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사이버 사령부의 정치개입 의혹 수사 축소·은폐 지시와 세월호참사 보고시간 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018년 2월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배득식 전 국군기무사령관,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이 직권남용죄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재판소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국정농단, 사법농단 관련자들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대거 기소해 하급심에서 유·무죄가 엇갈리는 가운데, 직권남용 판단에 법적 제동을 걸어 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20일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구회근) 심리로 열린 군 정치관여 재판에서, 김관진 전 장관쪽은 “직권남용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의 변호인 강훈 변호사는 “제가 맡은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도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직권남용죄는 해석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다”라고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4월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에 도착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강 변호사는 지난 14일 열린 이 전 대통령 재판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낸 바 있다. 강 변호사는 “피고인은 1심에서 직권남용 혐의는 무죄를 받았지만 항소심에선 어떤 결론이 나올지 모르는 상태다. 직무권한은 포괄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라 직권의 개념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 그러다보면, 직권남용 혐의의 적용 범위는 무한정 넓어진다. 또 공무원의 위법한 행위가 어느 수준에 이르러야 직권의 ‘남용’에 해당하는지도 알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형법에서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일반적인 직무상 권한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성립한다. 2006년 헌법재판소는 “직권의 내용과 범위가 포괄적이고 광범위해도 그것이 곧 ‘직권’ 의미 자체의 불명확성을 뜻하진 않는다. 법원은 직권남용 의미에 대한 해석기준을 확립하고 있다”며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헌재 결정 당시 권성 헌재 재판관(현 변호사)은 “직권남용과 의무의 의미가 모호하고, 정권교체 시 전임 정부 공직자를 처벌하는 데 이용될 위험성이 있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이 전 대통령 재판에서 강 변호사도 이를 예시로 들며 “13년 전엔 기각 결정이 내려졌지만 지금은 직권남용으로 기소하는 경우가 비교할 수 없이 많아져 상황이 달라졌다. 다시금 위헌 여부 판단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19일 배득식 전 사령관도 두 피고인과 비슷한 이유로 재판부에 위헌법률제정심판제청을 신청했다. 2006년 소수의견을 썼던 권 변호사가 배 전 사령관 변호인단에 속해 있다. 배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 같은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날 김 전 장관 재판부는 “직권남용 관련 여러 재판부가 심리하고 있고, 대법원에서도 직권남용 관련 법리를 논의중이다. 대법원 판결을 지켜봐야하지 않을까 싶다”는 견해를 밝혔다. 대법원은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삼성 뇌물 관련 혐의,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의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 사건을 심리 중이다.
재판부가 이들의 신청을 받아들인다면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해당 재판은 중단된다. 1심에서 이 전 대통령은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 하지만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개입 등을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전 장관은 1심에서 일부 직권남용 혐의가 인정됐고, 징역 2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기무사 부대원들의 정치 관여를 지시한 배 전 사령관도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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