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25만주, 팔자 구본준! 사자 구본길!”(엘지 재무팀)
“예, 깔끔하게 됐습니다.”(옛 엘지투자증권)
2003년 엘지(LG)카드 사태 때, 엘지 총수일가의 주식 ‘통정매매’ 정황이 담긴 당시 검찰 수사기록 일부다. 고 구본무 전 엘지그룹 회장의 동생 구본준 전 부회장이 장내에서 25만주를 팔고, 구 전 회장의 사촌동생인 구본길 일양화학 회장이 이를 되산 정황이다. 통정매매는 동시에 같은 가격으로 주식 매도·매수 주문을 넣는 식으로 서로 짜고 하는 거래를 말한다. 당시 엘지 재무팀이 매매할 주식 수와 당사자, 액수를 불러주자 증권사 직원이 그대로 실행한 것이다.
1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 심리로 구광모 엘지 회장의 친아버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등 총수일가 14명과 전·현직 엘지 재무관리팀장 2명의 탈세 혐의 사건 첫 공판이 열렸다. 건강 문제로 불출석한 구본능 회장을 제외한 구본길 사장 등 나머지 총수일가 모두 피고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이날 검찰은 2007~17년 양도소득세 156억원 탈세 혐의와 직접 관련이 없는 2003년 엘지 총수일가의 통정매매 정황을 공개했다. ‘과거부터 최근까지 같은 방식으로 통정매매를 해왔다’는 국세청 고발 취지를 설명하겠다는 의도다. 2003년 수사 뒤 스마트폰을 이용한 주문으로 녹취가 남지 않아서라며 검찰이 ‘과거 방식’을 보여주자 변호인은 반발했고, 재판부는 검찰에 “공소사실과 관계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앞서 검찰은 양도소득세가 20% 할증되는 특수관계인끼리 주식을 매매하면서도, 마치 장내에서 불특정한 제삼자와 거래한 것처럼 위장해 양도소득세를 탈루했다며 지난해 9월 총수일가를 무더기 기소했다.
공판에서는 기소된 김정대 전 엘지 재무관리팀장(엘지이노텍 전무)의 국세청 조사 자료도 공개됐다. 그는 “경영권 방어와 유지도 중요 업무다” “재무팀에서 근무할 때 구자경 명예회장에게 ‘1주라도 주식 매매로 유출되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사주 일가 중 매수 여력이 있는 이를 물색했다”고 진술했다.
총수일가 주식 거래는 엘지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엔에이치(NH)투자증권(옛 엘지증권)에서 이뤄졌다. 자동으로 녹음되는 증권사 전화 통화 대신 개인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매매 관련 내용을 주고받았다는 이 증권사 직원의 검찰 진술도 공개됐다. 이 직원은 “엔에이치증권은 과거 엘지 계열사였다. 주문대리인 등록 없이 관행적으로 계속 주문이 이뤄졌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지분 거래의 목적이 지분 승계에 있다고 본다. 이 사건 거래로 구광모 회장의 엘지 지분은 2006년 2.85%에서 2017년 6.24%로 늘었다. 엘지 쪽은 “특수관계인 간 거래가 아니다. 사기 등 부정한 방법을 쓴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장예지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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