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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3기 총장 등장에 검찰 ‘기수문화’ 균열 가속화?

등록 2019-06-29 13:16수정 2019-06-29 13:45

[토요판] 뉴스분석 왜

문무일보다 5기수 낮은 윤석열
고검장·지검장급 선배·동기 30명
3명 사의 표명…줄사퇴 아직 없어
“연수원 21~23기 상당수 남을 듯”

몇 년 전부터 기수문화 균열 조짐
13~17기도 부장검사로 재직 중
전관예우 금지, 변호사 시장 불황에
선뜻 옷 벗고 나가기 쉽지 않아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2017년 5월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검 차장검사 이임식에 참석해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2017년 5월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검 차장검사 이임식에 참석해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차기 검찰총장에 지명했다. 통상 한 두 기수 아래를 후임으로 지명하던 관행에 비춰 파격 인사다. 검찰에는 전통적으로 동기 또는 후배가 검찰총장에 지명되면 동반 사퇴하는 관행이 있었다. 인사를 하거나 내부서열을 정할 때 기수를 중시하는 검찰 특유의 ‘기수문화’ 때문이다. 총장 후보자의 연수원 기수가 현재 18기(문무일 검찰총장)에서 23기로 5기수나 내려가면서, 총장 후보자의 연수원 선배 또는 동기인 18기와 23기 사이 검사장급·고검장급 검사만 30명에 이른다. 이번에도 ‘동반사퇴’ 관행이 재현될까. 검찰 안팎에서는 윤 후보자 지명을 계기로 검찰의 기수문화 균열이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동기들은 대부분 남을 듯

윤 후보자 지명 다음 날인 18일 송인택(21기) 울산지검장이 바로 사의를 표명했다.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다음날인 19일 줄사표로 인한 동요를 차단하려는 듯 “선배 검사들이 모두 나가라는 의미는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다음 날인 20일 봉욱(19기) 대검차장이 또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25일에는 김호철(20기) 대구고검장의 사표가 이어졌다. 하지만 사표 행렬은 여기서 그친 상태다. 지금까지 30명 가운데 사의를 표명한 사람은 3명이다.

봉욱 전 대검차장 사표로 연수원 19기는 이제 2명 남았다. 이중 지난 4월 국제검사협회장에 당선돼 오는 9월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황철규 부산고검장은 사표를 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국제검사협회장의 회장 임기 조건이 ‘현직 검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연수원 20기는 3명(고검장), 21기는 5명(고검장 1명, 검사장 4명), 22기는 8명(검사장), 23기는 9명(검사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연수원 21~22기는 일부 남고, 23기는 전부 남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검사장급 이상 인사는 윤 후보자 인사청문회 이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검장을 1명 배출한 연수원 21기와 다음 인사에서 처음 고검장 승진 대상이 되는 기수인 22기는 고검장 승진을 못 할 경우 일부 검사가 사표를 낼 가능성이 크다. 윤 후보자 동기인 연수원 23기 검사장들은 아직 고검장 승진도 내다볼 수 있는 ‘검사장 2년 차’인 만큼 당장 나가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결과적으로 동기 또는 후배가 검찰총장이 되면 사표를 내던 문화가, 기수가 낮은 총장 후보자 지명과 함께 깨질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이는 이미 윤 후보자가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됐을 때부터 예상됐던 일이기도 하다. 2017년 5월22일, 첫 출근을 하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오전 8시 50분께 청사 1층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 지검장이 관용차에서 내리자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가 허리 숙여 인사 하고 악수를 했다. 노 1차장검사는 사법연수원 21기로 윤 지검장(23기)보다 연수원 2년 선배다. 2010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노 1차장검사는 중수1과장(통상 중수1과장이 중수2과장보다 연수원 기수가 높음), 윤 지검장은 중수2과장으로 근무했다. 이 장면은 당시 기수문화를 깬 상징적 장면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윤 후보자가 이번에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것 자체도 ‘기수문화 파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런 기수문화 균열은 일정 부분 윤 후보자 개인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다. 9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윤 후보자는 연수원 23기 중 9살 어린 동기가 있을 정도로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윤 후보자보다 연수원 기수가 어지간히 높은 선배들도 학번이 낮을 경우 ‘선배님’, ‘윤 선배’로 부르며 그를 일찌감치 선배로 대우했다. 특수부 검사들이 결혼이 늦은(52살 결혼) 그를 예전부터 중의적 의미에서 ‘총장’(총각대장+검찰총장)으로 부른 데는 그의 나이도 한몫했다. 윤 후보자가 검찰총장이 되더라도 선배나 동기들이 기수 탓에 어색해하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번 총장 후보자의 특수성이 있다고 해도, 일단 기수문화에 균열이 가면 앞으로 ‘대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시각이다.

