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전자는 이제 한국만의 기업이 아니다. 초국적 기업 삼성전자는 세계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삼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특히 삼성전자의 주요 생산기지로 떠오른 아시아 지역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현실은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한겨레>가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3개국 9개 도시를 찾았다. 2만여㎞, 지구 반 바퀴 거리를 누비며 129명의 삼성전자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설문 조사했다. 국제 노동단체들이 삼성전자의 노동 조건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한 적은 있지만, 언론사 가운데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시도다. 10명의 노동자를 심층 인터뷰했고, 20여명의 국제 경영·노동 전문가를 만났다. 70일에 걸친 글로벌 삼성 추적기는 우리가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외면하려 했던 불편한 진실을 들춘다.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당장 고통스러울지 모르나 글로벌 기업으로서 삼성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판단한다. 5차례로 나눠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전자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다.
“‘결사의 자유’는 더는 노동자를 위한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경쟁의 자유, 분열의 자유로 변질하였다. (중략)‘결사의 자유’를 인정하게 되면 베트남 사회에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에서 대외협력 업무를 총괄했던 ㄱ 상무가 2016년 베트남 국회 사회문제 위원회에서 한 발언의 일부다. ㄱ 상무는 베트남 공산당 주최 포럼, 베트남 국회 워크숍 등에서 수차례 베트남 정부의 국제노동기구(ILO·아이엘오) 핵심 협약 비준을 반대하고, “서구의 질서를 따라 결사의 자유를 보장해 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베트남 사회에 혼란이 야기될 것”이란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한겨레>는 ㄱ 상무가 베트남 국회 등에서 발표한 ‘티피피(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후 베트남 노동 기준 및 노동조합법 개정에 대한 정책적 제언’ 등의 공식 문건을 입수했다. 삼성은 베트남이 미국을 비롯한 12개 나라와 함께 티피피 협정을 맺고 그 실행 조건 격으로 국제노동기구 기본조약 추가 비준을 논의하고 있던 2015~2016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를 방해하는 논리를 전파했다. 삼성이 특별히 문제 삼았던 것은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호’ 그리고 ‘단체교섭권’이었다. ㄱ 상무는 발표문에서 “8대 아이엘오 핵심 협약은 실행 여부와는 별개로 모두 베트남 노동법에 사실상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은 복수노조 허용으로 공산당 주도 베트남노동총연맹(VGCL)이 약해질 경우 “풀뿌리 조직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쓸모없는 고위급 노조가 비효율적 경쟁에 몰두해 사회 혼란이 오면 베트남이 캄보디아나 타이(태국)로 전락하는 악몽이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노동자들이 노동환경 개선과 노동자 권익 보호를 노동조합에 적극적으로 요구할 것”이고 이는 곧 삼성의 고강도 초과근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ㄱ 상무 발표문은 “초과근무의 장점”을 강조하는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고용주는 사업 및 생산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고 직원들은 추가 임금을 벌어들일 수 있다. (…) 하이테크 산업에서 근무시간에 관한 경직성이 높아지면 곧 기업 이전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고용 인구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는다.”
당시 상황에 대해 베트남의 한 국제노동기구 관계자는 “삼성이 ㄱ 상무 발표문을 베트남 국회의원은 물론 노동부 관계자 등 정책 결정권자 수백명에게 우편으로 개별 발송했었다”며 “당시 미국 대사관에서 삼성의 행태에 기가 막혀 했다”고 말했다. 김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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