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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이스크림 광고에 왜 아이 입술을 클로즈업 하나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9-07-01 17:49수정 2022-08-19 10:42

[더(THE) 친절한 기자들]

배스킨라빈스 사태로 본 아동 성 상품화 광고
딱붙는 옷 입고 허리 꺾어 몸의 곡선 강조
전문가들 ”한국의 아동 성 상품화 심각”
‘정부 가이드라인 만들라’ 청와대 국민청원도
여아 성 상품화 논란에 휩싸인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광고 화면 갈무리.
여아 성 상품화 논란에 휩싸인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광고 화면 갈무리.

최근 아이스크림 업체 배스킨라빈스가 ‘여아 성 상품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이 업체는 지난 28일 새 아이스크림 광고를 선보였는데요. 이 영상에는 진한 화장을 하고 민소매를 입은 소녀가 등장합니다. 카메라는 아이스크림 숟가락을 무는 소녀의 입술을 클로즈업하고 “이런 여름은 처음이야”라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옵니다. 광고는 아이스크림을 살짝 묻힌 소녀의 입술을 보여주거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순간 긴 머리가 휘날리며 목덜미가 드러난 소녀의 옆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광고가 공개되자 누리꾼들은 “아동 모델을 성 상품화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업체는 광고를 공개한 지 하루 만에 영상을 내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배스킨라빈스는 사과문을 통해 “광고는 일반적인 어린이 모델 수준의 메이크업을 했으며 아동복 브랜드 의상을 착용한 상태로 이뤄졌다”며 아동 성 상품화 논란에 대한 해명도 내놨죠. 아동복을 입었다면 전혀 문제가 없는 걸까요? 한겨레 <더(THE) 친절한 기자들>이 한국사회의 아동 성 상품화 문제를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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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아에 하이힐 신기고 뒤태 강조

아동, 특히 여자아이를 성 상품화한 광고는 배스킨라빈스가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월엔 한 유명 아동 쇼핑몰에서 여아가 입는 옷에 ‘섹시 토끼의 오후’ 등의 이름을 달았다가 비판을 받고, 해당 상품명을 내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쇼핑몰은 여전히 ‘인형 같은 그녀랑 오늘부터 연애할까?’ ‘갖고 싶은 그녀’ 등의 이름이 달린 제품을 ‘베스트셀러’ 상품으로 판매 중입니다.

또 다른 광고를 볼까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여자아이를 성인 여성으로 취급하는 자극적인 광고 사진들이 가득합니다. 아장아장 걸을 나이인 여아에게 하이힐을 신기고, 귀보다 더 큰 귀걸이를 달거나,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타이트한 옷을 입혀 놨습니다. 여아가 입는 속옷이나 수영복 판매 사진이 가장 심각합니다. 허리에 트임이 있는 원피스나 매우 작아 보이는 비키니를 입은 여아 모델은 한쪽 다리를 세우고 허리를 꺾어 몸의 곡선을 강조하거나, 뒤로 돌아 얼굴만 살짝 돌려 뒤태를 강조하는 포즈를 취하기도 합니다.

‘상대를 전인격적 존재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환원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부각된 성적 측면을 특정 상품의 마케팅을 위해 사용하고 이득 추구하는 것’ 전문가들은 이런 행위가 성 상품화라고 설명하며, 한국사회에서 여아를 중심으로 성 상품화가 심각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는 “같은 모델을 외국에서 기용한 광고를 보면 진한 화장을 하거나 노골적으로 시선 표현을 강조한 모습이 별로 없었다. 광고가 국내에서 제작될 때 동일 모델임에도 활용 방식이 확연하게 차이 난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성 상품화를 판단할 때 이미지가 어떤 스토리로 만들어졌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김 평론가는 “배스킨라빈스는 아동복을 입었다고 해명하지만, 아동복이 아니라 아기 옷을 입고도 어떤 이미지와 어떤 스토리로 구성됐는지가 핵심이다”라며 “어린이가 아이스크림 광고를 찍었는데 화장이 진해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 영상에서 어린이 모델을 바라보는 시선이 문제다”고 설명합니다.

