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 김상원 열사 묘역에 ‘관리비 미납’ 체납 딱지가 붙어 있다. 남양주/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0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 한 묘역에 ‘위 묘소는 관리비가 미납되었습니다. 묘지 관리에 어려움이 있사오니, 조속히 납부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묘지관리점검표가 붙어 있다. 민주열사묘역 끝단 오른쪽에 안치된 이 묘역의 주인은 문송면 열사다. 문 열사는 14살 때인 1987년 서울 양평동의 한 온도계 공장에 입사해 일한 지 2달 만에 수은에 중독됐고, 6개월 투병 끝에 15살의 나이로 숨졌다. 하루 11시간 동안 압력계 커버를 시너로 세척하고 온도계에 수은을 주입하는 작업 등을 했다가 중독됐다. 당시 노동부는 산업재해 신청을 반려했다가, 비판이 제기된 뒤에야 승인했다.
문 열사의 묘역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김상원 열사의 묘역에도 마찬가지로 같은 문구가 적힌 묘지관리점검표가 붙어 있었다. 김 열사는 1986년 3월10일 대규모 노동자 집회에 참여했다가 돌아가는 길에 경찰관에서 불심검문을 당했고, 이를 거부했다가 파출소로 연행돼 전신 폭행을 당해 식물인간이 됐다. 이후 77일 동안 중환자실에서 투병한 끝에 1990년 5월 33살의 나이로 운명했다.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관리비를 제때 내지 못해 ‘체납딱지’가 붙은 묘역이 10%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은 6·10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32년이 되는 날이다. 마석 모란공원과 ‘모란공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현재 모란공원에 있는 민주열사 150명의 묘역 가운데 관리비를 못 내 ‘체납딱지’인 묘지관리점검표가 붙어 있는 묘역은 모두 15곳이다. 마석 모란공원은 1966년 설립된 사설 묘지로 ㈜한국공원개발이 관리·운영한다. 모란공원 관계자는 “3년 동안 관리비를 내지 않은 묘지를 대상으로 연락이 전화나 우편으로 안될 경우 ‘알림’ 차원에서 딱지를 붙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가족이 돌아가셔서 연락처가 없거나 가족들이 국외로 나간 경우 관리비를 받을 수 없다”며 “유가족 연락처를 조회하고 싶지만,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찾을 수 없어 딱지를 붙이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마석 모란공원의 묘역의 1년 관리비는 기본 23㎡ 기준 8만4000원이다. 관리비 체납이 계속되면, 모란공원 쪽은 체납 사실을 신문에 공고하고, 이후 묘지를 파서 화장한 뒤 납골당에 안치할 수 있다. 모란공원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특별한 조처를 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10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 문송면 열사 묘역에 ‘관리비 미납‘ 체납 딱지가 붙어 있다. 남양주/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모란공원에는 모두 1만2000곳의 묘역이 있다. 이 가운데 민주열사 묘역은 150곳으로 꼽히는데, 이 중 박종철, 전태일 등 정부가 인정한 ‘민주화운동 관련자’는 모두 24명이다. 24명의 묘역 중에서 유족 등의 신청을 받은 22명에 대해서는 2016년부터 경기도가 관리비를 지급하고 있다. 경기도 자치행정과 관계자는 “경기도가 열사의 유가족 등 관련자들에게 우편물을 보내고 공고를 내서 관리비 지원 신청을 받았는데, 24명 가운데 22명의 유가족이 신청했다”며 “올해는 관리비에 더해 봉분 보수비 등까지 1천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리비가 체납된 15명의 민주열사 가운데 13명은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민주열사다. 이들은 경기도나 정부로부터도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한다. 경기도 관계자는 “모란공원에 워낙 열사들이 많이 있는데,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다 지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또한 개별 묘역에 대한 관리비 지급은 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다만, ‘마석모란공원 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역 정비사업’으로 2억원의 예산 가운데 1억8400만원 정도를 지원했다”며 “쉼터나 안전대, 화장실 설치 등 편의시설 정비나 안내기구표, 리플렛 제작 등이 주된 지원 내용”이라고 밝혔다.
현행법상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정부가 정한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심의·결정된 사람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제2조를 보면, ‘민주화운동’은 △2·28대구민주화운동 △3·8대전민주의거 △3·15의거 △4·19혁명 △6.3한일회담 반대운동 △3선개헌 반대운동 △유신헌법 반대운동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및 6.10항쟁 등으로 한정돼 있다. 산업재해나 불심검문 등으로 민주묘역에 잠든 문송면 열사와 김상원 열사가 정부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다.
‘모란공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에서 한 달에 두 번 공원 묘역을 관리하는 활동가 김기문씨는 “정부에서 열사로 인정한 사람과 아닌 사람 간 지원의 차이가 크다”며 “묘역 청소 등 봉사를 갈 때마다 체납딱지가 붙은 민주화 열사 묘역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봉사단체가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문경희 경기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모란공원에 안장된 민주화 열사 중 정면에 나서서 누구나 아는 분들은 당연히 관리비 지원이 되는데, 그 열사와 함께 일했거나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분들은 관리비가 체납된 분들이 많다”며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씨가 생전에 ‘우리는 충분히 사람들이 알아주고 지원도 받는데, 그렇지 못하는 분들을 안고 가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저분들도 함께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하셨던 말이 맴돈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현행법상 특정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관련자들만 한정해 지원하는 제도를 바꿔 대상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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