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 엘지 트윈빌딩. <한겨레> 자료사진
‘(예상 질문) 주문 수량과 주문가를 어떻게 결정하게 됐는가? 누구의 의사에 따른 것인가?’ ‘(답변) 내가 결정한 것이다. 재무팀에 현재 주가를 물어본 뒤 주문가를 결정했다.’
사전에 짜고 주식을 거래하는 통정매매로 양도소득세 156억원 탈루 혐의로 기소된 엘지(LG) 총수 일가 14명의 재판에서, 엘지그룹 재무관리팀이 국세청 조사와 관련해 만들어놓은 ‘예상 문답서’ 일부 내용이 공개됐다.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지난해 서울 여의도 엘지 본사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예상 문답서’ ‘우리가 주장해야 될 사실관계’ 등 문서를 증거로 제시했다.
검찰은 이 문서가 지난해 국세청의 탈세 조사를 앞두고 작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예상 문답서’는 ‘주주용’과 ‘재무관리팀장 및 직원용’으로 나눠 국세청 예상 질문과 이에 대한 각각의 답변을 정리해 놓은 한글파일 문건이다. 주주들에게는 국세청이 ‘특수관계인끼리 (주식을 사고팔며)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물을 경우 “내가 필요해 주식을 판 것일 뿐이다. 매도·매수 주문이 왜 비슷한지는 알 수 없다”며 잡아떼라는 내용 등이 담겼다. 재무관리팀 직원들에게는 국세청 직원이 ‘(통정매매를) 은폐하기 위해 녹음이 안 되는 휴대폰으로 주문한 것 아니냐’고 물을 경우 “조사관님도 증권사에 주식 주문할 때 유선전화로 하지는 않지 않습니까”라고 되물으라고 안내했다.
‘우리가 주장해야 될 사실관계’ 문서에도 “증권 담당자마다 주문실행 패턴이 다르다. 담당자 성향에 따른 결과이므로 재무팀 의도와 전혀 상관없다고 주장할 것” 등 조사 대응 팁이 담겼다. 또 ‘국세청 직원이 동시에 매도·매수 주문하며 주주상호 간 매칭시킬 의도가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 물을 경우에는 “우리 의도와 다르게 그들이 임의로 거래한 것이라 잘 모른다”며 책임을 떠넘기라는 안내가 담겼다.
검찰은 엘지 총수 일가와 그룹 재무관리팀 직원들이 통정매매 사실을 숨기기 위해 예상 문답을 연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주 일가를 대리하는 노영보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국세청 조사 뒤 작성된 특정 문건만을 거론한 뒤 “마치 이런 예상 질문을 만들고 답을 적어서 연습한 것처럼 돼 있는데 그게 아니다. 국세청 조사를 받고 나온 뒤 질문과 답변을 정리한 사후적 보고 문서다. 입을 맞추려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예상 문답서’와 ‘우리가 주장해야 될 사실관계’ 문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다.
한편 이날 재판에선 엘지 사주 일가 주식매매를 담당했던 엔에이치(NH)증권 직원의 검찰 진술 내용도 공개됐다. 이 직원은 “엘지 사주 소유 상장주식은 ‘지분성 거래’로 따로 관리했다. 거의 100% 통정매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진술했다.
고한솔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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