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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7년차 특수통 검사가 꾹꾹 눌러 쓴 ‘수사의 정석’

등록 2019-07-25 09:17

강희철의 법조외전(66)
퇴임 앞둔 조은석 고검장, 수사 경험 집대성한 <수사감각> 펴내 어려운 사건에서 자백 잘 받아 오해 샀던 자신만의 비결 공개
정치인·대기업 회장 등 수사 사례 ‘병서’ 가르침과 교직해 서술
권력의 수사 간섭 매커니즘, 굴종하는 검사들 사례도 드러내
“쉽고 재미있다”·“이런 교재는 처음” 일선 검사들 호응 얻어
지난 2017년 10월23일 조은석 서울고검장(왼쪽)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오전 질의순서가 끝난 뒤 국정감사장을 나서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 2017년 10월23일 조은석 서울고검장(왼쪽)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오전 질의순서가 끝난 뒤 국정감사장을 나서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특별(인지)수사는 어렵다. 고소·고발 사건과 달리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수사다. 실오라기 같은 단서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수사기법이 눈부시게 발전했다지만, 결국 종착점은 사람의 진술이다. ‘빗장’ 걸린 관련자의 입은 저절로 열리지 않는다. 오죽하면 종합예술에 비유될까.

하다 보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수사는 생물’이라는 말이 여기서 생겼다. 자칫 잘못하면 검사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오기도 한다. 특히 집권세력 수사는 폭탄만큼 위험하다. 심재륜 전 고검장이 지난 2009년 ‘수사십결(搜査十訣)’이란 글에서 “칼에는 눈이 없다”고 한 것도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런 특별수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조은석(54·사법연수원 19기) 법무연수원장(고검장)이 퇴임을 앞두고 <수사감각>이란 책을 썼다. 지난 6월 말 법무연수원 교육 보조자료로 펴낸 이 책에는 27년 검사 생활에서 우려낸 그만의 경험과 비결이 담겼다.

1998년 경성건설 비리 사건 때다. 애초 이 사건엔 서울지검 특수1부 검사 전원이 투입됐다. 횡령한 회삿돈이 제법 많았는데, 행방이 묘연하니 정관계 로비를 의심했다. 그만큼 기대가 컸다. 봄에 시작된 수사가 한여름까지 이어졌다. “에어컨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검사실에서 러닝셔츠 바람으로 야근을 밥 먹듯 하며 최선을 다했”(당시 수사 검사)으나 수뢰 정치인은 한 명도 밝혀내지 못한 채 수사를 끝냈다.

그런데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사 회장과 정치인들의 전화통화 내역이 적힌 법원 제출 기록 일부가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부실 수사’,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급기야 박순용 당시 서울지검장-나중에 검찰총장이 된-이 카메라 앞에서 허리 굽혀 사과하고 재수사에 착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검찰의 치욕이라고들 했다. 이전 수사팀이 모두 좌천된 가운데 사건이 조 검사에게 배당됐다.

그는 경성건설에서 뇌물을 받은 거물급 정치인 4명의 이름을 자백받았다. 당시 집권당 최고 실세 중 한 명인 정대철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도 들어 있었다. 재수사 착수 3일 만이다.

또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나라종금 로비 의혹이 불거졌다. 노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염동연씨가 퇴출 위기에 몰린 종금사의 구명 로비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돈이 간 것도 드러났다. 그러나 ‘대가성’ 입증이 문제였다. 조 검사의 ‘선배’들이 연이어 사건을 맡았으나 빈손으로 돌아섰다.(그 중엔 나중에 검찰총장이 된 사람도 있다)

노 대통령이 취임한 2003년 봄 재수사가 시작됐다. 검찰 내부적으로는 “당시 극비사항이었지만,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돌파하지 않으면 안될 절체절명의 관문이었다.” (당시 대검 고위 관계자) 사건이 조 검사에게 배당됐다. 상대는 갓 취임한, 서슬 퍼런 최고 권력자의 최측근들이었으니 작두날 위에 선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이 역시 일주일이 되기 전 안희정·염동연씨를 비롯해 금품을 받은 거물급 인사 6명의 이름을 자백받았다. 명단엔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김홍일 전 의원, 한광옥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용근 전 금융감독위원장, 정학모 전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들어 있었다. 이들은 재판에 넘겨졌고, 전원 유죄가 확정됐다.

조 검사는 서문에서 “후배 검사들에게 필자의 경험이 반면교사가 되거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했다. 일선 검사·수사관들의 반응이 좋다고 한다. 4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인데도 “재미있어 쉽게 읽힌다”, “검사가 쓴 자료집이나 실무서적은 많이 봤지만, 수사 비법을 전수하는 책은 처음이라 유익하다”는 평이 나온다.

