년 중 하루에 불과한 ‘선물과 생색’이 아니라 뿌리 깊은 억압과 차별로부터의 근본적 해방”이라고 강조했다.
4일 오후 서울 종각역 앞에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주최로 열린 ‘어린 것들 해방만세’ 집회에 참가한 어린이와 청소년들.
2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학교와 가정에서 어린이·청소년으로서 겪는 다양한 차별을 언급하며 나이, 성정체성에 따른 차별과 억압을 비판했다. 지난해 6월 전북 전주시의원 선거를 앞두고 출사표를 던졌으나 나이 제한 때문에 후보 등록을 하지 못한 조민(15)군은 이날 “제1회 어린이날 집회에서 나온 어린이 노동착취 금지, 청소년 복지 보장 등의 요구는 1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효하다”며 “청소년 알바노동자, 특성화고 실습생에 대한 노동착취는 현재진행형이지만, 국회에 청소년과 소수자를 대변하는 의원은 없고 만 18살 이하 청소년은 아직도 참정권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의 한송이 활동가는 자신과 친구들이 학교에서 겪는 폭력과 차별을 고백했다. 그는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는 힘을 빼앗기는 대표적인 공간이 학교”라며 “성정체성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로부터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너무 힘들어서 상담이라도 받으려고 하면 오히려 교사가 다그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약 3000만원에 달하는 수술비를 벌기 위해 취업에 필요한 졸업장을 받으려고 버티고 있지만, 대부분 수모를 견디다 못해 자퇴를 하게 되고, 불안정한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친구들이 더 이상 소수자라서,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혐오와 멸시를 당하지 않길 바란다”며 학생인권법 제정을 요구했다.
이번 선언문은 소파 방정환 선생이 1923년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발표한 선언문을 2019년의 현실에 맞춰 새로 쓴 것이다. △어린이에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 △만14살 이하 어린이의 유·무상 노동 금지 △어린이가 배우고 놀기 충분한 가정과 사회적 시설 등의 요구안을 담은 이 선언문은 1924년 ‘아동의 권리에 관한 제네바 선언’보다 1년 앞선 세계 최초의 어린이인권 선언으로 알려졌다.
글·사진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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