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성소수자 군인 색출사건의 피해 상황을 알리고 대법원 무죄 판결을 촉구하는 내용의 10만 탄원 운동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 소장의 왼쪽에는 증언을 하기 위해 나 피해 군인이 가림막 뒤에 앉아있다.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제 휴대폰에 적혀있는 안중근 열사의 말씀입니다. 수사관이 다른 수사관에게 그 문구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 이딴 것들도 저런 말을 쓰냐.’ 제 세상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성범죄자가, 문란한 성도착증 환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24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 기자회견장에 나온 성소수자 군인 ㄱ씨는 ‘육군 성소수자 색출사건’ 수사를 받던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어 ㄱ씨는 호소했다. “저는 성 범죄가 아닌 평범한 대한민국 군인이자 나라를 지키는 군인입니다” ㄱ씨는 지난 2017년 육군 중앙수사단이 군대 내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해 군형법 92조6항 위반으로 형사처벌하도록 지시한 ‘육군 성소수자 색출사건’의 피해 당사자다. 당시 사건으로 23명의 군인이 입건됐고 그중 9명의 군인이 재판에 넘겨졌으며 그 가운데 4명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ㄱ씨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길 바라는 4명의 군인 가운데 한명이다.
이날 군인권센터(이하 센터)는 기자회견을 열고 “육군 성소수자 색출사건으로 색출된 군인들은 현재까지 생활고와 인사상 불이익,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들이 군인으로서 국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대법원이 조속히 무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말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육군 성소수자 색출사건으로 입건된 23명은 모두 합의 하에 사적인 공간에서 성관계를 가졌지만, 상대가 동성이라는 이유로 수사 받았다. 현재까지 진급 누락, 보직 차별, 상시적 아우팅 위협, 생활고,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에 이성애자 군인과 동성애자 군인은 따로 없다”며 “대법원이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센터는 성소수자 군인을 형사처벌할 근거가 되는 군형법 92조6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려줄 것도 요구했다. 군형법 92조6항은 군형법 추행죄로 군대 내에서 이뤄진 동성 군인 간의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이다. 임 소장은 이에 대해 “피해 군인 중 11명이 이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으나 헌법재판소는 움직이질 않는다”며 “지난 2년 간 이들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지만, 이들이 마음 놓고 억울함을 호소할 곳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이 범죄는 공소장을 보면 피해자가 없다. 서로가 서로를 추행했다고 나온다. 모두를 가해자로 만드는 이상한 법 조항이다”고 덧붙였다.
피해 군인들도 생활고와 인사상 불이익 등에 시달리는 현실을 증언했다. ㄱ씨는 “하루아침에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자랑스러운 군 생활이 엉망진창이 됐다”며 “피해를 당한 이들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보직 차별과 진급 누락을 겪은 이도 있고 강제휴직을 당한 사람도 봤다”고 말했다. “기소를 당했다는 이유로 급여가 반 토막 났다. 집에는 잘 지내고 있다고 얘기해, 적금을 깨고 대출을 받으며 생활비를 보내드렸는데 모아놓은 돈마저 떨어져간다” “연장복무 탈락과 장기복무 탈락 그리고 진급 탈락. 군인으로서 무언가를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평생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삶으로 바뀌었다” 군인권센터는 다른 피해 군인들의 증언도 공개했다.
이에 센터는 피해 군인들과 함께 대법원에 계류 중인 4개의 사건에 대한 무죄 선고를 촉구하며 ‘10만인 탄원운동’을 시작한다. 센터는 “피해자들이 2년간의 침묵을 깨고 용기 있게 나섰다. 물러설 수 곳 없는 피해자들의 호소에 시민들이 화답할 차례”라며 10만인 탄원운동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다.
글·사진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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