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기대를 모았던 ‘문재인표 사회적대화’가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첫 회의를 열고 출범한 사회적대화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합의안을 의결하지 못하는 등 결정 불능 상태에 놓인 지 석달 가까이 지났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참하는 가운데, 한국노총과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노동부 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합의안을 두고서 비정규직·여성·청년 등 이른바 계층별 대표 3인이 본위원회 참여를 거부해 파행이 계속되고 있다.
문성현 위원장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계층별 대표 3인과 각각 이야기를 잘 나누고 있다”며 “6월 말까지, 상반기 안에는 반드시 (경사노위를) 정상화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처럼 어려우니까 사회적대화를 하는 것”이라며 “격차와 불평등 해소 및 사회안전망 강화라는 사회적대화의 궁극적 목표를 위해 (새 의제별 위원회로) ‘양극화 해소와 고용플러스 위원회’를 서둘러 발족하겠다”고 덧붙였다. 문 위원장의 어조는 공식 인터뷰 내내 차분하고 담담했다. 그러나 이어진 점심식사 자리에서는 다소 뜨거워져 “위원장으로서 지난 1년9개월의 시간은 기다림의 1년, 애태움의 6개월, 분노의 3개월이었다”며 속내를 여과 없이 내비치기도 했다. 인터뷰는 5월29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위원장실에서 진행됐고, 3일 전화로 추가 질문답변이 이뤄졌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경사노위 표류가 장기화하고 있다. 위원장으로서 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경사노위는 (노사정 등의) 합의 과정에서 나온 의견을 국회나 정부 결정 과정에 반영되도록 하거나, 대통령에게 자문을 하는 곳이다. 기능은 하고 있다. 다만, 본위원회를 열 수 없는 것이 문제다. 결정 불능 상태이기 때문이다.”
―의제별 위원회, 업종별 위원회가 열려도 최종 의결기구인 본위원회가 열리지 못하면 ‘기능 부전’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됐다고 보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늘린) 탄력근로제에 관한 노사정 합의, 주어를 정확히 하면 경총과 한국노총, 고용노동부 사이의 합의를 이른바 (비정규직·여성·청년 등) 계층별 대표 3인이 거부해 본위원회가 열리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탄력근로제 합의안을) 처리하면 (계층별 대표) 3인이 (경사노위 본위원회에) 안 (들어)올 이유가 없다. 이렇게 국회가 열려 논의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고 본다.”
―6월 국회 개회도 불투명하다. 탄력근로제 합의를 첫 의제로 삼은 것 등 경사노위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의제의 우선순위를 잘못 세웠다는 비판이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 사회를 내걸었다. 이는 노동만 존중하자는 게 아니다. 노동도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현 정부의 노동 의제는 4가지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그리고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이다. 모두 오래전부터 노동이 제기한 의제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2년을 평가하면, (나는) 노동 존중했다고 생각한다. 노동계는 응당 해야 하는 의제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노동만 존중하는 것이라고 비쳐진다. 이렇듯 노동 의제를 제기하면 노사관계는 따라오게 돼 있다. (경사노위의 사회적대화는) 이렇게 봐야 한다. 사용자 쪽은 노동만 존중한다고 볼 게 아니고, 노동계도 100%를 다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이런 이해가 (양쪽 모두에) 없었던 것 같다. 4가지 의제는 다 사회적대화가 필요한 것들이다.”
―정부 노동정책에 대한 위원장의 평가가 너무 후하다. 전문가들은 “집권 1년차는 A 학점이었지만 2년차 들어선 C 학점으로 떨어졌다”고 평가한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는 당위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첫해의 최저임금 인상은 D 학점이다. 을들의 문제를 고려했어야 했다. 그래서 두번째 논의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청와대에 올렸다. 최저임금 인상률과 산입범위를 노사정 합의사항으로 삼자는 의견도 냈다. 그러나 결국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 논의 과정에) 노동계가 빠지니 산입범위는 (복리후생비까지 포함해) 확 넓어졌다. 국회에서는 노동 의제가 어떻게 결론날지 모른다. 한국노총 (김주영) 위원장이 경사노위 의제로 탄력근로제를 수용한 것은 최악을 막기 위해서였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최대 6개월로 늘리기로 합의했는데, 국회로 넘어가면 이 기간이 1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한 때문이었다.”
