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유전자치료제로 시판됐다 판매 허가가 취소된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 케이주’
국민 세금으로 100억원이 넘는 지원금을 받은 코오롱생명과학이 인보사케이주(인보사) 주성분 세포가 바뀐 것을 알고서도 숨긴 사실이 드러났지만, 정부는 인보사 연구개발(R&D)에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얼마큼 지원을 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산업통상자원부는 부처별로 예산을 편성해 진행한 연구개발 사업을 통해 코오롱생명과학을 최근까지 지원해왔는데,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 만큼 정부가 국고 환수를 비롯한 강력한 사후 조처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29일 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행한 ‘2018 첨단바이오의약품 산업 백서’를 보면 복지부 20억원(2002~2007년), 산업부 104억원(2005~2011년), 복지부 및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57억원(2015~2018년) 등 281억원이 인보사 연구개발 지원금으로 나온다.
이는 130억원대로 알려진 연구개발 지원금과 차이가 있다. 앞서 복지부는 과기부와 함께 진행한 ‘첨단바이오의약품 글로벌진출사업’(2015~2018년)을 통해 82억1천만원, 산업부는 ‘바이오스타 프로젝트’(2005~2010년)를 통해 52억여원 등 134억원만 인보사 개발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백서의 정부 지원금에 대해 복지부와 산업부는 “민간 부담분까지 합친 총연구비를 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2006년 산업부 보도자료에는 ‘티슈진-C’(인보사 개발명)가 식품의약품안전처 임상 승인을 받았으며, 이는 바이오스타 프로젝트에 선정돼 2010년까지 195억원(정부 97억원) 지원 과제 수행 중 이뤄진 성과라고 자랑하는 대목이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그렇게 홍보를 했지만 실제 예산 집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부 연구개발 사업 참여로 인한 세제 혜택이나 금융 지원 등이 있었다면 지원 규모는 더 늘어난다. 지원 규모에 대한 파악이 불분명한 가운데 이날 윤소하 의원(정의당)은 “2002년 이후 인보사에 대한 정부 지원은 최소 147억7250만원이다. 2002년 이전에도 지원이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전체 액수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행한 ‘2018 첨단바이오의약품 산업 백서’에 소개된 인보사 연구개발 과정.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진행한 연구개발 사업 일환으로 이러한 백서가 발간됐다.
정부가 인보사 개발을 지원한 건 성장촉진 단백질을 분비하는 형질전환 연골세포를 넣어 만든 ‘혁신적 치료제’라고 판단해서였다.
이러한 연골세포가 처음 만들어진 건 2004년으로 알려졌으나, 치료제엔 해당 연골세포가 아닌 허가받지 않은 다른 세포(GP2-293세포)가 사용됐다. 그렇다면 각 부처 연구개발 지원 사업으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혁신성’은 제대로 검토된 것일까? 한 신약 개발 연구자는 “기본적으로 신뢰가 없는 사회이다 보니 연구개발 사업 심사 과정에서 중립·공정함을 내세우면서 해당 치료제 관련 분야 전문가를 심사위원으로 부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대학 연구 등 기초학문이 약하니 전문가를 찾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최근 특정 치료제 개발 국책 과제를 선정하는 심사위원 명단을 보니 해당 전공자가 한 명도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연구개발 사업은 각 정부 부처 성과로 활용되고, 공무원은 부족한 전문성을 수많은 서류 자료로 보충하려 한다”며 “제약·바이오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이 국민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투자가 아닌, 돈을 벌기 위한 산업 육성이라는 관점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별 것 아닌 연구결과를 가지고도 광고 등을 통해 투자를 받는 업체들이 보인다”고 짚었다.
지난 4월 복지부는 올해 제약·바이오산업 지원 계획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인보사를 연구개발(R&D) 확대 성과 중 하나로 꼽았다. 인보사 주성분이 애초 허가받은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세포라는 사실이 확인돼 판매가 중단된 이후였다. 인보사 사태가 얼마나 중대한지 보건당국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음을 보여준 셈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연구 윤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선 끈질기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공공기관 연구원은 “정부 연구개발 사업은 애초 없는 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실패를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그만큼 평가하기 어렵다. 대신 연구자들에게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해야 한다. 일단은 믿어주는 대신 거짓말이 드러난 경우 책임을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환수나 사업 참여 제한 등 사후 조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각 부처가 진행하는 연구개발 사업은 기본적으로 과학기술기본법을 따른다. 현행법을 보면, 제재조치 평가단 심의를 통해 연구 부정행위 시 지원금 환수가 가능하며, 연구개발 사업 참여는 최장 5년 동안 제한된다. 현재 복지부와 산업부는 개별적으로 코오롱생명과학 등에 대한 사업비 환수 가능성 등을 검토 중이다. 미국의 경우 우리와 달리 연구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데 대한 불이익은 없지만, 연구 부정이 적발되면 개발비 환수 뿐 아니라 다시는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게 하는 등 강한 제재를 하고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