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살다 인천으로 대학을 진학한 강지은(가명·19)씨는 3평짜리 방을 구해 혼자 살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는 월세 29만원 부담이 크지만, 가구 단위로 주거급여를 주는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 때문에 주거비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인천/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가난이란 단지 ‘돈이 없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무엇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돈 걱정부터 앞선다. 이러한 속내를 주위 친구들에게도 쉽사리 드러낼 수 없다. 올해 대학생이 된 강지은(가명·19)씨 이야기다.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강씨는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 친할머니(69)와 함께 살기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라 생계·의료·주거급여 지원을 받아왔다.
지난 7일 인천광역시 대학가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강씨를 만났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이 카페엔 처음 와본다고 했다. 한잔에 5천원이 넘는 음료를 마시는 건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이다. 얼마 전엔 고열로 병원 응급실에 갔지만, 환자 본인부담금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발걸음을 돌렸다. 유독 서러움이 북받친 밤이었다. 홀로서기가 녹록지 않을 걸 알면서도 고향을 떠나 인천에 위치한 대학에 진학한 까닭은, 성폭력 피해 아동을 돕는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꿈에 한발짝 다가서기 위해서였다.
올해 대학 첫 학기 등록금은 국가 장학금과 교내 장학금을 합쳐 겨우 해결했다. 등록금 고비를 넘기니 주거비가 걱정이었다. 학교 인근 원룸촌을 뒤져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9만원(관리비 제외)짜리 월세방을 구했다. 침대에서 일어나면 곧바로 싱크대와 맞닿는, 책상 의자를 따로 놓을 공간마저 부족한 9.9㎡(약 3평) 면적의 비좁은 방이다. 원룸으로 불리지만 고시원 방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정부가 정해놓은 1인 가구 최저 주거면적 14㎡(약 4.2평)보다 작은 방이지만 한달 생활비 절반가량을 월세로 내야 한다. 강씨는 기초생활 수급자이지만 인천으로 거주지를 옮긴 이후 정부로부터 주거급여 지원은 받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기초생활 보장에 따른 지원은 개인이 아닌 ‘개별가구’ 단위로 이루어진다. 2019년 기준 개별가구 소득·재산을 합친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의 30% 이하(2인 가구 87만1958원)일 때 생계급여를, 40% 이하인 경우 의료급여를, 44% 이하여야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르면, 만 30살 미만인 미혼 자녀는 부모와 묶여 하나의 개별가구를 이룬다.
기초생활 수급 가정의 30살 미만 미혼 자녀가 학업이나 취업 등의 사유로 집을 떠나 다른 지역에 살게 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수급 가구원으로 남게 된다. 부모와 따로 살아도 별도로 주거급여를 받기 어렵단 뜻이다. 강씨의 경우 부모가 자녀를 돌볼 수 없는 특수한 사정을 인정받아 할머니와 2인 가구로 기초생활보장 지원을 받고 있다.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를 합쳐 매달 평균 80만~90만원이 두 사람의 소득이다. 여기서 주거급여로 받는 약 7만원은 할머니와 강씨가 함께 살던 광주 전셋집에 대한 지원금이다.
국토교통부가 발간한 2019년 주거급여 사업안내를 보면, 주거급여 수급 가구원이 거주하는 주택이 2개로 나뉠 경우 지원 상한선인 기준 임대료(광주 지역 2인 가구 17만8천원) 범위에서 실질 임차료를 합산한 금액 지원이 가능하다고 돼 있긴 하다. 그러나 지은씨를 비롯해 <한겨레>가 만난 주거급여 수급자들은 이러한 제도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기준 임대료 자체가 최저 주거수준의 임차료보다 낮게 설정돼 있어 수급자 가구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기엔 한계가 있다.
기초생활 수급자인 오선희(가명·49)씨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발달장애가 있는 둘째 자녀를 돌봐야 하는 사정 탓에 오씨는 일을 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4년 전 첫째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자취를 하게 됐다. 당시 오씨 3인 가구가 받는 주거급여는 1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생계급여와 둘째 아이 재활치료비를 아껴 한달에 30만원가량을 첫째 자녀의 주거비로 들일 수밖에 없었다.
강씨는 여름방학 동안 주거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로 번 돈이 ‘소득인정액’으로 잡혀 자칫 수급 자격을 박탈당할까봐 고민이 깊다. 보건복지부 설명에 따르면, 24살 이하 및 대학생 수급자가 일을 할 경우 40만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금액의 30%도 소득에서 제외해주고 있긴 하다. 100만원을 벌게 되면 40만원을 빼고 나머지 60만원의 30%인 18만원을 제외한 42만원이 소득에 반영되는 것이다. 이러한 소득으로 인해 강씨네 2인 가구가 받던 생계급여가 깎이거나 수급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이러한 까닭에 수급 가구 자녀들은 ‘소득신고가 잡히지 않는 알바’를 찾는 경우가 많다.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촉구해온 민달팽이유니온 최지희 위원장은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은 수급 가구의 일부 가구원이 학업·취업 등으로 다른 곳에서 거주할 필요가 있더라도 이주를 포기하도록 하는 등 문제를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기초생활보장 수급가구에서 부모와 30살 미만 미혼 자녀가 함께 살다 자녀가 집을 떠나는 경우 생계급여는 3인 가구 기준으로 묶어서 지원하더라도 주거급여는 부모 2인 가구와 자녀 1인 가구를 별도로 지원하는 조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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