어렵게 책을 구해 읽었다는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너무 많은 ‘영업비밀’을 알려주는 거 아닌가”라며 웃었다. 검사의 공격법은, 뒤집으면 조사받는 이의 방어법이 될 수도 있다.

‘범죄가 검사를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엔 다양한 수사 노하우가 등장한다. <손자병법> <오자병법> <육도삼략> <36계> 등 조 검사가 평소 즐겨 읽는다는 병서-그는 과거 육사 입시에 낙방한 적이 있다-의 가르침과 버무려서다. 특별수사 때 검찰청과 검사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검사의 머리 속은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듯 생생하다. ‘쉽고 재미있다’는 평이 주된 이유다. 물론 경성·나라종금 재수사의 비결도 나온다.

“어떻게 하면 사람의 입을 열어 범죄 및 그 관련 정보를 말하고 수사에 협력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스스로 털어놓게 할 것인가. 별건 수사를 통한 압박은 정의롭지 못하고 비난을 초래한다. 추후 법정에서 별건 수사가 확인되면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는다. (…) 형사소송법은 기망에 의한 자백 등은 증거 능력을 배제한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에서 금지하는 위법수사가 아닌, 심리적 방법에 의한 정보수집은 얼마든지 허용된다.”

말대로 그는 심리전을 폈다. 방치돼 있던 경성건설의 회계장부에서 시작했다. 이 회사 이아무개 회장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여성의 집에서 이전 수사팀이 압수했다가 그 여성의 소재를 알지 못해 돌려주지 못한 것이었다. 수사관들과 ‘작전’을 짰다.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된 이 회장을 소환했다. “이렇게 의리를 지키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그러나 입을 닫으시는 바람에 검찰의 수모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니 페널티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회장도 감수하겠다고 했다.

다음엔 전담 수사관이 붙어 회장과 정서적 유대를 쌓았다. “회장님 요즘 수사관들 사이에서 ‘의리맨’으로 인기가 짱입니다.” 두런두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 30분 간격으로 여러번 수사관에게 전화가 온다. “난 그런 거 안해요. 검사에게 물어봐요.” 나중엔 언성을 높였다. “난 그런 일 안한다니까!”

궁금증을 참다못한 회장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왜 그 장부를 여자분 집에 숨기셨어요. 혼인관계가 아니어서 증거은닉죄가 됩니다. 지금 그 여자 잡으러 갔어요. 난 그런 일 못 하겠다고 한 거예요.” 그 여성과 사이에 아이까지 두고 있던 회장은 괴성을 지르며 반발했다. “누가 애를 맡아 줍니까. 기자회견을 열어 법원 조정위원, 검찰 선도위원에게 돈 봉투 돌린 걸 모두 폭로하고 말 겁니다.” 수사관이 받았다. “그거 다 폭로하세요. 그런 판·검사는 다 잡아넣어야지요.”

협박이 안 통하자 풀 죽은 회장이 수사관에게 ‘방법’을 물었다. “정치권 로비를 말씀하시면 좋지만, 여기까지 버틴 게 너무 아깝잖아요. 계속 버티세요.” 애가 닳는 쪽은 회장이다. “아니에요. 모두 말할게요.”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검사와 수사관은 그 여성의 집에 안갔다. 집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여성을 구속하겠다고 압박하지도 않았다. 별건 수사는 아예 없었다. 사무실 안팎에서 전화 몇통 걸고 받은 게 전부다. “회장이 연출된 상황을 스스로 믿게끔 한 것 외에는 달리 한 일이 없다.” 병법 <36계>의 제2계 ‘위위구조(圍魏救趙)’를 응용한 것이라고 한다. “위나라의 포위 속에서 조나라를 구한다는 뜻으로, 적의 포위망 속에 든 아군을 구할 때 직접적인 방법보다 적의 약점을 찔러 아군 스스로 돌파하도록 함을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나라종금 로비 수사도 알고 보면 비슷하다. 구속됐다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 중이던 안아무개 사장이 스스로 입을 열도록 만들었다. 병원 쪽 조사를 통해 근거를 확보한 뒤 법원에서 보석 취소를 받아냈다. 참여정부 초반, 정권 실세 수사니까 대충 넘어갈 거라 생각하던 안 사장은 당황했다. 검사는 직접 나서는 대신 수사관을 통해 경고했다. “협조 안할 걸 안다. 협조를 권하지도 않겠다. 다만, 사장님과 주변의 금융자산은 차명까지 철저히 추적하겠다. 정권 초반이니 국민에게 설명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계좌추적은 준비도 하지 않았다. 안 사장의 면담 요청을 몇차례 거절했다. 걱정과 고민에 휩싸인 안 사장은 결국 스스로 입을 열었다.

