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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실 나도 반지하 방 살았는데…”〈기생충〉이 불러온 슬픈 고백들

등록 2019-06-05 15:51수정 2019-06-05 20:57

디테일한 연출이 ‘지하주거’ 서글픔과 상처 소환
“‘반지하 경험담’, 계급불평등에 대한 공감 반영”
영화 <기생충> 속 주인공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이 사는 반지하 주택의 화장실 모습. 지하주택은 수압이 약하기 때문에 변기가 바닥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기생충> 속 주인공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이 사는 반지하 주택의 화장실 모습. 지하주택은 수압이 약하기 때문에 변기가 바닥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에스에프(SF) 소설가 이서영(32)씨는 최근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본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영화를 보면서 괴로운 기분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이 이 영화를 안 봤으면 좋겠다”는 글을 썼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진 뒤 부모님은 서울 홍제동에서, 자신은 서교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살았던 기억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불평등을 주제로 한 영화 <기생충>에서 주인공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이 사는 ‘반지하 방’은 정보통신(IT) 업체를 운영하는 박 사장(이선균 분)의 고급 저택과 대비되는 공간으로,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주거 격차에 따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다르다는 설정은 영화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중요한 매개체다.

이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부모님이 사셨던 반지하 방의 화장실 변기 위치가 영화 속 주인공 집과 똑같았다. 나 역시 반지하에서 빨래가 잘 마르지 않아 꿉꿉한 냄새가 났던 기억 때문에 지상층에 사는 지금도 집 여기저기 섬유탈취제를 두고 산다”며 “당시 너무 귀찮고 피곤하게만 느껴졌던 일상이 블랙코미디로 묘사된 장면을 보면서 비참함이 몰려왔다”고 말했다.

<기생충>이 개봉 6일 만에 누적 관객수 400만명을 돌파한 가운데 에스엔에스(SNS) 등에선 이씨처럼 ‘반지하살이’를 경험한 관객들의 ‘슬픈 고백’이 잇따르고 있다. 작품성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영화가 과거 반지하 주택에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 ‘지하 주거자’의 서글픔과 상처의 기억을 소환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낮은목소리] 이게 사는 겁니까, 비닐하우스가 차라리 나아요)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2015년 서울에서만 22만8467가구가 지하(반지하)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서울시 총가구의 6%를 차지하는 수치다. 경기도(9만9291가구)와 인천광역시(2만1024가구)까지 포함하면 수도권의 지하주택은 34만8782가구로 전체의 약 96%가 수도권에 집중돼있다.

그동안 가난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반지하살이’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했다는 누리꾼들은 <기생충>을 본 뒤 자신의 경험담을 온라인 공간에 쏟아내고 있다. 이들은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 같은 집에 산 적이 있다. 아버지 사업 망하고 들어갔던 집. 화장실이 계단 서너개를 올라가야 해서 서서 샤워할 수 없었던 집. 다시 아버지가 용서 안 된다.”(@nunas****), “반지하 셋방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가난은 투명함을 강제했다. 사람들은 기생충을 보며 변기와 세탁실이 함께 있어 (화장실) 문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 챘을까? 난 단번에 알았다”(@chinab****), “반지하에선 아무리 섬유유연제를 써서 빨래를 해도 옷에서 어딘가 꿉꿉한 냄새가 났다. 그게 뭔지 아는 사람이라면, 당신에게도 기생충은 4D 영화일 것”(@not_bu****), “젊었을 때 몇 년 동안 반지하에 산 적 있는데 그때 기생충을 봤으면 울었을 것 같다. 대단지 아파트 햇빛 잘 드는 층에 살고 있는 지금도 박 사장보다는 주인공 가족에 감정이입이 된다”(@earth_an****) 등의 글을 에스엔에스에 올리고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감독이 반지하 주택의 경험을 디테일하게 연출한 점도 있지만, <기생충>에서 반지하 방은 단순한 공간적 배경을 넘어 계급 불평등이란 주제를 상징한다. 에스엔에스의 ‘반지하 경험담’은 관객들이 감독의 문제의식에 공감을 나타낸 것”이라며 “한 편의 영화가 일반 대중에게 잠재돼 있던 계급의식을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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