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국정원장, 회계관계 직원 아니다”
1심 징역 6년보다 1년 적은 징역 5년 선고
박근혜 관련 하급심 판단 모두 마무리
박근혜 전 대통령. <한겨레> 자료 사진.
국정원장으로부터 국정원 특별사업비 수십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항소심에서 1심보다 1년 적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현재까지 법원 하급심에서 박 전 대통령이 선고받은 형량은 모두 징역 32년으로, 대법원의 최종 판단만을 남겨두게 됐다.
25일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구회근)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혐의 등을 받는 박근혜(67) 전 대통령에 징역 5년, 27억의 추징금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세 명의 국정원장으로부터 수십억원의 특활비를 교부받아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1심과 항소심 판단을 가른 쟁점은 박 전 대통령에게 특별사업비(특활비)를 건넨 국정원장이 관련법상 ‘회계관계 직원’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특가법상 국고손실죄는 죄를 저지른 사람이 관련법(회계관계직원 등의 책임에 관한 법률)이 정한 ‘회계관계 직원’에 해당돼야만 성립하는 범죄다. 관련법에 따르면, 회계 관계직원은 “국가 예산 및 회계 관련법에 따라 국가의 회계사무를 집행하는 사람”을 뜻한다. 재무관, 현금출납 공무원을 비롯해 ‘국가의 회계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다르게 국정원장이 관련법상 회계관계 직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봤다. 원칙적으로 국가기관의 회계 업무가 기관장의 권한에 포함돼있다 하더라도, 기관장이 회계 업무를 소속 공무원에 위임하거나 스스로 회계 업무를 처리하도록 관련법에 규정돼있지 않으면, 해당 기관장은 회계관계 직원이라 볼 수 없다고 봤다. 대신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회계관계 직원으로 볼 수 있는 이헌수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과 공모했다”고 봐 특가법상 국고손실 혐의를 일부 유죄로 판단하거나, “국정원장과 공모해 특활비를 횡령했다”고 봐 특정경제범죄법 위반(횡령)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현행법상 횡령죄를 살펴보면, 단순횡령죄 - 업무상횡령죄 - 특정경제범죄법 위반(횡령)죄 - 특가법상 국고손실죄 순으로 가중 처벌하게 돼있다.
재판부는 또한 1심과 같이 국정원장이 박 전 대통령에 건넨 특활비은 뇌물이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국정원장이 대통령에 돈을 건넨 경위를 살펴봤을 때, 특활비를 뇌물이라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2017년 10월 이후 자신을 둘러싼 모든 재판을 ‘보이콧’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불출석 사유서를 낸 채 이날 선고 공판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을 대리하는 두 명의 국선 변호인만이 출석해 텅 빈 피고인석을 지켰다. 재판부가 선고를 끝내자, 방청석에 있던 일부 시민들은 “아예 5억년을 선고하지 그러냐”, “이게 재판이냐”며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5월~2016년 9월 국정원장 등과 공모해 모두 36억5천여만원의 특활비를 수수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뇌물·국고 등 손실)로 기소됐다. 검찰 수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은 남재준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6억원, 이병기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8억원, 이병호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19억원의 특활비를 전달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6년 9월 추석 무렵 이병호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따로 2억원을 전달받기도 했다. 지난해 7월 1심 재판부는 국정원장이 관련법상 회계관계 직원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박 전 대통령에 징역 6년, 33억원의 추징금을 선고한 바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친박 공천 개입’, ‘국정원장 특활비 뇌물’ 사건으로 기소됐다. 항소심에서 징역 25년, 벌금 200억원의 중형이 선고된 ‘국정농단’ 사건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 개입했다는 ‘공천개입’ 사건은 징역 2년형이 확정됐다. 이날 선고로 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하급심 판단은 모두 마무리됐다. 현재까지 박 전 대통령에 선고된 총 형량은 징역 32년이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