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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우리는열아홉살입니다…SNS 타고 퍼지는 입시미술계 성폭력 고발

등록 2019-05-06 16:59수정 2019-05-06 20:54

한 미대 졸업생, 주변 성폭력 사건 엮은 만화 공유하며 촉발
“학생들은 피해 문제 삼기 어려워…더 많은 고발 나왔으면”
미대 졸업생 이아무개씨가 입시미술학원의 성폭력 문제를 고발하기 위해 그린 만화. 이씨 제공.
미대 졸업생 이아무개씨가 입시미술학원의 성폭력 문제를 고발하기 위해 그린 만화. 이씨 제공.
한 입시미술학원. 대학 진학 시험을 앞둔 학생들의 그림이 여러 장 펼쳐져 있다. 그림에는 70점대부터 90점대까지 점수가 매겨져 있다. ‘70점… 이래서 대학 갈 수 있을까.’ 낮은 점수를 받은 한 학생은 걱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학생에게 학원 원장이 다가와 보강수업을 해주겠다며 학원에 남길 권유한다. 원장은 밤늦은 시간 보강수업을 받기 위해 남은 학생에게 수업이 아니라 성폭력을 가했다.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에 휩싸인 학생 곁에는 “이제 겨우 점수가 오르기 시작했는데 학원을 옮길 수는 없잖아”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있다. 입시미술학원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담은 33컷짜리 만화 속 이야기다.

입시미술계에서 만연한 성폭력 실태를 고발하는 운동이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3일 한 누리꾼이 “많은 입시미술학원에서 사회적 약자인 입시생을 대상으로 성추행과 성폭행이 일어나고 있다”며 인스타그램에 입시미술학원 성폭력 사건을 그린 만화를 게재한 게 시작이었다. 이 누리꾼은 “드러나지 않은 학원 안 성범죄를 단절시키고자 캠페인을 시작한다”며 ‘#우리는열아홉입니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만화를 공유해달라고 제안했다. 6일 오후 4시 현재 이 만화와 해시태그는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 500건가량 공유됐다.

해시태그 공유 운동에 동참한 누리꾼들은 인스타그램 등에서 “나의 동료와 친구들이 비슷한 경험을 해왔다. 꿈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어린 청년들의 열정을 함부로 이용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드는 파렴치한이 얼마나 많을지 끔찍하다”, “강사의 주관적 평가에 기대야 하는 미술학원, 화실에서 비일비재한 일이다.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기억들을 안고 버텨내는 모든 피해자들을 응원하고 연대한다”, “전임 선생은 절대적인 권력자다. 공개된 정보의 양이 부족하고 실기 비중이 높은 미대 입시 특성상 학생은 너무나 취약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권력형 성범죄는 널리 공론화돼야 한다. 피해자들에겐 그들의 잘못이 아님을 그리고 그들에겐 아직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많음을 알려줘야 한다”며 공감의 목소리를 냈다.

미대 졸업생 이아무개씨가 입시미술학원의 성폭력 문제를 고발하기 위해 그린 만화. 이씨 제공.
미대 졸업생 이아무개씨가 입시미술학원의 성폭력 문제를 고발하기 위해 그린 만화. 이씨 제공.
만화를 제작한 누리꾼은 3∼4년 동안 입시미술학원 강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 미술대학 졸업생 이아무개(25)씨다. 이씨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재작년께 다른 입시미술학원 동료 강사와 그의 제자들로부터 학원 안 성폭력 피해 사실을 듣게 됐다. 이후 뒤늦게 지인들을 통해 성폭력 피해 사례를 추가로 접했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그중에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수위의 사건, 함께 미대 입시를 준비한 친구가 겪은 사건도 있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만화를 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전해 들은 피해 사례는 열댓건이고 이 가운데 직접 만나 알게 된 가까운 지인의 피해 사례는 4~5건 정도 된다”며 “피해자들은 자신의 입으로 문제를 알릴 수 없는 처지여서 개인이 특정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내용을 만화에 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입시미술학원에는 성폭력을 고발하기 어려운 특유의 구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술중학교와 예술고등학교, 미술대학에서 공부하는 등 10년가량 학생과 강사 신분으로 입시미술학원에 몸담았다. 그런 만큼 학원 원장이 갖는 권위와 피해를 알리기 어려운 학생의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입시를 코앞에 둔 학생들은 거의 24시간 학원에 있다 보니 원장의 말이 권위 있게 들릴 수밖에 없다”며 “입시에 대한 압박감과 학원 분위기,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계속 노출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학원을 옮기면 되지 않느냐는 이도 있지만, 미술계 입시를 준비하는 고3 학생이 학원을 옮기는 건 전학만큼 힘든 일”이라며 “이런 상황에 놓인 이들이 성폭력 피해를 알리고 성숙한 대처를 하는 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열아홉입니다’라는 해시태그를 제안한 까닭에 대해 “입시생들이 대부분 열아홉살이다. 그들은 입시 문제로 강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더욱 성폭력에 저항하기 힘든 처지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이들을 포함해, 열아홉 입시생만이 처한 취약한 상황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만화를 통해 용기를 얻고 더 많은 고발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씨는 “만화를 본 지인이 또 다른 피해 내용을 전하며 학원뿐 아니라 예술고 등 입시미술계 전반의 문제를 또 다뤄달라고 하더라. 지인이 입을 연 것처럼, 이번 기회에 만화를 읽은 피해자들의 문제 제기와 고발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호응을 얻는 동시에 ‘난 입시 강사할 때 이런 일 못 봤다’, ‘고3이면 알 거 다 아는데 무슨 사회적 약자냐’는 악플도 많았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2편, 3편을 써서 더 설명하고 싶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고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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