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 변호사(왼쪽)와 김종보 변호사(오른쪽)가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갑작스레 재판에 넘겨졌을 때 대응법 등을 담은 <쫄지 마 형사절차-재판편>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판사가 표정이 안 좋은데, 전관이라도 써야 하는 걸까요?” (피고인)
“전관 쓰셔야 승소합니다. 5천만 내시면…” (브로커)
판사의 미세한 표정 변화에도 재판을 받는 피고인 마음은 철렁인다. 검사와 판사가 법정에서 암호 같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피고인은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다 영문도 모른 채 퇴장한다. 온갖 재판 절차가 두렵고 불편하게 느껴질 때쯤 ‘전관이라도 써볼 테냐’며 브로커가 손짓한다.
살다 보면 우리는 예상치 못하게 형사 사건의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견을 올렸다 명예훼손으로 재판을 받거나, 자신의 자녀를 때린 학생을 혼내다 도리어 모욕죄로 고소를 당해 법정에 선 피고인도 있다.
형사사건에 휘말려 고심하는 피고인들을 위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 9명이 뭉쳤다. <쫄지 마 형사절차―재판편>을 쓴 조수진 변호사와 김종보 변호사를 지난 24일 서울 서초 민변 사무실에서 만났다.
“의뢰인들에게 백번, 천번 했던 얘기들을 담았어요. 법원 홈페이지에 ‘나의 사건검색’만 쳐 봐도 재판진행 상황을 알 수 있는데, 그걸 몰라 사무장한테 속는 경우도 다반사예요.” 출판팀장 노릇을 한 조 변호사가 밝힌 책 출간 이유다.
<쫄지 마 형사절차―재판편>은 2009년 민변이 펴낸 <쫄지 마 형사절차―수사편>을 잇는 10년 만의 후속작이다.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나갔다 무더기로 체포된 시민들을 위해 <수사편>을 냈는데, 그때 시민들에게 공언했던 <재판편> 출간 약속을 10년 만에 지켰다.
9명의 법조인이 자신 있는 분야를 나눠 쓰다 보니 ‘전문가’들의 양보할 수 없는 신경전도 있었다. 선배 변호사 4명이 감수를 보고, 지적 사항을 고치는 과정에서 법률 용어 하나를 더하고 빼는 문제를 두고 토론이 붙기도 했다.
<재판편>은 형사재판 총론부터 실전 재판 대응까지 모두 5부로 이뤄졌다. 이 가운데 2부 ‘1심이 가장 중요하다’의 분량이 가장 많다. ‘증거 싸움’인 형사재판에서 그 첫 단추랄 수 있는 증거신청 절차, 즉 증거채택 동의·부동의를 확인하는 ‘증거인부’ 절차가 가장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조 변호사는 “피고인은 검찰이 낸 불리한 증거에 부동의하고 증인을 불러 진위를 다툴 수 있는데, 판사가 ‘증거 동의하느냐’고 물으면 잘 모른 채 ‘네’라고 답해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의사가 굉장히 중요한 수술을 할지 묻는데 안 한다고 답해버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김종보 변호사는 “재판 준비 과정부터 판결 이후까지 ‘피고인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살폈다. 재판 절차는 모두 헌법에서 파생된 내용이다. 사실 학교에서 다들 배웠어야 할 내용”이라는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재판편>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국가보안법 위반, 명예훼손죄 등의 대처방안도 담았다. 김 변호사는 “한국의 역사는 집회의 역사였다. 3·1운동도, 6·10항쟁도 집회에서 시작했다. 교통 체증을 일으키고 주변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만으로 공권력이 집회의 자유를 봉쇄하는 것은 문제”라며 “세가지 항목 ‘대응법’을 알린 것은 정부의 공권력 남용을 제어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국민참여재판 등도 비중 있게 다뤘다. 딱딱한 법이 저마다의 속사정을 헤아리지 못할 때, 일반 시민의 판단은 더 현명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조 변호사가 소개한 ‘장발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아내의 수술을 앞두고 실명 위기까지 겹친 피고인이 대형 마트에 들어가 충동적으로 담배 몇 보루를 훔친 일이 있었다. 전과가 많은 피고인이라 일반 재판에선 ‘상습절도’ 혐의로 높은 형을 받을 수 있었다. 배심원들은 딱한 사정을 듣고 일반 절도 혐의를 적용해 더 낮은 형을 살게 해 주었다”고 했다.
변호사가 변호사 없이도 시민들이 재판을 잘 받을 수 있는 법을 담은 책을 낸 이유는 뭘까. 두 변호사는 “남용 위험이 있는 국가 형벌권에 대해 시민들이 스스로를 변론하기 위한 지침이 되길 기대”해서라고 입을 모았다.
“법조인들은 때때로 정보를 독점하는 형태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 형사절차는 신체를 구금할 수 있는 위험한 절차인 만큼 기본 정보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10년 만에 약속을 지키게 돼서인지 조 변호사의 웃음이 유난히 밝았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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