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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휴게 시간’은 서류에만…못 쉬는 돌봄노동자들

등록 2019-07-04 16:23수정 2019-07-04 20:27

“근로기준법 개정 1년, ‘가짜 휴게시간’ 여전”
보육교사 등 “돌봄노동 특성상 휴식 어려워"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사회서비스공동사업단이 근로기준법 개정 1년을 맞아 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가짜 휴게시간 부추기는 정부대책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 김지연(27)씨가 ‘가짜 휴게시간’의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사회서비스공동사업단이 근로기준법 개정 1년을 맞아 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가짜 휴게시간 부추기는 정부대책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 김지연(27)씨가 ‘가짜 휴게시간’의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경기도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지연(27)씨는 지난해 10월부터 하루 1시간씩 ‘강제 휴게시간’을 가진다. 지난해 7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어린이집 보육교사도 하루 8시간 이상 일할 경우 근무시간 중 1시간 이상 휴게시간을 주게 되었다. 그 이후 김씨가 일하는 어린이집에는 ‘휴게시간 관리대장’이 생겼다. 보육교사들은 매일 자신의 휴게시간을 적고 서명을 해야 한다.

하지만 휴식은 서류에만 존재할 뿐이다. 현실에선 아이를 돌보는 일을 중단하고 제대로 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김씨는 “아이가 아프거나 떨어지기 싫어하면 휴게시간에도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하고, 소풍이나 현장학습 등 외부활동을 나가면 휴게시간을 지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아이를 맡긴 부모의 시선도 ‘가짜 휴게시간’을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김씨는 “휴게시간이 의무화되기 시작한 뒤부터 학부모들의 민원전화가 끊이질 않았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근처 카페에서 쉬고 있는데 학부모 민원이 들어왔어요. 어떻게 선생님이 밖에 나와서 웃으면서 떠들 수 있냐고요."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는 김씨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는 “조합원을 제외한 보육교사들은 원장 눈치를 보느라 휴게시간에 교실을 청소하거나 밀린 서류작업을 하기 바쁘다”며 “제대로 쉴 공간조차 없어 창고나 원장실에 놓인 간이침대에서 불편하게 강제휴식을 하는 보육교사가 많다”고 털어놨다.

경기도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의 휴게공간에서 보육교사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지연씨 제공
경기도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의 휴게공간에서 보육교사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지연씨 제공
특히 교사 1명이 1시간을 쉬려면, 그 시간에 다른 보육교사가 수십명의 아이들을 봐야 한다. 지난 1월 김씨는 만 3세반 12명을 돌봤다. 그가 1시간 휴게시간을 가지면 다른 보육교사는 본인 반 아이들 12명에 김씨 반 아이들까지 24명을 한 교실에서 봐야 한다. “한 교실에 24명의 아이가 들어가 있으면 다칠까 봐 걱정되고 불안해요. 다치면 제가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더구나 다른 반 교사와 사이가 좋지 않으면 휴게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을 봐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에요.” 김씨는 “대체인력’이 없으면 휴게시간은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들을 돌보는 장애인활동지원사의 경우도 쉴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대구광역시에서 장애인활동지원사를 하는 이옥춘(57)씨는 “휴게시간이 의무화되면서 임금이 줄고 퇴근 시간만 늦어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장애인활동지원사는 돌봄을 시작한 순간과 끝난 순간, 휴게시간을 일일이 단말기에 기록해야 하는데 장애인을 돌보다 보면 정확히 체크하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가령 4시간 일한 경우 한꺼번에 30분을 쉬어야 하는데, 중간에 장애인이 화장실을 가야 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이 시간을 채울 수 없다는 설명이다.

경기도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의 ‘보육교직원 휴게시간 관리대장’ 중 일부. 이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보육교사들은 매일 휴게시간을 직접 적고 서명해야 한다. 김지연씨 제공
경기도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의 ‘보육교직원 휴게시간 관리대장’ 중 일부. 이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보육교사들은 매일 휴게시간을 직접 적고 서명해야 한다. 김지연씨 제공
쉴 공간도 마땅치 않다. “장애인 집 안에 따로 쉴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닌데 4시간 일하면서 30분 쉬자고 카페에 다녀올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커피값을 주는 것도 아니고…” 이 씨는 “이게 무슨 휴게시간이냐”며 “돌봄노동의 특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제도를 이렇게 만들 수가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연주 장애인활동지원지부 대구경북지회 사무장은 “대중교통이 편리하지 않은 시골 외곽지역에서 일하는 활동지원사들의 경우 휴게시간 의무화로 퇴근 시간이 늦어져서 오히려 활동시간을 줄이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공운수노조 사회서비스 공동사업단은 4일 오전11시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근로기준법 개정 1년, 사회서비스 가짜 휴게시간 부추기는 정부대책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이 개정된 지 1년이 지났지만, 현장에서 돌봄서비스 노동자들의 휴게권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현장실태 점검 △교대인력 확충 △노동자들과 직접협의 등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서진숙 공공운수노조 사회서비스공동사업단장은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누군가 대화하고 상호작용 관계를 맺으며 육체적·정신적 노동을 하기 때문에 건강한 노동을 위해선 짧게나마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휴게시간이 필요하다”며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이 지속적이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고 일한 만큼의 노동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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