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들이 현 정부의 ‘정보기관’ 개혁이 미흡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정보경찰 개혁에 대한 청와대의 의지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참여연대는 3일 오후 2시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사무실 2층에서 ‘정보기관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를 열고 국가정보원, 경찰, 국군안보지원사령부 등 정보기관의 현재 상황을 진단한 뒤 이후 개혁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광수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은 “권력 기관 적폐 청산이 진행 중이지만, 제도 개혁은 법제화 단계에 멈춰서 있다”며 “(정보기관 개혁과 관련한) 시민사회 전체의 의견을 나누기 위해 이번 토론회를 기획했다”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최근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선거 개입과 민간인 사찰을 한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정보경찰이 주요 쟁점으로 등장했다. 입법이 중요한 국정원 개혁과 달리 정보경찰의 문제는 대통령령 등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만, 청와대의 개혁 의지가 미흡하다는 주장이었다. 2017년 6월 출범해 1년 동안 활동한 경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양홍석 변호사는 “경찰개혁위 활동을 할 때만 해도 경찰들이 정보국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졌다. 하지만 기무사가 안보지원사령부로 개혁이 아닌 개명만 하는 모습을 보고 경찰이 안심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경찰청 정보국이 개명하고 상식적 수준의 처벌 규정을 마련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꼬집었다. 양 변호사는 “대통령령 개정 정도로도 충분히 정보경찰 개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며 “정보경찰의 ‘고객’은 국민이 아니라 청와대다. 고객이 개혁 의지를 가지지 않으면 경찰청 정보국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송상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총장도 “국정원 개혁과 달리 정보경찰 개혁 문제는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청와대가 정하면 되는 문제다”라며 정부의 개혁 의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보경찰 개혁과 관련해 국회에는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경찰관 직무집행법 일부개정법률안’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경찰법 전부 개정법률안’ 등이 제출되어 있다. 관련 법에 명시된 ‘치안정보’라는 모호한 개념 탓에 정보경찰의 권한남용이 생긴다고 보고 그 의미를 분명히 해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취지의 개정안이다. 하지만 이런 개정안은 그동안 불법의 소지가 많았던 경찰의 정보활동을 되레 ‘합법화’해주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호영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총무위원장은 “여당 및 정부와 청와대는 (정보경찰 개혁 법안에서) ‘치안정보’ 개념을 ‘공공 안녕의 위험 예방과 대응’으로 바꾸어 (오히려) 정보경찰의 기존 활동에 합법성을 부여하려 하고 있다”며 “이는 기존 (정보경찰의) 불법적 관행에 오히려 법적 근거를 부여하는 역설적 법제화를 초래할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호영 총무위원장는 “정보경찰을 폐지하고 규범에 합당한 정보수집 업무는 타부서로 이관해야 하며 (각종 정책 결정 참고를 위해 생산한 뒤 청와대에 보고하는) 정책정보 수집을 폐지하고 이같은 정보가 필요하다면 행정부 내 해당 업무가 수행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또 “인사검증이나 장 차관에 대한 복무점검 역시 정보경찰이 수행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법 개정을 통해 정보경찰의 역할을 합법화해주는 것이 아니라 경찰청 정보국의 폐지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역시 “(현행 법령에 경찰 업무로 규정되어 있는) 치안정보의 개념이 너무 포괄적이어서 범죄수사 또는 범죄예방과 밀접한 정보 외에도 각종 단체나 개인들의 활동, 주장을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근거로 악용되고 있다”며 “경찰법과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규정되어 있는 경찰의 업무 중 치안정보의 수집과 작성, 배포규정을 삭제하고 치안정보수집 담당 조직을 폐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이태호 위원장은 “경찰이 북한이탈주민관리 및 경호안전대책 업무를 맡고 있는데 경찰이 신변보호 업무 외 주민 관리 업무를 수행할 근거는 없다”며 “북한이탈주민 업무는 통일부 등으로 이관하고 법적 근거없이 경찰 보안부서가 맡고 있는 북한 실상에 대한 홍보, 북한에 대한 정보수집 및 분석 등의 업무를 중단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경찰청 정보국뿐 아니라 보안국의 개혁도 필요하다는 의미다.
정보기관 개혁이 국가 정보 업무 전반이 아닌 개별 기관의 개혁 논의로 한정돼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송상교 사무총장은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개혁논의가 개별 조직 단위로 이뤄지면서 시민을 억압하고 정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던 정보기관의 활동에 대한 전체적인 검토는 이뤄지지 않았고 그 업무를 어떻게 줄일지 등도 전혀 이야기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또 “정보기관 전반에 대한 통제 방안 마련도 필요하다”며 “한국의 정보기관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의한 통제만 받고 있으며 정보위원회의 통제도 매우 헐겁고 유명무실하다. 정보기관 전반에 대하여 입법부 및 행정기관에 의한 체계적 통제 방안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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