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왼쪽 사진부터)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이 지난 5월 29일 오전 서울중앙지법법원에서 열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첫 공판에 각각 참석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법원행정처에서 작성된 사법농단 관련 보고서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된 정황이 당시 법원행정처 심의관 법정 진술을 통해 드러났다.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재판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는 시진국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현 통영지원 부장판사)의 이메일이 공개됐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시 전 심의관은 2014년 2월~2016년 2월 법원행정처 기획 제1·2심의관으로 근무하면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상고법원 도입 관련 보고서를 작성했다.
2015년 7월 29일 시 전 심의관이 박상언·김민수·조인영 전 심의관에 보낸 메일 내용을 살펴보면, ‘세 분의 큰 도움으로 첨부와 같은 보고서가 처장님과 대법원장님께 잘 보고됐습니다’라고 기재돼있다. 시 전 심의관은 이에 대해 “이메일 내용을 보니, 임종헌 기조실장으로부터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병대 처장에게 잘 보고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고 답했다.
해당 메일에 첨부된 보고서는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 방안> 문건(2015년 7월28일 작성)이다. 그해 8월6일 예정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대 자리를 앞두고 작성된 보고서다. 상고법원에 대한 청와대(BH)의 부정적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정부 운영에 사법부가 기여해온 구체적 판결을 언급한다”, “향후 국정운영에 대한 지원과 협조를 약속한다”는 방안이 담겼다. 시 전 심의관은 문제의 보고서에 관해 “대통령 독대는 쉬운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상고법원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는 취지에서 보고서가 작성됐다”며 “다른 보고서에 비해 그 주제나 성격을 비춰보면 상고법원 관련 보고서는 대법원장에 보고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 쪽 변호인은 “임종헌 전 차장의 증언을 들어봐야 한다. 임 전 차장이 보고한 바 없다고 하면 시 전 심의관 진술에는 의미가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015년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재판 청탁을 들어줬다는 혐의와 관련된 정황도 일부 공개됐다. 임 전 차장은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던 서 의원으로부터 '강제추행 미수로 재판을 받는 지인의 아들이 선처를 받게 해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받아 담당 판사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시 전 심의관은 당시 ‘1심에서도 도움을 받았다. 2심도 벌금형의 선처를 부탁한다’는 서 의원 보좌진의 이야기를 반영해 <서영교 사건 민원 개요>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시 전 심의관은 “임 전 차장이 ‘뭐 이런 걸 부탁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 섞인 분위기로 '알아나봐라, 보좌관이 연락한단다'라고 말했다. 저도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뭐 이런 것까지 하나’ 싶었지만, 어쨌든 지시가 왔으니 최대한 간단하게 요지만 적었다”고 답했다. 시 전 심의관은 “서 의원의 일방적인 청탁일 뿐, 해당 보고서의 내용이 재판부에 전달되거나 재판 결과에 반영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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