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기숙사 308관과 309관 전경. 누리집 갈무리
“막힌 변기 뚫어달라는 요청부터 방에 자녀가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부모들 부탁 들어주는 것도 우리 일이에요.”
윤영만(51)씨는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기숙사 방재실에서 일하는 시설직 노동자다. 기숙사 두개동에 방이 1100여개, 2300여명의 학생이 이곳에 산다. 지금은 4교대로 돌아가면서 일하지만 지난 3월까지만 해도 3교대 근무였다. 주근(오전 9시 출근-오후 6시 퇴근)-당직(오전 9시 출근-다음날 오전 9시 퇴근)-비번 순으로 돌아가면서 일하는 형태다.
방재실의 24시간은 분주하다. 보일러, 냉·온수기, 수도 점검은 물론 지하 변전실 관리도 맡는다. 학생들 민원도 처리해야 한다. 방마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데 하수구가 막히기라도 하면 새벽에라도 가서 고쳐줘야 한다. 학생들은 장롱이 부서지거나 침대 매트리스가 내려앉아도 방재실에 연락한다. “밤새도록 민원이 들어오는데 어쩌겠어요. 학생들이 불편하니까 우리가 움직여야죠.”
밤샘 근무까지 포함해 주당 근무시간이 60시간에 가깝지만, 윤씨의 월급은 2015년 9월 입사 당시 180여만원 남짓에 그쳤다. 지난해에는 210만원을 받았다. 윤씨를 비롯해 방재실 직원 9명 모두 용역업체 ‘에버이앤지’에 소속된 비정규직이다. 연차에 따른 차이 없이 같은 월급을 받는다. “제가 하는 일이 ‘감시 단속직’이라고 해서 수당이 안 나오는 게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참아왔어요.” 윤씨의 말이다.
중앙대학교 기숙사 방재실 업무일지 일부. 업무일지를 보면 방재실 업무가 감시·단속직 요건에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윤씨가 말하는 감시·단속직(감단직)은 노동자들의 ‘족쇄’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노동이 간헐적·단속적으로 이뤄져 휴게 시간 또는 대기 시간이 많은 업무라는 이유로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이 나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휴게, 휴일에 대한 법률 적용에서 제외된다. 각종 수당도 감단직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아파트나 건물 경비원과 주차관리원과 물품감시원 등이 대표적인 감단직이다. 고용노동부의 설명을 보면, △평소 업무는 한가하지만 상황 발생에 대비해 대기하는 시간이 많은 업무인 경우 △대기시간에 노동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수면·휴게시설이 확보되어 있는 경우 △실재 노동시간이 대기시간의 절반 정도 이하이고 8시간 이내인 경우(단, 24시간 격일제 근무일 때는 당사자 간 합의가 있고 다음날 24시간 휴무가 보장되어 있다면 승인 가능) 등이 승인 요건이다.
이런 상세한 승인 요건을 몰랐던 윤씨는 “입사 때 용역업체 직원이 ‘방재실에 감단직 승인이 나왔다’고 직접 말했기 때문에 당연히 감단직인줄 알았다”고 말했다. 용역업체에서 발행한 월급명세서를 봐도 연장근로수당이나 야간근로수당에 해당하는 항목이 없다. 감단직이더라도 야간 근무 땐 ‘야간수당’을 줘야 하지만 용역업체는 이들의 야간 근무를 느슨한 대기 상태로 보고 약간의 당직비를 지급했을 뿐이다. 반전은 지난해 12월에 찾아왔다. 용역업체 대표가 우연히 직원들에게 “방재실에 감단직 승인이 안 나왔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용역업체 대표는 6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처음부터 방재실은 별도로 감단직 승인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용역업체 직원이 윤씨에게 ‘방재실에 감단직 승인이 나왔다’고 말한 것은 “중앙대 경비직 노동자들에게는 감단직 승인이 나왔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결국 윤씨를 비롯한 방재실 직원들은 애초부터 감단직 노동자가 아니었는데 ‘감단직 족쇄’에 묶여 부당한 처우를 받은 셈이다.
용역업체는 지난해 말 뒤늦게 방재실 노동자들에 대한 감단직 승인을 고용노동부에 신청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윤씨 등의 일이 ‘단순 감시직’이라는 업체의 설명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올해 입사자 3명을 제외한 윤씨 등 방재실 직원 6명은 노무사에게 의뢰해 그동안 못 받은 수당을 계산해봤다. 이들은 체불임금채권 소멸시효가 남은 3년치 미지급 수당이 1억4천여만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용역업체와 원청인 중앙대는 서로 지불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윤씨 등 6명이 용역업체 쪽에 ‘미지급 수당을 달라’고 요구한 시점은 지난 3월 말. 학교 역시 그즈음 용역업체로부터 공문을 받고 이같은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용역업체 쪽은 “우리는 용역업체여서 이윤이 박하기 때문에 지급 능력이 안 된다. 원청에서 돈을 주면 지급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교 쪽은 “계약과 법률에 따라 근로자를 고용하고 감독, 관리한 업체 쪽에서 (미지급 수당을) 지급할 책임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입장이다. 중앙대는 “입찰을 통해 업체와 1인당 인건비를 월 180만원으로 책정한 용역계약을 맺고 이를 성실히 준수해왔다”며 “감단직 승인 여부는 3월 말 업체 공문을 받고서야 인지하게 됐다”고 밝혔다. 결국 윤씨 등 6명은 지난달 31일 업체와 중앙대를 상대로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서를 제출했다.
김세진 한국비정규센터 정책국장은 “대학이 용역을 쓰는 이유 자체가 이런 법적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실질적으로 중앙대를 위해서 일하는데 법적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중앙대를 비롯한 사립대학들이 건물을 고급화하는데 막대한 돈을 쓰면서 정작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한테는 최저임금에 불과한 돈을 주고 있다”며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임금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미지급 수당을 받는 것마저 힘든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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