검찰이 기수문화 중시하는 이유

검찰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검사장·고검장 승진 인사, 검찰총장 임명 등에서 동기 또는 후배한테 밀리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옷을 벗는 검사들의 ‘동반사퇴’ 관행을 의아하게 보는 시선이 많다. 검찰에는 왜 이런 관행이 자리 잡힌 걸까.

우선, 사법연수원 입소 이후 줄곧 연수원 기수로 선·후배 질서가 잡힌 상황에서 갑자기 후배한테 지휘를 받아야 하는 일이 불편하다고 한다. 위에서 선배를 지휘하는 후배의 입장도 편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흔히 사퇴의 변으로 ‘후배의 부담을 덜어주려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데, 여기에는 이런 서로의 불편함이 자리 잡고 있다. 둘째, 검사는 검찰을 나가더라도 변호사로 개업하거나 로펌에 취직해 돈을 벌 수 있다. 정치권에 영입되기도 한다. 사표를 내면 할 일이 막막해지는 대부분 직종보다 선택지가 넓다. 셋째, 동기 또는 바로 밑의 연수원 기수 후배가 검찰 고위직에 있을 때 변호사를 하면 소위 ‘끗발’이 가장 좋다. 전관예우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솔직히 돈 벌 생각하면 동기가 검찰총장 할 때 나가는 게 가장 좋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전체 조직 운영에 장점으로 작용하는 요소들도 꽤 있다. 인사권자 입장에서는 기수 순서대로 인사를 하면 기수별 경쟁을 부추겨 조직을 쉽게 장악할 수 있다. 예컨대, 연수원 27기 중 전체 검사장 승진 몫이 10명일 경우 첫인사에서 2~3명만 검사장을 달아주면, 남은 검사장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른 27기들은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다. 2017년 7월 연수원 23기 9명을 한꺼번에 검사장으로 승진시킨 인사에 대해 “가장 솜씨 없고 아마추어적인 인사”(검찰 관계자)라는 평이 나왔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전 검찰 인사에서는 통상 한 기수에서 검사장 승진 인원이 최대 10명 내외로 한정돼 있었다. 검사장 승진 가능성이 한순간에 없어진 연수원 23기 검사들은 당시 대거 사표를 냈다.

기수문화는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장치로 작동하기도 한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은 업무 특성상 검찰총장이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명령을 하달하면 전국 검사가 거기에 맞춰 통일된 기준으로 사건 처리를 한다. 연수원 기수가 높은 선배가 위에서 업무 지시를 하고 이를 따르는 구조는 효율적이고 편리하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측면 자동문 출입구를 통해 한 남자가 1층 로비로 들어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측면 자동문 출입구를 통해 한 남자가 1층 로비로 들어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능력 중심으로 재편될까

윤 후보자 지명으로 기수문화 균열이 드러나고 있지만, 사실 내부적으로는 수년 전부터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2013년에는 일부 후배 기수가 선배를 제치고 선순위부장(주요 부장)에 배치됐고, 2016년에는 결재 업무를 맡던 부장검사 2명이 같은 지검에서 직접 수사업무를 하는 부부장검사로 강등 발령 나기도 했다.

