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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우리는 왜 수돗물을 마시지 않게 되었나

등록 2019-07-13 13:56수정 2019-07-13 13:59

[토요판] 뉴스분석 왜?

1989년 ‘중금속 오염파동’ 등
수질 사고 거치며 불신 커져
꾸준한 노력으로 질 개선됐지만
여전히 수돗물 음용률 7% 그쳐

생수, 정수기에 의존하는 문화
돈 많이 들고 환경에도 안좋아
“국민이 믿고 마실 수 있도록
정부가 책임지고 시설 관리해야”
지난 9일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강북아리수정수센터에서 한강물을 수돗물로 정화하고 있다.
지난 9일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강북아리수정수센터에서 한강물을 수돗물로 정화하고 있다.

▶ 지난 5월 말 인천 서구에서 붉은 수돗물이 나오면서 촉발된 수돗물 안전 논란이 두달 째 장기화하고 있다. 식수는 물론 샤워, 빨래 등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깨끗한 수돗물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어떻게 하면 믿고 마실 수 있는 수돗물을 국가가 공급할 수 있을까.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김유나(가명·30)씨는 최근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 원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매번 보리차를 끓여먹기 번거로웠던 김씨는 정수기 렌탈 서비스를 알아봤지만 정수기를 따로 들여놓기에 원룸은 너무 좁았다. 생수를 사서 마실까 생각했지만, 잔뜩 쌓이는 플라스틱병이 부담스러웠다. 고민 끝에 김씨는 ‘그냥 수돗물을 마시자’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주변 지인들은 “수돗물 바로 마시지 말라”고 극구 만류하는 게 아닌가. 우리나라 수돗물의 품질이 상당히 좋다고 들었는데 왜 사람들은 수돗물을 불신하는지 김씨는 궁금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하는 일이 최근 벌어졌다. 지난 5월 말부터 인천 서구 지역에서 붉은 수돗물이 나오는 이른바 ‘붉은 수돗물 사태’가 확산된 것이다. 이후 인천의 가정에선 편히 샤워할 수도, 음식을 만들 수도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학교에선 급식이 중단됐고 집집마다 생수를 사서 머리를 감는 풍경이 펼쳐졌다. 지난 10일 인천시는 서구와 중구 영종도에서 나온 붉은 수돗물로 피해를 본 시민이 63만5000여명에 이른다고 잠정 집계했다. 사태의 원인은 상수도관의 물줄기 방향을 바꾸는 수계전환이 매뉴얼대로 이뤄지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가닥이 잡혔고 업무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박재현 인제대 교수(토목도시공학)는 “붉은 수돗물 사태 자체는 시간이 지나면 안정화할 것이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수돗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더 고조될 것이고 이를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60년 만에 99% 보급했지만

우리가 매일 ‘물 쓰듯 펑펑 쓰는’ 수돗물은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집에 오게 될까. 지난 9일 오전, 우리나라 최초 정수장인 서울 성동구 뚝도아리수정수센터를 찾았다. 서울숲 근처에 있는 15만여㎡(축구장 20여개) 규모의 이 정수장에서는 한강 상류의 물을 끌어와 약품 투입과 여과를 거쳐 수돗물을 만든 뒤, 서울 종로구, 마포구 등 서울 7개구 101여만명의 시민에게 하루 50만톤을 공급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 있는 청와대에 공급되는 수돗물도 이 정수장에서 생산된다. 이곳은 외부인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가’급 국가 중요시설이다.

지금은 가정집에서 수도꼭지를 틀면 깨끗한 물이 콸콸 나오지만, 1960~70년대 우리나라 상수도 보급률은 아주 낮았다. 1960년대 수도법이 제정되며 본격적인 상수도 시설이 공급됐지만 농촌에서 도시로 밀려드는 인구에 비해 도시의 상수도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E)-나라지표에 공개된 우리나라 상수도 보급률은 1960년 16.8%에 불과했고 1970년에도 32.4%에 그쳤다. 1980년에야 54.7%로 절반을 겨우 넘긴 뒤 1990년 78.4%, 2008년 96.8%로 올라간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17년 우리나라의 전국 상수도 보급률은 99.1%다.

