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굿네이버스·세이브더칠드런·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 아동인권단체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학대로 숨진 아동 8명을 추모하는 영정을 들고 있다. 정부가 파악한 아동학대 사망자는 2016년 36명, 2017년 38명, 2018년 30명이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광주 중학생 살인 사건’처럼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피해 아동이 학대당한 사실을 파악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죽음에 이르는 사건이 거듭되자 정부 차원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학대로 숨지는 아동이 늘고 있지만, 정부가 최초 신고 접수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아동보호체계 전 과정을 살피는 진상규명에 나선 적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9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아동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서울 강서구 생후 15개월 사망사건과 지난 4월 광주 13살 살인사건은 이미 해당 아동의 피해가 공적 아동보호 체계로 신고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행 아동보호망의 심각한 결함을 방증하는 것으로, 이를 파악할 종합조사가 필요하다.
보건복지부가 파악한 아동학대 사망자 수는 2015년 16명, 2016년 36명, 2017년 38명, 2018년 30명이다. 이 수는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신고 사례를 기반으로 자체 파악한 자료다. 실제 아동학대 사망자 수를 반영한 통계가 아닌 것이다. 아동학대 사망 통계조차 부실한 상황에서 민간 차원 진상조사만 2013년, 2017년 두 차례 진행됐을 뿐이다.
지난 2013년 울산 울주에서 여덟살 서현이가 집안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갈비뼈 16개가 부러졌고, 부러진 뼈가 폐를 찔러 즉사했다. 잦은 폭행으로 엉덩이 근육이 소멸됐다는 부검의 소견이 있었다. 참혹한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자 남인순 당시 민주당 의원·세이브더칠드런·한국아동복지학회 등 민간 단체가 진상조사단을 꾸려 아동이 살았던 지역 사회와 복지부·교육부·경찰청·법무부 등 유관 부처를 조사해 국내 첫 아동학대 사망 보고서를 낸다. 전문가들이 이서현 사건에 주목한 까닭은, 사건 발생 2년여 전 유치원 교사들이 ‘지속적 학대 피해’ 신고를 했지만 비극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현이의 죽음은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던 사건이다. 언론 보도도 줄을 이었다. 그런데 왜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2014년 발간된 ‘이서현 보고서’를 보면, 사건이 일어난 뒤 민간 단체들은 진상조사 필요성을 정부에 제기했으나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이어, 국회 보건복지위 여·야 의원이 함께 하는 진상조사를 추진했지만 여당인 새누리당은 참여하지 않았다.
2013년 의붓어머니의 학대로 갈비뼈 16개가 부러졌고, 부러진 뼈가 폐를 찔러 즉사한 이서현(8)양 영정사진. 서현양은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읽고 쓴 독서 일기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자비까지 부담하며 조사에 참여한 이들은 서현이의 죽음에 대해 “단 하나의 거대한 구조적 원인이 아닌 여러 실수·미흡한 대응·제도적 맹점들이 누적돼 한 아이가 목숨을 잃었다. 현실에서 오류를 일으키는 세부 사항을 찾아내 계속 수정하려면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는 반드시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기록한다. 은폐된 아동학대 사망을 파악하기 위한 방안으로, 교통사고·신체질환으로 숨진 경우를 제외한 모든 아동 사망에 대한 점검을 제안하기도 했다. “국내서 해마다 숨지는 만 18살 이하 아동은 2천~3천명이며, 아동 대상 살인은 50~90여건이다. 시·도 단위에서 아동보호전문기관·경찰·의료진 등으로 조사팀을 구성해 사망 사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런 조사팀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아동학대 사망이 의심될 경우, 각 기관 전문가들이 모여 조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당시 조사위원장을 맡았던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됐지만, 최근 5년간 134명 아동이 학대로 사망했다”며 “사후처벌 강화만으론 아동학대를 방지할 수 없다. 잔혹한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체계적 진상조사를 기반으로 제도 개선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광주 중학생 살인사건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가 경찰의 피해자 보호조처 소홀 등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직권조사를 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민변 아동인권위는 성명을 통해 “경찰뿐 아니라 아동이 과거에 겪은 학대 상황과 모든 아동보호 유관 기관에 대한 철저한 현장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조사 과정에서 민간 아동인권 단체 참여를 보장하고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6년 전 서현이가 남긴 교훈을, 우리사회는 지금까지 현실화하지 못했다. 정부는 2019년을 ‘아동에 대한 국가책임 확대의 원년'으로 선포하겠다고 했다. ‘이서현 보고서’ 마지막에 써 있는 글귀는 다음과 같다.
이서현 양은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읽고 쓴 독서 일기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양이 바랐으나 살아서 이루지 못한 쓸모. 이 보고서가 그 애달픈 쓸모의 극히 일부라도 실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짧은 생을 살다 간 이서현 양의 영전에 이 보고서를 바친다.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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