기존의 검찰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정년퇴직하는 검사들도 늘고 있다. 2017년 6월에는 연수원 10기인 부장검사가, 올해 1월에는 연수원 14기인 두 명의 부장검사가 30년 이상 재직하다 고검에서 정년을 맞아 검찰을 떠났다. 지난 3월 현재 각 고검에는 연수원 13기 4명, 14기 1명, 15기 3명, 16기 1명, 17기 2명이 여전히 부장검사로 근무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 검찰에 재직하는 가장 높은 연수원 기수는 18기(문무일 검찰총장)가 아니라 13기다. 연수원 13기 검찰총장(한상대)은 8년 전인 2011년에 나왔다. 눈에 잘 띄는 고검장급·검사장급의 동반사퇴 관행 뒤에 ‘조용히’ 자리를 지킨 검사들이 있었던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한정된 검찰 내 보직, 전관예우 금지 관련 법들의 강화, 변호사 업계 불황 등으로 여러 해 누적된 인사 적체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변호사 숫자 증가로 변호사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전관예우를 억제하려는 사회적 압력도 높아진 상황에서 옛날처럼 선뜻 옷을 벗고 나가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현행 변호사법(31조)은 검사 등이 변호사로 개업했을 때 퇴직 전 1년 동안 근무한 퇴임지 관할에서는 1년 동안 사건을 수임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고, 공직자윤리법(17조)은 연간 매출 100억원 이상인 로펌·회계법인·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의 경우 퇴직 뒤 3년이 지나야만 검사장 이상 검찰 간부를 영입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승진에서 누락한 고참 검사들이 남으면서 이들을 활용하려 지검과 고검에 중요경제범죄조사단(중경단)을 만들었다. 중경단도 이들 고참 검사들을 수용하는 데 한계가 올 텐데, 그러면 고참 검사들이 일선 부장검사 밑으로 배치돼 일하는 날도 올 것이다”고 말했다.

검찰의 오랜 기수문화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윤 후보자의 지명을 계기로 새로운 조직문화가 뿌리내릴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그동안 검찰 기수문화의 폐단으로 ‘때가 되면 우리 기수 승진 차례’라는 이른바 패거리 문화, 연수원 때부터 기수를 기준으로 짜인 관계에서 비롯된 불명확한 공·사 구분, 전관예우 관행 등이 지적돼왔다.

“기수대로 인사하는 건 조직 운영의 한 방편에 불과하다. 그런데 대부분 검사는 이를 불변의 진리로 여긴다. 기수에 얽매여 인재를 널리 구할 생각을 안 하면 폭이 좁아진다. 또 기수별로 위, 아래로 뭉치면 패거리가 되고 공·사 구분이 안 된다. 검사장 회의할 때도 직제 순서가 아니라 기수 순서대로 좌석 배치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공무원 의전 서열은 연수원 기수가 아니라 직제 순서다. 이제는 제발 공과 사를 구분했으면 좋겠다.” (대검 정책 ·기획 업무를 담당했던 한 검사)

“현재 연수원 31기 중 부장검사가 나왔는데, 선배인 연수원 30기 중에는 부장이 아닌 경우도 있다. 이미 기수 중심 문화가 바뀌고 있다. 나이나 연수원 기수가 아니라 직위에 맞춰 일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검찰 자체도 좀 더 유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서울의 한 부장검사)

“앞으로 검찰의 기수문화는 점점 깨질 거다. 기수문화에서 업무능력 중심으로 인사시스템이 재편될 것이다. 그렇게 돼야 한다.” (서울의 한 차장급 검사)

어느 조직마다 나름의 관행과 전통이 있다. 그 관행들이 모두 없어져야 하는 폐단은 아니다. 다만 비뚤어진 기수문화가 불명확한 공·사 구분으로 이어져 수사를 왜곡시키거나, 능력 위주가 아닌 기수 보신주의에 기반을 둔 인사로 검찰 역량이 떨어진다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온다. 다만 검찰 안팎에서는 ‘기수 파괴 인사’에 한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많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보된 인사시스템이다. 객관적인 복무평정 이외에 정치권력과의 친소 관계, 정권 관련 사건의 처리 방향 등 다른 요소가 인사에 개입된다는 인식이 검사들 사이에서 퍼지면 인사의 신뢰성이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기수문화 파괴의 명분도 함께 훼손될 것이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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