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0여억원의 공천 헌금을 받아 구속됐던 양경숙(58) 라디오21 본부장의 모습. <문화방송>(MBC) 뉴스 영상 갈무리
40억여원의 공천 사기로 실형을 살았던 <라디오21> 편성본부장 출신의 양경숙(58)씨가 11일 아파트 ‘계약확인서’ 등을 위조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법정 구속됐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선고가 나기 전에 법정 구속되는 것은 드문 일로, 양씨는 재판을 받던 중 증거를 위조한 정황이 드러나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서울서부지검 중요경제범죄수사단(단장 최창호)는 한때 자신과 함께 살던 지인 ㄱ씨의 아파트를 2012년 7월 자신이 사들인 것처럼 계약확인서를 위조한 혐의(사문서위조 및 동행사)로 양씨를 지난해 6월26일 재판에 넘겼다. 양씨는 ㄱ씨가 자신에게 총 6억5000만원을 빌렸다고 적힌 차용증 2장을 위조한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양씨는 재판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자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조작해 아파트 구입과 차용증 작성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꾸민 의혹도 받고 있다. 양씨가 재판 중 구속된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으로 전해졌다.
사건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ㄱ씨가 법원에 낸 탄원서를 보면, 두 사람은 2008년 우연히 알게 돼 친분을 쌓아왔다. ㄱ씨는 그뒤 “양경숙이 2006년 총선에서 민주당 선거로고송 사업에 참여하여 13억8000만원을 받게 된다. 곧 돈이 나온다고 하면서 수시로 돈을 차용해가곤 했다”라고 탄원서에 썼다. 하지만 ㄱ씨는 양씨가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공천 희망자들에게 40여억원의 돈을 받은 혐의로 2012년 8월 대검 중수부에서 구속되는 등 실체가 드러나자 인연을 끊었다. 문제는 이듬해 불거졌다. 양씨는 구속 중이던 2013년에 자신이 2012년 7월 ㄱ씨 소유의 아파트를 구매했는데 ㄱ씨가 소유권을 넘기지 않는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ㄱ씨는 <한겨레>에 “당시 양씨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고소하려고 했으나, 사건이 무혐의로 마무리됐고 감옥에 있는 사람을 고소한다는 것이 비인간적인 일이라고 판단해 덮고 넘어가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2016년 11월 양씨의 ‘감옥 동기’가 ㄱ씨를 찾아와 “양씨가 자신의 아파트와 재산을 당신이 빼앗았다고 하는데 맞느냐”라고 묻는 일이 벌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양씨는 감옥 동기들에게 ㄱ씨가 자신에게 고소를 당하고도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은 것을 근거로 해당 아파트가 자신의 것이 맞으며, 출소하면 양씨에게서 집과 재산을 돌려받을 것이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더는 참을 수 없던 ㄱ씨는 2017년 4월 양씨를 고소했다.
ㄱ씨는 양경숙씨가 재판에 유리한 정황을 만들기 위해 지난 3~4월에 2012년 7월에 작성한 게시글(왼쪽)을 수정하거나 댓글을 수정한 뒤 차용증과 계약확인서(오른쪽)를 첨부해 올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ㄱ씨 제공
양씨의 재판은 애초 5월9일 끝날 예정이었다. 실제 검찰은 지난 4월 양씨에게 징역 2년을 구형한 상태였다. 하지만 양씨 쪽은 4월 “새로운 증인이 있다”며 변론 재개와 선고 연기 신청을 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재판이 재개됐다.
ㄱ씨는 이즈음 양씨가 재판 중임에도 증거자료를 위조한 정황을 확인했다. 양씨는 지난 3월에 2012년 7월 통합진보당과 관련해서 작성한 글을 “오늘은 집 계약서도 생겼다. 문서, 서류에 젬뱅이고 (ㄱ씨가) 거의 컴맹에 가까운 내게 이것저것 다 챙겨 입에 떠먹여 주기까지 한다” 등의 내용이 담긴 글로 수정했다. 또 2012년 7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작성한 댓글을 지난 4월 수정해 “언니 덕분에 내집이 되었네요”라는 글과 함께 ‘차용증’과 ‘계약확인서’ 사진을 첨부에 올리기도 했다. 양씨가 이처럼 의문스러운 활동을 한 이유는 지난달에야 풀렸다. ㄱ씨 확인 결과 해당 <페이스북> 게시글은 법원에 증거자료로 제출됐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독이 됐다. 양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차용증 사진에 적힌 날짜는 2012년 3월27일이었지만, 최근 양씨가 원본감정을 신청하며 법원에 제출한 차용증 날짜는 2012년 7월20일로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ㄱ씨는 이런 내용을 확인한 뒤 해당 게시글과 댓글을 갈무리해 판사에게 탄원서를 보냈고, 이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서부지법 형사10단독 김병만 판사는 지난 11일 ㄱ씨가 탄원서를 제출한 뒤 열린 첫 재판에서 양씨를 구속했다. 이에 대해 양씨는 “차용증을 여러차례 썼으며 2012년 7월20일에 작성된 것이 마지막이다”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서부지법 관계자는 “양씨의 경우 도주 우려와 증거 인멸 우려 때문에 판사가 재판 중 구속했다”며 “재판 진행 중 구속이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양경숙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차용증(위)의 작성 일자는 2012년 3월27일로 되어 있으나 문서감정을 요청하며 지난달 법정에 제출한 차용증(아래)의 작성일자는 2012년 7월20일로 되어있다. ㄱ씨 제공
양씨의 다음 재판은 다음 달 20일 열린다. 검찰관계자는 “지난 4월 심리를 마무리하고 징역 2년을 구형한 상태였는데, 변호사가 변론 재개 신청을 해서 공판이 재개됐던 것”이라며 “결심공판이 다시 이뤄질 것이고 지난번과 같은 형량을 구형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양씨는 2012년 4·11 총선 때 자신이 공천을 줄 수 있다고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후보 희망자들을 속여 40여억원을 가로챈 혐의(공직선거법 등 위반)와 사기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또 2009년 9월 건강식품 판매업자한테 자신이 <문화방송>(MBC)과 다이어트 경연대회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로 계약한 것처럼 속여 방송 투자금 명목으로 3억60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주빈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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