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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놀이터” 실낱같은 한마디에…치매 엄마 찾아 온동네 뒤졌다

등록 2019-05-29 05:00수정 2019-05-29 13:49

[동행 르포] 서울 은평경찰서 실종수사전담팀 24시
22일 오후 은평경찰서 실종수사팀 김정수 수사관이 실종신고된 70대 치매 노인을 찾은 뒤 보호자에게 인계하기 위해 지구대에 들어가고 있다.
22일 오후 은평경찰서 실종수사팀 김정수 수사관이 실종신고된 70대 치매 노인을 찾은 뒤 보호자에게 인계하기 위해 지구대에 들어가고 있다.
“분명 이 근방에 있는데….”

22일 오후 5시20분께 서울 은평구 ‘녹번서공원’ 앞. 서울 은평경찰서 실종수사팀 김원삼(46) 팀장이 초조한 듯 공원 안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 73살, 여자, 하늘색 상의, 검은색 면바지, 빨간색 가방, 보라색 운동화’ 등이 적힌 전단을 손에 꼭 쥔 채였다.

이날 오후 4시2분. 은평서 불광지구대에 ‘화장실에 간 사이 치매에 걸린 엄마가 집을 나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전남 고흥에서 농사를 지으며 혼자 살던 신아무개(73)씨의 딸이다. 치매 증상이 심해지자 딸은 올해 초 엄마를 은평구 집으로 모셔왔다. 서울 지리도 잘 모르는 엄마는 ‘논에 가야 한다’며 자꾸만 집을 나가려고 했다. 그러더니 이날은 아예 가방까지 챙겨 나가버렸다. 딸은 오전 11시에 사라진 엄마를 몇 시간 동안 찾아 헤매다 경찰에 신고했다.

“정확한 수색 지역은 가면서 확인하자고.” 오후 4시40분. 김 팀장이 차량에 오르며 김정수(35) 수사관, 이학우(34) 수사관에게 다급히 말했다. 우선 신 할머니가 들고 나간 휴대전화가 첫 번째 단서다. 실시간 기지국 추적으로 반경 1㎞가 위치로 잡힌다. 김 수사관은 이에 더해 “신 할머니가 이 지역에 얼마나 살았는지, 평소 어디를 주로 갔는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수사관은 이동 중인 차 안에서도 수첩을 꺼내 들고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추가 정보를 꼼꼼히 기록했다. 동시에 타격대 7명은 신 할머니가 지나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불광역~역촌역 사이 거리를 뒤따라 가며 길가는 시민들을 상대로 탐문에 나섰다.

오후 4시55분. 김 수사관이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그사이 신 할머니와 전화 연결이 됐는지 물었다. 김 수사관의 짐작이 들어맞았다. 신 할머니는 “어디냐”고 다그치는 딸에게 “공원 같다. 놀이터, 학교 근처”와 같은 단편적인 정보를 늘어놨다고 했다.

기지국 단서와 단편적인 키워드를 합치자 수사에 숨통이 트였다. 마지막으로 잡힌 신 할머니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는 한 교회다. 이 교회 바로 옆에 ‘녹번서공원’이 있었다. 차량에서 튕겨 나오듯 내린 김 팀장은 공원 산책로를 따라 언덕을 바삐 올랐다. 신 할머니와 비슷한 나잇대의 노인들이 공원 정자나 의자에서 늦은 오후 볕을 벗 삼아 쉬고 있었다. 하늘색 상의, 빨간색 가방 등 인상착의를 속으로 되새기며 공원 남자 화장실까지 들여다봤지만, 신 할머니는 그곳에 없었다.

시계는 오후 5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남은 곳은 근처 주택가 한가운데 자리한 조그만 놀이터 한 곳뿐. 김 팀장이 놀이터 입구에 들어서자 왼쪽 시야로 빨간 가방이 들어왔다. 신 할머니였다. “할머니! 어째 여기까지 왔습니까!” 김 팀장이 환하게 웃으며 신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신 할머니는 “왜 나를 찾냐”며 되레 화를 냈다. “내가 조금만 안 보이면 딸이 난리를 쳐야”라며 자식을 나무라기도 하고, “시골 가서 고추를 심어야 한다”며 갑자기 눈물도 흘렸다.

