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YMCA 등 23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대장들녘지키기 시민행동이 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국토부 3기 신도시, 부천 대장동 개발이 부천시민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부천 시민 문정원(42)씨가 5개월된 둘째 아이를 안고 피해 발언을 하고 있다.
문정원(42)씨는 3년 전 7살 첫째 아이를 데리고 경기도 부천 성주산 밑 송내동으로 이사했다. 수도권 1기 신도시인 부천 중동에서 자란 첫째 아이가 호흡기 질환과 원인 모를 염증 질환으로 자주 고열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사 뒤로 아이의 질환은 치료됐고, 올해 2월 둘째 아이도 갖게 됐다. 문씨는 “지금은 산 아래에서 산바람을 맞으며 환경적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최근 미세먼지와 폭염이 심해지는 데다 3기 신도시 개발계획에 인근에 있는 부천 대장동이 포함되면서 환경이 악화할 것을 우려한 탓이다. 문씨는 “부천의 유일한 바람길인 대장들녘에서 큰 아이와 모내기를 하며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는데, 왜 이곳에 콘크리트를 붓고 메우는 일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며 “건강한 바람을 마실 권리를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천에서 결혼해 10년 넘게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윤진이(37)씨도 건강이 걱정되긴 마찬가지다. 두 아이의 알레르기 질환으로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 윤씨는 “부천이 다른 도시보다 미세먼지 수치가 높다는 글이 자주 보이는데도 여기저기서 개발한다는 소식만 들린다”며 “한강에서 바람이 유인되는 길인 대장들녘을 막으면 오염물질이 밖으로 빠져나갈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5월 ‘제3차 신규택지 추진계획’ 중 하나로 논밭으로 구성된 농경지가 90%에 해당하는 부천 대장동 343만㎡(104만평) 땅을 3기 신도시 개발예정지로 포함하면서 인근 시민들이 환경 훼손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나섰다. 부천와이엠시에이(YMCA) 등 23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대장들녘지키기 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은 “부천 대장동 개발로 부천시민의 ‘건강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9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지역에 있는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미세먼지 등 환경 문제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기 신도시 개발로 인한 환경권 침해를 지적한 것도 최초다.
대장들녘지키기 시민행동이 9일 인권위에 진정서를 접수하고 있다.
시민행동과 전문가들은 “부천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형 도시로, 한강의 찬 바람이 부천 중심가로 유입되는 바람길인 대장들녘이 막히면 시민들의 건강권이 크게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봉호 서울시립대 교수(조경학과)는 “대장들녘에 있는 논은 숲보다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20배나 높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며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흡수해주는 공간을 없애는 것은 도시관리 차원에서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이어 “찬 공기가 도심으로 흘러들어 가면 기온을 3∼4도 낮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며 “부천의 바람길 역할을 하며 논이 있는 대장들녘은 더운 여름 도시를 식혀주는 에어컨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녹지가 절대적으로 적은 부천의 여건도 시민단체와 주민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김기현 부천YMCA 사무총장은 “부천의 산림면적은 전체 면적의 13.6%로 전국 최하위권이며, 물이 스며들지 못하는 불투수율도 61.7%로 전국 최악”이라며 “녹지율 또한 10% 미만으로 부천은 미세먼지와 열섬현상 등 이미 환경 문제에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임종한 인하대 교수(의과대학)는 “부천은 다른 지역보다 절대적으로 녹지가 적은 지역으로, 대장들녘은 부천에 남아있는 마지막 녹지라고 볼 수 있다”며 “기온이 1도 올라갈 때 녹지가 보존된 지역은 폭염 사망률이 2.2%지만 녹지가 없는 지역은 4.1%로 두 배가량 차이가 난다. 대장동뿐만 아니라 수도권 개발을 할 때 시민들의 삶을 위해 도시의 지속가능성이나 안정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장들녘에 서식하는 야생 동물의 멸종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시민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전문가와 부천시민단체가 진행한 ‘대장들녘 생태조사’를 보면, 대장들녘에는 천연기념물인 재두루미와 쇠기러기,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큰기러기와 금개구리 등이 서식하고 있다. 2013년부터 부천에 거주한 최여민(13)씨는 “대장들녘에서 모내기도 체험하고 고라니와 금개구리를 보며 즐거운 추억을 쌓고 있다”며 “대장들녘에 신도시가 들어오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무섭고 천연기념물인 동물들이 사라질까 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천시는 현재 활용이 적은 농경지를 잘 이용해 주민 친화시설을 만들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부천시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대장동이 농경지이다 보니 지금은 주민들이 이용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며 “신도시 개발로 주민 친화시설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바람길 폐쇄 등 시민단체의 우려와 관련해선 “부천시도 국토부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추진하는 정책사업에 끌려가는 입장”이라며 “시민단체들과 협조를 통해 환경적인 요소가 더해질 수 있게끔 국토부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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