―경사노위 파행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정부·여당, 계층별 대표 3인 등 노동계, 경사노위 등 여러 주체들의 책임 논의가 나온다. 어떻게 평가하나?
“경사노위는 대통령의 자문기구다. 뭘 자문하느냐? 노동 의제다. 이 성격을 잘 봐야 한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가 안 풀리고 있다. (경사노위에서 국제노동기구 기본협약 비준에 관해) 합의를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봤는데, 못 했다. 노동 의제는 노사가 중심에 서야 한다. 특히 노동이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책임은) 노동계가 1차다. 사용자가 2차다. 경사노위는 세번째다. 사회적대화는 노동의 관점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의 (조직)노동이 노동 의제에 얼마나 책임을 갖고 임했는지 지적하고 싶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만 관심이 있으면 사회적대화는 필요가 없다. 밖에서 싸우면 된다. 세상일은 당위와 현실 사이의 어디쯤에 놓여 있다. 노동도 (이걸) 알아야 한다. 관계로 부닥치다 보면 최선과 최악은 없다. 차선과 차악의 어디쯤이 있을 뿐이다. 양대 노총은 이 점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
―경사노위 파행의 원인을 놓고 조급한 성과주의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아니다. 탄력근로제를 바라보는 한국노총의 현실 인식이 있었던 것이지 조급함이 아니었다.”
―위원장으로서 경사노위가 잘한 것이 무엇이고 잘못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표류라고 하는데 나는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본다. 소상공인, 중소 및 중견 기업 대표 그리고 여성과 비정규직 및 청년 대표 등 계층별 대표들을 왜 참여시켰는가? 이는 향후 해결 과제와 맞닿아 있다. 경사노위의 역할은 궁극엔 격차 및 불평등 해소와 사회안전망 강화다. 이 논의를 위해서도 소속 위원들의 참여는 꼭 필요하다.”
―노사가 중심에 서야 한다고 했지만 실제 운영은 정부가 중심이 아니었나? 경사노위의 운영 미숙에 대한 지적도 끊이지 않고 나온다.
“과정 관리를 두고선 아쉬움이 있다. 노동계는 물론 경영계도 C플러스다. 노사가 모두 (대화) 과정에서 제 몫을 잘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노동이 빠지면 정부 주도로 갈 것이다. 계층별 3인은 민주노총과 연결돼 있다고 본다. 민주노총이 감당할 문제를 이들 3인이 감당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사 대립과 민주노총 간부의 구속영장 신청 등 노사 및 노정 관계가 심상찮다. 사회적대화나 경사노위 무용론이 더 힘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노동도 경제사회적 조건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저성장 (경제)체제다. 이 체제는 총체적 개혁을 요구한다. 모든 산업은 미래형으로 구조조정돼야 한다. 노사관계도 완전 달라져야 한다. (한국 경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도 아주 크다. 중국 변수와 저성장 체제는 (기존과) 다른 노사정 관계를 필요로 한다. (사회적대화와 경사노위) 무용론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저성장 체제의 노사(관계), 어떻게 갈 것인가? 이런 문제를 어디에서 논의할 것인가? 격차와 불평등 문제를 이대로 둘 것인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어떻게 풀 것인가, 사회안전망(강화 방안)을 어디에서 논의할 것인가? (이들 문제 해결에 대한) 절실함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그리고 경총과 대한상의에 있는가? 한국사회는 전환기적 변화를 겪고 있다. 사회적대화가 너무나 절실하고 필요한 상황이 바로 지금이다.”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사노위의 정상화’다. 이 방안의 핵심은 무엇인가?