‘방탄국회’가 일상화했던 제16대 국회 처음이자 마지막 구속자인 김방림 의원(새천년민주당) 수사는 영화를 닮았다. 대양금고 수사에서 김 의원의 수뢰 혐의가 드러났다. 집권당 현역 의원 수사에 난색을 보이는 ‘상부’를 어렵게 설득해 체포영장을 받은 게 2002년 1월30일. 31일부터 2일까지 이어진 설 연휴가 지나면 3일부터는 다시 회기가 시작돼 현역의원은 ‘체포 불가’다. ‘허락’된 시간은 단 3일뿐이었다.

의원은 잠적했다. 가망 없어 뵈는 휴대전화 실시간 위치 추적, 도피에 이용됐을 차량 조회 등을 통해 마지막날 강남의 한 찜질방 현관에서 웃으며 걸어 나오는 김 의원을 체포했다. “움직이는 차량들 사이에서 차량 번호를 읽어낸 한 수사관의 눈썰미”가 성공의 결정적 열쇠였다.

이처럼 그가 맡아 성공한 수사엔 당대의 대형 사건이 많다. 대통령의 아들과 최측근,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살아 있는 재벌 회장, 전직 국회의장, 집권당 실세, 전·현직 국회의원, 금융감독위원장 등 기소한 주요 인사만 수십 명에 이른다. 대부분 유죄가 확정됐다. 평소 무죄 확정 판결문은 남이 한 사건이라도 반드시 구해 숙독하고, “수사의 완성은 공판”이라는 생각으로 “판사가 공소사실에 1%의 의심도 갖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한다. 그는 일선을 지휘하는 간부가 돼서도 청목회 입법 로비, 대한항공 ‘땅콩 회항’ 수사 등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런 그도 ‘실패담’이 없지 않다. 정부부처 차관 출신 공기업 전 사장을 수뢰 혐의로 기소해 1·2심에서 유죄를 받았다. 상고심 결론도 같을 거라 확신했다고 한다. 상고한 피고인에 대한 답변서를 쓰지 않았다. 결과는? 무죄 취지로 파기됐다. 공판 기록을 확인한 결과, 금품 전달자가 제출한 탄원서를 놓친 사실이 드러났다. 피고인이 금품을 받지 않았는데 공여자가 거짓 진술을 했다는 탄원서 내용이 영향을 끼친 것이다. 2심과 3심을 오르내리다 결국 무죄가 확정됐다.

“방심하다 당했다. 큰 교훈을 얻었다. 그 이후 1·2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사건일지라도 피고인 쪽 상고이유서를 반드시 확인했다. 그리고 수시로 대법원 ‘나의 사건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 피고인 측에서 추가 제출한 자료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반박 의견서의 필요성이 있으면 수시로 제출했다. 대법원 재판 상황을 상시 예의주시하라.”

‘실패한 수사’도 있다. ‘현직’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진술이 나왔다. 2002년 12월15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서다. 선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상부’의 의견, 선거 결과가 진술에 미칠 효과 등을 종합 고려해 선거 당일 비서실장을 소환했다. 청와대에서 가까운 플라자호텔 객실을 빌렸다. 제3의 장소를 고집하는 ‘실세’ 비서실장의 특혜 요구를 ‘상부’가 받아준 결과 유례없는 장소에서 조사가 이뤄졌다.

“비서실장은 (돈을) 받았으나 공여자를 소개한 경찰 간부를 통해 되돌려 주었다고 주장했다.” 대질조사가 이어졌다. 애초 자신이 두 사람을 소개하고 금품수수도 목격했다던 경찰 간부는 진술을 바꿔 비서실장 말에 동조했다. 구속 중인 공여자도 애초 진술을 번복했다. “대선에서 집권당 후보가 당선하자 진술 태도를 바꾼 게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공여자를 다시 조사했다. 그는 다시 (금품을 건넸다는) 원래 진술로 돌아갔다.”

그러나 고심 끝에 수사를 접었다. “받은 실장과 목격자는 부인하고, 공여자는 번복한 진술이 있다. 달리 보강할 증거도 없었다. (…) 성공 가능성이 없으면 미련 없이 멈춰라.” 그가 지금껏 아쉬워하는 건 조사 장소다. 병법 <36계>의 제15계 ‘조호이산(調虎離山),’ 호랑이를 잡으려면 산에서 나오도록 해야 한다. “결과가 달랐을지는 알 수 없으나 비서실장을 검찰청사로 나오게 했어야 했다.” 그 실장은 지금도 영향력 막강한 현역 정치인이다. 이 책에서 처음 공개되는 얘기다.

