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해킹 사태로 우울증을 앓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수원 파견 직원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장낙원)는 한수원에서 파견업무를 수행하던 협력업체 직원 ㄱ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 급여 등을 지급하라”고 낸 소송에서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26일 밝혔다.
한수원 협력업체 소속 직원인 ㄱ씨는 2008년부터 한수원에 파견돼 컴퓨터 프로그램 유지·관리 업무를 맡았다. 2014년 12월 한수원의 원전 운전도면이 해킹돼 외부로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언론은 대대적으로 한수원 해킹사태를 보도했다. 검찰은 해킹의 원인이 된 컴퓨터를 찾기 위해 협력업체로 수사를 확대했다. 직원채용 관련 프로그램을 관리하던 ㄱ씨는 “혹시 외부에서 들여온 파일에 바이러스가 심겨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신의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해킹사건을 일으킨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불면증, 죄책감, 무력감 등에 시달리던 ㄱ씨는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해킹사건이 ㄱ씨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고, 우울증 증상도 호전됐지만 2016년 1월 지방발령 소식을 들은 ㄱ씨는 다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해 4월 ㄱ씨는 회사 워크숍에 참여한 뒤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재판부는 우울증과 ㄱ씨의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유족 쪽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ㄱ씨는 해킹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책임이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우울증이 발병한 것으로 보이고, 2016년 우울증이 재발함에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해킹사건이 사회평균인의 입장에서 보아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를 ㄱ씨에게 줘 우울증을 발병하게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ㄱ씨가 해킹사건과 관련해 책임자로 수사기관 수사를 받거나, 회사 쪽이 ㄱ씨의 책임을 추궁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했다. ㄱ씨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도 회사 쪽이 사표를 반려하고 비교적 부담이 덜한 업무를 맡긴 점 등도 살폈다.
재판부는 지방발령으로 ㄱ씨가 심적인 부담감을 느낀 점은 인정하면서도 “지방발령이 ㄱ씨에게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부담을 줬다고 볼 만한 사정은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숨지기 전 ㄱ씨의 업무 강도가 지나치게 높지 않았던 점도 고려됐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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