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 선고 판사 재판 유죄 무죄 게티이미지뱅크
판사가 재판 방청객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판사에 대한 주의 조처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을 판사의 소속 지방법원장에게 권고했지만, 법원이 이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22일 인권위의 설명을 종합하면, 대학교수인 ㄱ씨는 2017년 6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진행 중인 같은 대학 총장의 배임과 성추행 혐의 재판에 방청객으로 참여했다가 판사로부터 일어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후 판사는 ㄱ씨에게 10여 분 동안 “주제넘은 짓을 했다” 등의 발언을 했다. 당시 그 자리에는 30∼40명의 교직원과 학생, 일반인 등이 있었다. 판사는 ㄱ씨가 해당 사건과 관련해 법원에 탄원서와 증거자료 등을 제출한 것을 지적하면서 “지금까지 제출한 모든 진정서와 탄원서를 찾아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ㄱ씨는 2017년 2월과 5월, 대학 총장의 허위 주장과 총장으로부터 회유된 교직원들의 거짓 증언 등을 바로잡고자 탄원서와 증거자료 등을 법원에 제출했다. ㄱ씨는 “모멸감에 따른 충격으로 이후 재판에 참석하지 못했으며, 대인 기피 증세를 보일 정도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내용의 진정을 인권위에 냈다.
여성인권단체 임원으로 당시 재판을 방청한 한 참고인은 인권위 조사에서 “판사가 머리가 하얀 남성 교수를 불러서 일어나게 하고는 10여분이 넘도록 수차례 탄원서 낸 것을 지적하고 공개적으로 면박을 줬다”며 “현장에서 30년 넘게 인권 운동을 하고 법정에 드나들면서 그날처럼 재판하는 것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재판을 방청했던 한 대학교 학생도 “판사가 ㄱ씨를 마치 혼내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여러 사람 앞에 세워 모욕감을 주고 인격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해당 판사가 현재 소속된 수원지방법원장과 사건 발생 당시 소속이었던 광주지방법원장은 “재판 절차인 소송지휘권의 범위를 벗어난 언행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며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법원장은 해당 발언은 판사의 재판진행 과정에서 나온 말이고, 재판 절차에서 허용되는 소송지휘권의 범위를 벗어난 부당한 법정 언행이나 재판 진행을 했다고 인정할 만한 근거가 없으며, 법관의 법정 언행은 ‘재판’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이유로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공개된 장소에서의 모욕적인 발언으로 자존감을 훼손한 점 △같은 장소에 있던 일반인이 진정인의 피해 감정에 공감한 점 △법관의 소송지휘권 행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등을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해 인권위법 25조에 따라 법원의 인권위 권고 불수용 사실을 공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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