60여년 만에 10%대의 상수도 보급률을 100% 가까이 끌어올린 것이어서, 우리나라 상수도 보급은 개발도상국들의 모델이 되고 있다. 품질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 ‘수돗물 음용 제고의 사회경제적 효과’(2017, 물정책경제 28호)를 보면, 유엔이 발표한 국가별 수질지수에서 우리나라는 122개국 중 8위이며, 세계물맛대회(2012)에서 7위를 차지했다.

상수도 시설이 널리 보급됐고 수돗물의 품질도 높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수돗물을 직접 마시는 경우는 드물다. 수돗물홍보협의회와 수돗물시민네트워크가 전국 성인 1만219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년 수돗물 먹는 실태 조사’에서 ‘수돗물을 그대로 마신다’(직접 음용)는 응답 비중은 7.2%에 그쳤다. 절반 가까이(42.2%)가 수돗물을 마시긴 하지만 ‘끓이거나 조리해서 마신다’(간접 음용)고 했고, 나머지는 정수기(34.3%)나 생수(13.1%), 지하수·약수(3.2%) 등을 이용한다고 대답했다.

국제사회와 비교해도 수돗물 음용률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일본, 프랑스, 캐나다 등 11개 회원국에서 평균 51%의 응답자가 ‘수돗물을 그대로 먹는다’고 답했다. 반면 같은 조사에서 한국 응답자는 5%만이 수돗물을 그대로 먹는다고 말해 꼴찌를 기록했다.

서울 성동구 수도박물관에 진열된 수많은 종류의 생수들.
서울 성동구 수도박물관에 진열된 수많은 종류의 생수들.
때맞춘 생수 업계의 마케팅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기 어렵다고 인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학계에서는 △잇따른 수질 오염 사태 △물 산업 시장 확대 △정부의 수돗물 관리정책 부족 △막연한 불안감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특히, 1989년 ‘수돗물 중금속 오염파동’은 대다수 국민이 수돗물을 바로 마시지 않게 된 중요한 기점이 됐다. 이 파동은 당시 정부가 전국 상수도 수질을 표본조사한 결과 중금속과 세균 등이 기준치 이상 검출되어 식수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했고, 이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건이다. 그 뒤 ‘낙동강 페놀 유출 사고’(1991년), ‘낙동강 정수장 악취 문제’(1994년), ‘미군기지 다이옥신 검출사건’(2004년), ‘구미 정수장 물고기 폐사 사건’(2012년) 등 각종 수질 관련 사고들이 계속 터지면서 국민들의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확고해졌다.

여기에 더해 1990년대부터 생수업체와 정수기 제조회사 등 물 산업 업체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급성장했다. 수퍼마켓엔 생수 판매대가 만들어지고 많은 가정에서 정수기를 갖추기 시작했다. 연이은 수질 오염 사건으로 불신이 커진 상태에서 물 산업 확대로 수돗물을 대체할 수 있는 방안들이 생기자 가정에선 수돗물을 직접 마시지 않는 문화가 뿌리내렸다. 1990년대 이후 각 지자체에서 상수도사업본부를 따로 꾸리는 등 수돗물 품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계속했고, 그 결과 세계 상위권에 오를만큼 품질이 개선됐지만, 한번 돌아선 국민들은 여전히 수돗물을 잘 마시지 않고 있다.

수도요금을 지출하는 데도 가정에서 식수를 위해 추가 비용을 쓰며 정수기를 설치하거나 생수를 사먹는 일은 비경제적이고,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승일 고려대 교수(환경시스템공학)는 “생수를 공급하기 위해 페트병 제조 등 또 다른 공정을 꾸려야 하고, 먹고 난 뒤 페트병이 버려지면 환경에 부담을 주는 쓰레기가 배출된다. 정수기도 추가적인 전기가 들어간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돗물을 바로 먹는 것이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들의 신뢰가 높아질 수 있도록 정부가 책임지고 상수도 시설과 관리를 개선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 같은 행정적인 실수를 최소화해야 하고, 교체나 보완이 필요한 시설은 예산을 투여해 정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붉은 수돗물 사태’로 수돗물 안전에 관한 관심이 커진 가운데, 기자가 무료 수돗물 수질검사제도인 ‘아리수 품질확인제’를 이용해봤다.
최근 ‘붉은 수돗물 사태’로 수돗물 안전에 관한 관심이 커진 가운데, 기자가 무료 수돗물 수질검사제도인 ‘아리수 품질확인제’를 이용해봤다.
수돗물도 지역간 격차