“계층별 대표 3인과 얼마 전 제각기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과정에서) 확인한 것은, 이들이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인들이 직접 하겠다는 의지도 강했다. 탄력근로제 이슈가 걸려 있지만 국회에서 처리하면 끝난다. (계층별 대표) 세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조율 중이다. 6월 말까지, 상반기 안에는 반드시 정상화하겠다. 이분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2가지다. 중요한 의제의 논의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 이건 풀 수 있다. 탄력근로제를 (경사노위 본위원회) 1호 안건으로 합의하는 데는 참여하지 않겠다, 이것도 어렵지 않은 문제다. 난관은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들 하는 것처럼 어려우니까 사회적대화를 하는 것이다. 사회적대화의 전반기는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단축 등 4가지 의제로 일단락됐다고 본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뭘 할 것인가? (사회적대화의) 궁극적 목표는 격차 및 불평등 해소와 사회안전망 강화다. 서둘러 의제별 위원회를 열어 ‘양극화 해소와 고용플러스 위원회’를 발족할 계획이다. 국민연금 특위도, 사회안전망 위원회도 가동해야 한다. 이때부터는 노사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대화의 정상화를 위해 노사정 등 각 주체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말해보라.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난 한국노총을 부정하고 민주노총을 만든 사람이다. 그렇지만 한국노총의 김주영 위원장을 높이 평가한다. 대화의 기본기를 갖고 있다. 계속 잘해줬으면 한다. 민주노총은 투쟁이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제 해결 방안은 차선과 차악 사이에 있는 게 현실이다. 사회적 책임감으로 (향후) 격차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사회적대화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놓고 판단해주길 바란다. 경총은 노동 유연성에 대한 요구가 많은데, 안정성이란 토대가 갖춰져야 유연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해줬으면 한다. 정부엔 미래형 일자리를 논의할 때 노동 의제를 고려할 것을 주문한다. 광주형 일자리, 군산형 그리고 대구형 일자리 등 지역상생 일자리가 중요하다. 이를 진행하자면 각 지역의 노사가 중심이 되는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이 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여기에 주력할 생각이다. 난 평생을 노동운동을 한 사람이다. 디엔에이(DNA)가 노동이다. 하지만 투쟁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체감한 사람이기도 하다. 대화는 본질적으로 주고받는 과정이다. 내 삶을 보고 나를 신뢰하길 바란다. 경사노위 위원장직을 내려놓고 현장으로 간다면 나는 다시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할 수 있다. 한 사람 속에는 투쟁과 대화가 함께 녹아 있는 것이다. 이 둘을 분리해서 투쟁만, 혹은 대화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회적대화를 하다가도 안 되겠다면 (뛰쳐나가) 총파업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문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러나 여러 이해관계자의 조정자란 위치니만큼 표현엔 신중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그래도 공식 인터뷰 뒤 이어진 점심 자리에서는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내 보였다. “민주노총의 참여를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결국 불참한 가운데 경사노위 출범을 하게 됐을 때는 (위원장직) 사퇴를 고민했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격려 한마디에 접었다”고도 했고, 자신의 처지가 “노사정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숙명”이라고도 했다. 무엇보다 경사노위 위원장으로서 지난 1년9개월의 시간을 두고선 “기다림의 1년, 애태움의 6개월, 분노의 3개월”이라고 압축했다. 그의 공식 임기는 오는 8월 말까지다.
이창곤 <한겨레> 논설위원 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goni@hani.co.kr
주말이면 농사꾼으로 변신하는 ‘노동 일꾼’
문성현은 누구?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주말 농사꾼’이다. 주중엔 위원장으로서 공무에 여념이 없지만 매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경남 거창을 향한다. 호두 농사를 위해서다. 2006년 지방선거에 민주노동당 경남지사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뒤 “생계를 위해 호두와 고사리, 곶감 등의 농사를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연 수입 3천만원이란 목표를 세워 아내와 함께 온 힘을 다해도 늘 목표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그의 농사 경력은 어느덧 열두해에 이른다.
그러다 월요일이면 다시 넥타이를 매고 서울 종로구에 있는 위원장실로 복귀한다.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지난 1년9개월은 희망과 좌절 등이 뒤엉킨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이었을 터라, 그는 세가지 병을 얻게 됐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11월 암 수술을 받았고, 당뇨병을 앓게 됐으며, 경사노위 파행이 이어지면서 화병까지 얻게 됐다고 한다.
문 위원장의 삶을 수식하는 핵심어는 ‘노동운동가’다. 진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란 ‘엘리트 코스’를 거쳤지만, 1979년 한도공업사 프레스공으로 시작해 통일 노조위원장,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의장, 민주노총 전국금속연맹 위원장, 민주노동당 대표 등을 지내며 40년을 ‘노동’을 위해 힘썼다. 한때 ‘문 전투’에서 지금은 ‘문 대화’로 변신한 그는 금호타이어 노사 합의나 쌍용차 해고자 전원 복직 등 문재인 정부의 주요 노사문제 해결은 물론, 광주형 일자리 성사의 숨은 조력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