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긴급조치 제1호·4호 위반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고 추영현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2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재판장 김선희)는 고 추영현씨와 추씨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추씨 등에게 4억5천여만원을 지급하라”고 13일 판결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수사기관이 행한 불법 행위의 반인권적 특수성과 그 불법의 중대함, 선고형의 경중, 추씨 가족이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점, 공안사건 전과자 집안으로 낙인찍혀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던 점 등을 종합해 손해배상금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고 추영현씨는 1974년 5월 일간스포츠 기자로 일하던 중 박정희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영장 없이 연행됐다. 당시 검찰은 추씨가 지인과의 모임 자리에서 “우리나라 현실은 돈 있는 사람에게는 낙원이지만 일반 대중의 생활이 말이 아니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대중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민청학련 사건은 정부에서 조작했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긴급조치 1·4호와 반공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이듬해 법원에서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2년이 확정됐다. 추씨는 4년3개월 옥살이하다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추씨는 재심을 청구했다. 2010년 대법원이 긴급조치 1호가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린 뒤 2011년 2월 서울고법 형사11부(재판장 강형주)는 추씨에 적용된 모든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요시찰 대상이었던 권아무개씨에게 ‘추씨에 대한 공작에 협조해달라’고 제안했고 권씨는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추씨의 발언은 권씨를 통해 경찰에 전달됐다. 2013년 긴급조치 4호도 위헌·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추씨는 국가를 상대로 모두 17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추씨의 손해배상 소송을 심리한 재판부는 대통령의 긴급조치 1·4호는 위헌, 무효이지만, 대법원 판례에 따라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로서” 대통령은 국민에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법적 의무를 지진 않는다고 판단했다. 긴급조치에 따른 검찰 수사나, 법원의 재판행위 또한 공무원의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당시 경찰과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구타 등 위법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해 손해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재판부는 추씨가 구속영장이 발부된 날 외부와 연락을 차단당한 점, 수사과정에서 목검 등으로 구타 당하는 등 가혹행위를 받은 점 등을 종합해 “수사기관의 위법행위와 당시 법원이 추씨에 내린 유죄 판결 사이 인과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추씨는 경향신문, 서울신문, 한국일보 등에서 편집기자로 일했다. 1974년 일간스포츠 차장으로 일하다 긴급조치 1·4호 위반 등 혐의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뒤 번역가로 활동했다. 추씨는 13일 법원 판결이 나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21일 세상을 떠났다. 추씨 가족은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