이렇듯 검찰을 쥐락펴락하는 정치권이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검찰 수사를 어떻게 왜곡하는지도 조 검사는 책에 썼다.

“증거의 가치와 수사진행 방향 및 속도에 대해 수사검사에게 맡겨두지 않고 대검찰청, 법무부 등에서 일선의 판단과 달리 수사에 대해 요구하고 간섭하는 경우가 있다. (…) 상부는 일선에서 알아서 자신들을 따라 달라고 기다리는 것이다. 세련되게 한다. 절대 일선 의견과 반대로 하라고 명시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상부의 생각은 다르니 더 보완하라거나 다시 검토해 보라는 식으로 피드백을 반복한다. 청와대는 직접 나서지 않는다. 법무부를 통해서 한다. 법무부에서 이견이 있는 것인 양 한다. 그러나 일선은 어디서 태클을 거는지 다 안다. 그리고 그 배경이 무엇인지도 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월호다. 조 검사는 대검 형사부장이던 2014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자 현장에 출동하고도 제대로 된 구조에 나서지 않았던 해경 123정장에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적용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박근혜 청와대와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생각이 달랐다. ‘국가(정부) 책임’과 이듬해 4월 총선을 의식해 ‘미뤄 조지기’에 나섰다. 다시 검토해 보라는 피드백이 무한 반복됐다. 결국 반년을 끌다 불구속기소로 ‘타협’이 이뤄졌다.

청와대와 황 장관은 끝내 ‘항명’으로 받아들였다. 123정장은 유죄가 확정됐지만, 조 검사는 청주지검장으로 ‘날아갔다.’ “항명은 용납할 수 있다. 그러나 항명한 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인사권으로 반드시 보복한다. 모든 권력의 속성이다.”

그곳 청주에서 그는 ‘더한 사례’를 겪게 된다. 2015년 집권당 소속인 청주시장 수사에 나서 조사를 끝내고 신병처리 의견까지 문건으로 만들어 대검에 올렸다. 그러나 상부의 지루한 시간끌기가 시작됐다. “그 와중에 변호인이 의견서를 제출했다. 대검 보고 문건의 순서와 내용을 똑같이 인용하여 작성돼 있었다. 보고 문건이 그대로 변호인에게 넘어간 것이다. 상부의 누군가에 의한 것임은 명백하다.”

그러나 ‘정치 검찰의 흑역사’는 정권 혼자서 쓰는 게 아니다. 검찰 내부의 협조자, 내응자가 있어서 가능하다. <손자병법>은 가르친다. “명성을 얻고자 공격하지 말고, 죄를 추궁받기 두려워 후퇴하지 말라.”(進不求名 退不避罪)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검사가 반드시 있다. ‘좋은 보직’에 대한 유혹은 더 없이 달콤하고 강렬하다.

“유력 야당 정치인과 처남의 재산 관련 분쟁 과정에서 정치인이 집권 시절 대기업에 처남을 취업시켜 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정치인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시민단체가 고발장을 검찰에 접수시켰다. (…) 그런데 이는 공소시효가 경과되었음이 역수상 명백했다. 고발장 접수 후 대검 검토에서도 그와 같이 결론지었다. 그런데 일선 검찰청 지휘부가 교체된 후 갑자기 수사를 진행했다.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범죄로 구성하여 대기업 압수수색과 관련자 및 대기업 회장까지 소환 조사하였다. (…) 결국 1년여간 진행된 수사는 정기인사로 지휘 간부들이 교체된 이후 불기소 종결되었다. 처음부터 종결이 명약관화한 사건이었다.”

이 역시 이 책에서 처음 공개되는 내용이다. 당시 ‘유력 야당 정치인’은 나중에 국회의장이 되었고, 그 대기업 회장은 지난 4월 급서했다. 무리한 수사를 강행했던 ‘지휘 간부들’은 아무 문제 없이 승승장구하다 퇴임해 변호사가 됐다. “앞날에 대한 욕심을 갖는 순간 굴종하게 된다. 굴종하는 순간 검사가 아니다. 정체성이 사라진다.”

이 책의 매력은 자신이 보고 겪은 ‘실화의 힘’이다. 조 검사는 바둑의 대국 전체를 복기하듯 자신이 겪은 수사의 성패를 한 장면 한 장면 솔직히 드러냈다. 심 전 고검장의 ‘수사십결’을 업그레이드한 확장판처럼 읽히기도 한다. 아쉬운 건 법무연수원 교재라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연수원 23기)보다 연수원 4년 선배로 지난 19일 사의를 밝힌 조 고검장은 29일 퇴임식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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