딸이 엄마를 다시 만난 시간은 오후 5시50분. 집을 나간 지 7시간 만이었다. 지구대를 나와 엄마의 팔짱을 끼고 집으로 향하는 딸의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치매노인 실종신고는 갈수록 늘고 있다. 2012년 7650명에서 2018년 1만2131명으로 1.6배 늘었다. 경찰 생활 21년 가운데 실종수사만 8년을 한 김원삼 팀장 역시 증가세를 느낀다고 말했다. “요즘 들어오는 실종신고 10건 중에 3건은 치매노인 신고입니다. 6~7년 전과 견주면 3분의 1 이상 늘어난 것 같아요.”

은평서는 2017년 10월 여성청소년수사팀에서 실종수사를 분리해 전담팀을 꾸렸다. 당시 ‘어금니 아빠 사건’ 등을 계기로 실종 초기 대응이 크게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 시내 31곳 경찰서 가운데 15곳에 실종수사전담팀이 설치됐고, 16곳에는 실종수사전담요원이 배치됐다. 전국적으로는 255곳에 127개팀(지난해 8월 기준)이 설치돼 있다. 김 팀장과 수사관 4명으로 구성된 은평서 실종수사팀에는 하루 평균 5~6건의 실종 신고가 들어온다. 이 가운데 대략 30%가 치매노인 신고다. 1년으로 치면 600~700건에 이르는 셈이다.

인구 고령화로 치매노인이 증가한 탓이 크다. 중앙치매센터가 공개한 현황을 보면, 2018년 기준 65살 이상 노인 인구 738만9480명 가운데 치매 환자는 75만488명으로 추정된다. 치매 유병률은 10.1%로, 노인 10명 가운데 1명이 치매인 셈이다. 치매 환자 수는 2024년 100만명, 2050년엔 3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치매를 앓게 되면 인지 기능이 떨어지면서 성격이 변하거나 기억력 장애, 배회 행동 등을 겪게 된다. 배회 행동은 갑자기 집을 나가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증상을 일컫는다. “치매노인들은 집에서 나간 뒤 힘이 빠질 때까지 돌아다니는 특성이 있습니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경우보다는 오로지 직진형, 보행형이 많아요. 걸어서 은평구에서 파주 임진각까지 가신 분도 있었습니다. 발견했을 때 옷차림을 보면 땀에 절어있고 탈진해서 앉아있는 경우가 많은 이유입니다.” 김 팀장의 설명이다. 신 할머니 역시 집에서 약 2㎞ 떨어진 놀이터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조기 신고가 조기 발견의 키포인트다. 하지만 치매노인의 경우 다른 실종 사건보다 신고가 상대적으로 늦다는 게 문제다. “집에 노부부만 있다거나, 함께 사는 자녀가 출근했다가 저녁에 와보면 집에 없어서 그때야 신고를 하기 때문”(김 팀장)이다. 언제 집을 나갔는지조차 특정하기 어려울 경우 자녀 출근 이후 모든 시간대의 집 주변 시시티브이(CCTV)를 살펴봐야 할 때도 있다.

다른 어려움도 있다. 치매노인은 대인관계가 좁거나 없고, 인터넷 사용도 하지 않기 때문에 추적 단서가 상대적으로 적다. 이 때문에 가족들이 평소 치매노인이 자주 하던 말이나 행동 등을 유심히 봐두었다가 신고 뒤 경찰에 알려주면 수사에 큰 도움이 된다. “지난해 여름 은평구 불광동에 살던 70대 할머니가 휴대전화도 없이 집을 나간 적이 있었어요. 신고 다음 날 신촌 로터리 부근에서 발견했는데, 젊었을 때 그 근처에서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사소한 정보 하나하나가 수사에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실종수사팀 박성규(34) 수사관의 말이다.

조기신고 다음으로 중요한 건 휴대전화와 배회감지기 등 위치추적이 가능한 전자기기다. 특히 수사관들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지피에스)이 탑재된 배회감지기만 착용하고 있다면 신고 30분 이내에 찾는다고 입을 모았다. 휴대전화 역시 지피에스 기능이 탑재돼 있지만 전자기기 사용이 서툰 노인들은 대부분 이 기능을 꺼놓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배회감지기의 보급률은 낮다. 중앙치매센터가 지난 3월 발간한 <2018 대한민국 치매현황>를 보면, 장기요양보험서비스의 일환으로 배회감지기를 발급받은 치매노인은 2154명에 불과했다. 경찰청에서도 2017년 에스케이(SK) 하이닉스와 업무협약을 맺고 2020년까지 전국 치매노인 실종 위험군 1만5천명에게 배회감지기를 무상보급하고 있지만 75만명으로 추정되는 치매노인 규모에 견주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은평구의 경우 2018년 기준 6825명(65살 이상)이 치매 환자로 추정되는데, 배회감지기 보급은 52건에 그쳤다.