특히 수돗물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개선돼야 할 점 중의 하나는 지역에 따라 고르지 않은 수돗물 품질이다. 지난 8일 인천에서는 “물에서 비린내가 난다”라는 민원이 접수돼 잦아들었던 적수 사태에 다시 불을 지폈다. 수돗물 정수처리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물의 비린내, 흙·곰팡이 냄새, 염소 냄새를 없애주는 고도정수처리 과정을 거치게 돼 있는데, 인천 일부 지역 등 전국 9개 시도에서는 이 시설이 구비돼 있지 않다. 반면 서울시는 2015년까지 전체 6개의 정수장에 각 500~1000억원 안팎의 비용을 들여 고도정수처리 시설을 완비한 상태다.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살이에 따라 수돗물에 차등이 생기는 셈이다.

수도법에서 규정하는 상수도 시설의 공급 책임자가 지방자치단체장인 까닭에 전국 17개 시·도마다 상수도 보급률이 다르고 수돗물의 품질과 생산 원가, 수도요금도 다른 것이 현실이다. 특히 도시와 농촌 간 격차는 상당하다. 환경부가 지난 1월 발표한 ‘2017년 상수도 통계’를 보면, 전국 상수도 보급률은 99.1%인데 농어촌 지역(면 단위) 보급률은 94.3%다. 같은 해 서울은 상수도 보급률이 100%이지만, 강원 홍천군 79%, 충남 태안군 82.9%, 전남 영암군 88.9% 등 농어촌 지역에선 여전히 상수도 보급률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농어촌의 수도요금은 더 비싸다. 전국 수돗물의 평균 요금은 단위당 723원이지만, 강원은 958원, 전북은 939원으로 평균을 크게 웃돈다. 반면 서울(568원)과 대전(555원)은 전국에서 수도요금이 제일 저렴하다. 물이 갑자기 공급되지 않는 단수 상황도 농어촌 지역에서 자주 일어난다. ‘상수도 정책 목표의 변동과 성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 연구’(한국지방공기업학회보, 2018)를 보면, 공지 없이 갑자기 단수된 일이 2015년 전국에서 531건 발생했는데, 이 중 농촌 지역이 많은 전북(106건), 제주(89건), 경기(87건), 강원(86건) 등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서울, 광주, 대구, 대전 등 대도시에선 발생하지 않았다.

김길복 한국수도경영연구소 소장은 “지자체가 제각각의 수도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수돗물 격차가 심하다. 중앙정부는 지방 사무라며 상수도 시설에 투자를 안 하고 지방정부는 예산 부족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 수돗물에 투자하지 못한다. 안전하고 깨끗한 수돗물을 국민이 믿고 마실 수 있도록 수도사업이 국가적으로 정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우리집 수돗물 품질 확인해보려면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집 수돗물의 품질을 직접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아리수 품질확인제’(서울)’(arisu.seoul.go.kr)나 ‘우리집 수돗물 안심 확인제’(ilovewater.or.kr)를 신청하면, 개별 가정의 수도꼭지 수질검사와 옥내 배관, 물탱크 관리 상태를 무료로 종합 진단해준다. 만약, 수질 기준을 초과해 부적합 판단이 나오면 원인을 조사해 수질 개선 방법을 안내해준다고 한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기자가 ‘아리수 품질확인제’를 직접 신청해보니, 신청한 지 이틀 뒤 서울시 중부수도사업소 직원 3명이 집에 방문했다. 부엌 수도꼭지 물을 틀어 비커와 시험관에 담아 5가지 항목(탁도, 잔류염소, pH, 철, 구리)을 검사했다. 물의 맑고 탁한 정도, 물의 안전성을 나타내는 소독제 잔류농도, 산성과 알칼리 상태, 수도관의 노후상태 등을 점검한 것이다. 10분여 뒤에 나온 결과는 안심하고 음용 가능한 ‘적합’이 나왔다. 수도꼭지에 수질이 적합하다는 표지도 부착해줬다. “처음에 나오는 물을 몇 초 흘려보내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직접 드셔도 좋습니다.” 직원의 말에 수도꼭지의 물을 유리병에 한 가득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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