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6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용천리에서 화상을 입은 채 발견된 반려견 별이(5·암컷). 화재 현장에서 방치된 동물들의 구조문제가 불거진 계기가 됐다. 고성/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서울시가 대형 재난시 동물들의 구조를 전담할 ‘컨트롤타워’(관제탑)를 마련하기로 했다. 지난달 강원도 고성·속초 산불 때 주민들의 대피 과정에서 동물들이 방치돼 큰 피해를 본 일이 불거진 데 따른 것이다.
6일 서울시는 “강원도 산불과 같은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유기동물 응급치료센터(이하 동물응급센터)가 소방청과 호흡을 맞춰 동물구조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지원으로 지난 3월 문을 연 동물응급센터는 수의사와 간호사 등이 밤새 대기하며 동물응급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동물구조 컨트롤타워는 △재난이나 각종 사고로 위급한 상태의 동물 이송과 치료 △구조된 동물이 보호자가 없는 경우에 대처 △재난 지역 내 동물병원 네트워크 구축 △치료를 끝낸 동물의 거주 문제 해결 △재난으로 다친 동물 치료 비용 청구 등의 역할을 맡는다.
컨트롤타워는 지난달 서울시의회를 통과한 김용연 시의원(더불어민주당)의 조례를 근거로 마련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강원도 산불이 터지고 사람들이 동물을 구조하러 나섰지만 컨트롤타워가 없어 상황이 중구난방이 됐다.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
컨트롤타워와 함께 정부차원의 동물구조 매뉴얼 마련도 중요하다. 강원도 화재 현장에서 동물 구조에 나섰던 반려동물 재난위기관리사 채미효(41)씨는 “동물병원에서 구조된 개가 ‘15kg으로 크다’며 입원을 거절했다. 동물구조 매뉴얼이나 시스템이 없는 탓에 벌어진 일들이다. 앞으로도 다친 동물들은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다가 죽어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28일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동물병원 응급의료센터 개소 및 서울특별시 유기동물 응급구조·치료기관 지정 기념 세미나’가 열렸다. 서울대 동물병원이 서울시가 추진하는 유기동물 응급구조 및 치료기관으로 선정되어 24시간 응급의료 체계를 갖춘 응급의료센터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이 특강 강사로 참여했다. 특강 참석자 제공.
실제 행정안전부의 ‘국민재난안전포털 애완동물 재난대처법’에는 “동물은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으니 재난에 대비해 동물을 맡길 이웃, 친구, 친척을 알아보라”고 돼 있다. 반려동물의 생명과 안전은 정부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재난이 벌어지면 반려동물 재난관리 가이드라인에 따라 ‘긴급재해 동물구조본부'가 세워지고 수의사협회를 비롯한 동물단체는 지침에 따라 구조와 치료에 나선다.
지난달 강원도 화재 현장에서 동물구조 현안을 파악하기도 했던 동물응급센터는, 내년에는 대형 재난시 동물구조 매뉴얼과 시스템을 만들어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동물응급센터 관계자는 “카트리나 태풍으로 미국 텍사스에서 많은 동물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뒤로 텍사스의 수의과 대학들이 동물 응급구조팀을 만들었다”며 “이번 화재를 계기로 그동안 자원봉사자 위주로 동물을 구조하던 한국 상황도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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