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 엘지 트윈빌딩. <한겨레> 자료사진
엘지(LG) 총수 일가 14명의 156억원 조세포탈 사건 재판이 다음달 말에 마무리된다. 검찰은 ‘초 단위’까지 맞춘 동일 시간에 동일 가격으로 대량의 동일 수량 주식을 사고파는 ‘통정매매’를 통해 조세포탈이 이뤄졌다는 점을 줄곧 강조해왔다. 반면 엘지 쪽은 ‘우연하게 총수 일가 사이에 주식매매가 이뤄졌을 뿐’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주식매수자가 누가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뤄진 거래이기 때문에 특수관계인(총수 일가) 간 주식거래에 추가로 붙는 양도소득세를 탈루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 25부(재판장 송인권)는 다음달 23일 최종변론을 마치기로 하고 재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재판 쟁점은 통정매매 성립 여부다. 엘지 쪽 변호인은 “장내 주식 경쟁 매매는 특수관계인 간 거래가 아닌 증권회사 사이의 거래”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비록 동시에 매도와 매수 주문을 내더라도 불특정한 일반 투자자가 매수할 수 있는 만큼, 사전에 서로 짜고 주식매매를 하는 통정매매는 아니라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엘지그룹 사외이사로 있으면서 이 사건을 맡아 논란이 됐던 노영보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가 이끌고 있다. 엘지 쪽은 지난해 검찰 수사에 대비해 법무법인 율촌으로부터도 법적 자문을 받았다. “거래 편의를 위해 증권사에 매도·매수를 맡기다 보니 우연한 사정으로 엘지 사주 일가 간 주식거래가 발생했다. 따라서 조세포탈 의도가 없었다”는 내용이다.
법정에서 공개된 검찰 수사기록 등을 보면, 엘지 쪽이 주장하는 이런 ‘우연한 거래’는 2007년 이후 140차례 이상 반복됐다. 보통 경영권 유지에 필요한 특수관계인 간 대규모 지분거래는 ‘장외’에서 이뤄진다. 반면 엘지 총수 일가는 ‘장내’에서 지주회사 ㈜엘지와 엘지상사 주식을 서로 사고팔았다. 매매는 동일 시간, 동일 가격으로 이뤄졌다. 총수 일가가 아닌 제3자가 일부 주식을 매수하기도 했지만, 그 수량은 매우 적었다. 내다 판 것과 거의 동일한 수량의 주식이 다시 총수 일가로 넘어갔다.
실제 엘지 총수 일가 주식거래를 중개한 증권사 직원들은 검찰 조사에서 “컴퓨터 2대를 켜놓고 한쪽에는 매도창, 다른 쪽에는 매수창을 띄우고 대기했다. 엘지 재무관리팀에서 전화가 오면 동시에 클릭해 주문을 체결했다” “사주 일가 거래는 거의 100% 통정매매였다”고 진술했다. 컴퓨터를 1대만 사용할 경우 매수 시점까지 “몇초의 시간적 간격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사이에 일반 투자자들이 총수 일가 지분을 사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처인 셈이다.
이 때문에 엘지 총수 일가의 주식매매 체결률은 90% 이상, 때로는 100%에 이르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10년 5월17일 낮 12시58분29초에 고 구본무 전 회장의 엘지상사 주식 5500주에 대한 매수 주문이 있자, 불과 22초 뒤에 동일한 금액으로 이재연 전 엘지 부회장의 장남 이선용씨가 5000주 매도 주문을 넣어 거래가 체결되는 식이다. 조세 사건 전문인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9일 “(엘지 쪽 주장이) 법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지만, 엘지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증권사에 맡겼겠느냐는 상식적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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