논란이 된 배스킨라빈스 광고 모델 ‘엘라 그로스’가 찍은 타미힐피거와 갭의 광고. 정제된 포즈를 취하지 않고 뛰고 노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논란이 된 배스킨라빈스 광고 모델 ‘엘라 그로스’가 찍은 타미힐피거와 갭의 광고. 정제된 포즈를 취하지 않고 뛰고 노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지적대로 배스킨라빈스 모델 엘라 그로스(11)가 촬영한 해외 의류 브랜드 화보는 달랐습니다. ‘타미힐피거’ 화보에서 엘라 그로스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엘라 그로스 또한 친구와 웃으며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입니다. ‘갭’ 화보에서도 비슷했습니다. 엘라 그로스는 청재킷,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습니다. 편한 자세로 장난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 화장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비단 엘라 그로스가 찍은 화보뿐 아니라 망고 키즈, 자라 키즈 등 해외의 다른 유명 아동 브랜드 화보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한 화장도, 몸매를 강조한 포즈도 없었습니다. 김 평론가는 “이런 여아의 성 상품화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심하게 발생한다. 여성 아동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 나라는 그렇지 않다.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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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 상품화 막을 가이드라인 필요

일반 시민들도 여아의 성 상품화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난 2월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동 속옷 모델 관련하여 처벌 규정과 촬영 가이드라인이 필요합니다’라는 청원글이 올라와 4만명의 동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청원자는 “아동 속옷 사이트를 보다가 너무 황당해 글을 쓴다. 아동 속옷 상의를 홍보하는데 왜 아이가 의자에 앉아 다리를 벌리고, 그걸 손으로 가린 사진을 홍보 상세컷에 넣어야 하냐“며 “특히 아동의 상품 홍보에 대한 국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처벌 규정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외국 기업들은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보이게 하는 화보를 찍지 않는 것을 넘어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14일 유튜브는 “앞으로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은 만 14세 미만 아동의 라이브 방송을 금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어린이를 성적 대상화 하는 콘텐츠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2월 유튜브가 어린이 보호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AT&T·네슬레·디즈니 등 글로벌 기업들이 구글에서 광고를 철회한 적도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아동 모델의 성적인 표현은 유엔 아동협약에 근거해 철저히 금지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34조는 ‘당사국은 모든 형태의 성적 착취와 성적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할 의무를 지며 아동을 외설적인 공연 및 자료에 착취적으로 이용하는 행위 등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 협약의 비준 국가입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과잉 성애화된 여아의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전파하는 것을 규제하는 정부 차원의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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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상품화는 여아의 미래를 제한하는 일”

일각에선 ‘아동성범죄도 아닌데 예민하게 군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국민청원에 글을 올린 작성자는 “이런 사소한 사진 하나가 문제가 된다. 0.1초도 안 되게 지나간 문구와 이미지들이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쌓이고 나중에 잘못된 성인식으로 자리 잡힐 수 있다“고 반박합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같습니다. 광고 속에는 여성 아동을 상품화한 광고가 쏟아집니다. 비슷한 이미지에 반복 노출은 신체 제약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윤 교수는 “여아를 성인 여성처럼 꾸며놓으면 여아가 활동할 수 있는 반경, 놀이의 종류들 조차 제한이 된다. 미니스커트, 마스카라, 긴 머리를 하고 체육 활동을 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 활동반경이 달라지고 신체적 제한도 달라진다”며 “이런 통제는 여아의 현재 활동 제한을 넘어 앞으로 나는 어떤 직업을 갖고 싶고 어떤 꿈을 꿀 수 있는가의 제한으로까지 이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여아의 성 상품화는 그 아이들의 미래까지 제한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기업과 시민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성 상품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늘 ‘내가 보기엔 별문제 없는데 모델이 예뻐서 그런다’ ‘여성들이 질투하는 것이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번 논란에도 마찬가지였다”며 “문제 제기 자체에 모멸감과 수치심을 주는 방식으로 막아버리는데, 그러면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질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자 박유신 초등학교 교사 역시 “포털 사이트 댓글 등을 보면 이 광고에서 아무런 문제도 발견 못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런 점은 우리 사회 안에서도 비판적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이 현저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성적 대상화는 일종의 시각적 기호이기 때문에 사용자가 시각적 코드의 전통에 대해 알지 못하면 그 함의를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키워야 하는 이유다”고 말했습니다.

문제 해결은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이번에 문제 제기가 잘 되었다고 본다. 대기업의 광고가 성 상품화로 논란이 돼 내려갔다는 건 하나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시도를 할 때 주춤하고 자체 검열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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