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을 지연시킨 것이 ‘국익을 위해서였다’는 취지의 글을 개인 블로그에 올렸다. 재판 독립성이 훼손된 대표적 사건을 국익을 명분삼아 정당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 부장판사는 2일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과 일본의 통상보복’이라는 제목의 1400자 분량의 글을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다. 그는 “양승태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선고를 지연하고 있던 것은 당시 박근혜 정부에서 판결 이외의 외교적·정책적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벌어 준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이는데, 지금 대표적 사법농단 적폐로 몰리면서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강 부장판사는 이어 “이제 일본은 통상적인 방법인 외교적 항의가 먹혀들지 않자 양아치 수법이나, 보복 효과는 극대화되는 반도체 핵심 부품 수출을 곤란하게 하는 통상보복 방법 카드까지 흔들고 있다”며 “어떤 판결이 틀렸다, 옳았느냐는 지금 따져도 버스가 떠난 뒤라 별무소용이다. 감정적, 민족주의 주장은 듣기에는 달콤하지만, 현실 외교관계에서는 그런 주장만으로 국익을 지킬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최근 반도체 핵심 부품의 한국 수출을 제한한 일본 정부의 통상 보복이 지난해 10월 강제징용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두고 한 평가다.
앞서 대법원은 2005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2013년 이래 지연시켜오다 5년만인 지난해 판결했다. 박근혜 정부 동안 사실상 재판이 멈춰있었던 셈이다.
강 부장판사의 이런 주장에 대해 대법원의 강제징용 재판 지연을 ‘국익’을 명분으로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 수사 결과, 양승태 대법원은 상고법원 도입 등 대법원 숙원사업을 위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청와대와의 재판거래 수단으로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5년에는 양 전 대법원장이 일본 전범기업 대리인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집무실 등에서 면담한 정황도 드러났다.
강제징용 소송 대리인단 관계자는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절차를 위반하고 재판에 개입했다”며 “(강제징용 재판거래는) 재판의 독립성이 훼손된 사건이지 국익을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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