배회감지기를 받고도 잘 착용하지 않는다는 말도 나왔다. 배회감지기는 크게 목걸이형, 시계형으로 나뉘는데 노인들이 ‘불편하다’고 벗어버리면 그만이다. 배터리 충전이 서툴러 방전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종수사팀이야말로 온갖 수사기법을 활용하는 곳”(이학우 수사관)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탐문 수사는 실종수사에 필수적이다. 박성규 수사관은 “어떤 면에서는 실종자를 피의자로 생각하고 찾는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실종 수사관들에게는 끝까지 찾겠다는 집요함과 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월 집을 나갔다가 실종 신고 하루 만에 경찰에 발견된 70대 치매 남성의 발견 직후 모습. 은평경찰서 제공
지난 1월 집을 나갔다가 실종 신고 하루 만에 경찰에 발견된 70대 치매 남성의 발견 직후 모습. 은평경찰서 제공
올해 초 집을 나간 지 이틀 만에 신고된 70대 치매 남성을 찾을 때도 수사관들의 이런 집요함이 두드러졌다. 치매 초기 증상과 우울증을 앓던 이아무개(73)씨가 은평구 자택을 나간 건 1월30일 밤 10시께. 아내와 다투고 신변을 비관하는 말을 던진 뒤였다. 이씨는 이틀 뒤인 2월1일까지 드문드문 가족들이 거는 전화를 받다가 같은 날 오후 2시께 딸과 한 통화에서 앓는 소리만 낸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뒤로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자 가족들은 오후 5시30분께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실종수사팀이 휴대전화 위치추적에 나섰지만 밤 10시15분께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버렸다. 마지막으로 확인된 기지국 위치를 근거로 서울과 경기 고양시 경계 반경 5㎞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색이 이어졌다. 수색에는 은평서 실종수사팀과 여성청소년수사팀, 고양경찰서 실종수사팀 등 23명이 참여했다. 경찰은 수색 지역 안에서 공사 중인 아파트 공실 890세대를 샅샅이 뒤지기도 했다. 이씨가 발견된 건 2월2일 오후 4시40분께 고양시 창릉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가장자리에서였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지친 이씨는 도로와 인도 사이에 앉아있었다. 무사히 이씨를 가족 품에 돌려준 은평서 실종수사팀은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실종 신고된 치매노인 대부분은 몇 시간 안에, 늦어도 하루를 넘기지 않고 발견된다. 실종 치매환자 발견율은 99%에 이른다. 2018년 실종 신고된 1만2131명 가운데 찾지 못한 경우는 11명 정도다. 문제는 일부이긴 하지만 사망한 채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6년부터 2018년 8월까지 접수된 치매환자 실종신고는 모두 2만8325건이다. 이 가운데 사망한 채로 발견된 사례는 216건이다.

무엇이 죽음과 삶의 경계를 갈랐을까. 김 팀장은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신고 자체가 너무 늦거나, 위치추적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원거리로 이동했을 때, 특히 겨울에 실종되는 경우 하룻밤만 노숙했다고 쳐도 거의 생존이 어렵습니다. 치매노인들이 길을 헤매다가 산처럼 인적이 드문 곳에서 힘이 빠져 주저앉거나 하면 정말 위험해지는 거고요.”

신고조차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큰 사각지대도 있다. 독거 치매노인들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8년 65살 이상 독거 노인은 140만5천명이다. 여기에 치매 유병률을 단순 대입해봐도 독거 치매노인은 14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도 이러한 사각지대를 인지하고 있다. 조현성 중앙치매센터 전략사업부장은 “독거노인은 실종신고가 아무래도 늦을 수밖에 없어서 취약한 입장”이라며 “치매안심센터가 독거노인 실종을 예방하는 사회적 지지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12월 첫발을 뗀 치매안심센터는 통합 치매 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전국 시·군·구 보건소 256곳에 설치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말 기준 추정 치매환자 75만8천명 가운데 절반인 37만명이 치매안심센터에 등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실종 치매노인을 1분이라도 빨리 찾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휴대전화에 ‘치매체크’ 앱을 설치하면 인근 지역에서 실종된 치매환자에 대한 정보를 알람으로 받아볼 수도 있다. “치매노인이 밖에서 헤매다 보면 노숙인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조금이라도 이상해 보이면 말을 걸어보고 꼭 경찰에 신고해주세요.”

글·사진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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